일상 이야기 402

한 명의 선비로서 산다는 것

아무리 서양의 문물 속에서 산다고 해도 동양이자 한국의 사람이 서양 사람이 되겠느냐. 내 속에는 내가 부정할 수 없는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내가 태어나서 그 속에서 자란 나의 나라 대한민국,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규칙적 질서 속에서 어떤 종류의 말 역할을 하고 있느냐. 어린 시절부터 나는 어떤 종류의 삶을 꿈꾸고 추구했으며, 지금 나는 어떤 위치에 와 있느냐.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2024년 한 해를 마무리한다.    돌이켜보면 내가 어린 학생이던 시절부터 지향했던 삶은 ‘지조 있는 선비의 삶’이었다. 나는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학문을 깊이 탐구하여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는 싶었지만, 과거 시험에 급제한 후 승승장구하여 장관이 되거나 장군이 되고 싶다는 욕심을..

일상 이야기 2024.12.29

2024년을 돌아보고, 2025년을 준비함

올해 2월에는 내게 갑작스러운 신상의 변동이 있었다. 국립목포대학교 교양학부의 과학기술철학 전공 전임직 교원으로 선발되었기 때문이다. 국립대구과학관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대구경북과학기술원에서 하려 했던 과학사와 과학철학 강의도 취소해야 했다. 신속하게 광주에 숙소를 구했고, 3월부터 교수로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1학기에는 “MNU 대학생활” (2과목, 4학점), “디지털 문서와 콘텐츠” (1과목, 2학점), “로봇의 윤리학” (1과목, 3학점) 수업을 진행했다(총 9학점). 2학기에는 “MNU 생각산책” (1과목, 2학점), “MNU 프론티어 정신” (1과목, 2학점), “디지털 문서와 콘텐츠” (2과목, 4학점), “과학철학의 이해” (1과목, 3학점), “현대철학” (1과목, 3학점) 수..

일상 이야기 2024.12.25

내 몫의 운명을 따라서

세상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던 날,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던 날 그것을 느꼈다. 그렇다고 세상이 마냥 비합리적이기만 한 건 아니다. 어제 오후 국회 앞에 모인 수많은 사람을 보면서, 약간 아슬아슬했지만 끝내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는 걸 보면서, 나는 아주 느리긴 하지만 거대하고 도도하게 흘러가는 역사의 흐름을 느꼈다. 이 시대는 왕과 귀족이 중심이 되는 정치가 아니라 시민이 중심이 되는 민주정치를 요구하고 있었다. 여전히 광화문에서 탄핵 된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일종의 역사적 유물처럼 여겨졌다. 우리 속 뿌리 깊은 편견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는 역사학자 전우용 선생의 말에 동의한다.    나는 이번 상황이 정의가 불의를 이긴 상황이라고, 내가 옳고 상대가 마냥 악하고 틀렸다고 ..

일상 이야기 2024.12.15

다시 교수의 일상으로

나는 이상주의자는 아니며 나 스스로 현실주의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상주의자가 자신의 이상을 실제의 삶 속에 구현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대개 그런 구현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말하는 대로 일이 이루어지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거의 없으며, 나 또한 전혀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다. 나는 겨우겨우 매일 힘들게 우리 사회의 제도 속에서 버텨가며 살아가는 평범한 한 명의 사람일 뿐이다. 나는 국립대학에서 학생들과 상호작용하며 학생들이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고등교육 과정을 무사히 이수할 수 있게 도와주는 교육공무원이다.    그런 교육공무원인 나는 최근 들어 나의 본분인 교육과 연구에 전력을 다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요즘의 시국이 참으로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책 혹은 ..

일상 이야기 2024.12.11

시민의 나라를 도둑이 빼앗아 갈 수 있는가

2024년 12월 7일인 어제 저녁, 대통령 배우자 특검법에 대한 국회의 재의결이 부결되었다는 결과가 발표되었다. 그때 나는 속은 퍽 상했지만 그래도 이것은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이루어진 부결이기 때문에 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이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벌어진 사태는 나의 시민으로서의 자존감을 심각하게 훼손했으며 나에게 잊을 수 없는 배신감을 안겨 주었다. 여당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을 집단으로 퇴장하며 대통령 탄핵안에 대한 투표 자체를 거부했다. 그들은 왜 투표를 거부했을까? 대통령 배우자 특검법처럼 대통령 탄핵안도 투표를 해서 부결시키면 되는 일 아닌가?    나는 그들의 그런 집단적 행위가 대통령의 위헌적인 비상계엄 선포와 비슷한 종류의 위헌적인 행위라고 생각한다. 물론 당 차원에서 의원..

일상 이야기 2024.12.08

비상식적 비상계엄이 시민에게 끼친 고통

나는 어젯밤인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30분경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장면을 보면서, 대통령의 정국 인식이 어쩌면 저렇게도 일반 시민들의 상식적 판단과 다를 수 있을까 생각하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말 그대로 너무나 경악스러워서, 대통령을 보면서 나는 제대로 된 문장을 내뱉지도 못하고 그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낼 수 있을 뿐이었다. 내가 너무 황당했던 것은, 저렇게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판단을 하는 사람이 비상계엄을 선포함으로써, 나와 내 가족을 비롯한 전국의 모든 시민이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두려움과 불안에 떨며 제대로 잠을 잘 수조차 없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두려웠다. 군인들이 국회를 물리적으로 통제하고 점령한 후 국회위원들을 체포함으로써 국회의 기능을 마비시킬 수..

일상 이야기 2024.12.04

육군3사관학교에서의 기억을 떠올림

나는 군대에 가기 싫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치러야 하는 의무였기에, 나로서는 그나마 내 나름대로 전략적인 군 복무 선택을 했다. 나는 대학 시절 카투사(KATUSA, Korean Augmentation To the United States Army) 복무를 지원했지만 선발되지 못했고(무작위 추첨이다), 대학 졸업 무렵에는 군 복무를 하면서 제법 돈을 모을 수 있는 학사장교로서 복무하기를 지원했다. 학사장교 후보생으로 선발된 내가 훈련을 받았던 곳은 경상북도 영천에 있는 육군3사관학교였다. 2005년 7월 4일에 입대해서 2005년 10월 31일에 그곳에서 나왔으니, 꼬박 4개월 동안 훈련을 받은 셈이다.    훈련을 받는 기간에는 어떻게든 훈련 기간을 무사히 잘 보내고 싶었다. 내게 다른..

일상 이야기 2024.11.27

세상이 나를 원할 때까지

오래전부터 나의 바람은 ‘평범하게 사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껏 그렇게 평범하게 살고자 노력해 왔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란 무엇이냐? 나는 대한민국에서 남자로서 평범하게 사는 것이 군대에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부는 내가 결코 놓을 수 없는 진정 사랑하는 것이었기에, 나는 내가 교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은 채 최소한 석사과정만 마치자는 생각으로 공부했다.    박사 과정에서 휴학하고 취직 준비를 할 때, 나는 한 편으로는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도 했다. 내 주제에 무슨 박사 공부냐. 사실 공부는 내게는 일종의 사치이지 않았는가. 석사과정 2년 동안 실컷 공부했으니 됐다. 이제 나도 남들처럼..

일상 이야기 2024.11.20

쓰면서 생각한다 혹은 일하면서 일한다

조직원은 조직의 부품이다. 팀원은 팀의 부품이고, 팀은 부서의 부품이며, 부서는 본부의 부품이고, 본부는 기관의 부품이며, 기관은 부처의 부품이고, 부처는 나라의 부품이다. 한국장학재단에서, 국립대구과학관에서 내가 했던 일들은 제법 가치 있는 것이었지만, 일을 끝내면 혹은 조직을 떠나고 나면 내가 한 일들은 공적인 일들로 남고 그 속에서 나의 이름은 사라지거나 잊힌다. 그 대가로 기관은 나에게 급여를 지급한다. 부품으로서 역할을 잘 해냈기 때문이다.    대개 사회 속에서 언어는 실질적인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기 위해 사용된다. 그렇게 사용되는 언어를 운반하고 작동시키는 개인들은 독립적인 존재라기보다는 능률적인 기계에 가깝다. 하지만 조직과 사회는 개인들이 직접적인 실용적 목적 없이 유희에 가까운 방식으로..

일상 이야기 2024.11.17

인문학 전공 교수로서 만족함

최근 나는 내 삶의 패턴을 최대한 단순화시켰다. 내가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을 제외한 부수적인 일들은 다 정리를 한 것이다. 다재다능한 뛰어난 사람이라면 여러 일들을 한꺼번에 잘 해낼 수 있겠지만, 불행히도 나는 그런 사람이 못 된다. 물론 나는 매우 성실한 사람이긴 하다. 그러나 내가 생각해도 나는 업무의 효율성이 좀 떨어지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남들이 1시간 만에 할 일을 나는 3시간에 걸쳐서 한다. 약간 멍청해서 그런 것일까? 어쨌든, 이번 학기에는 매번 수업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금방 지나가고 있다.    나는 대학교수도 하나의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이다. 그런데 교육과 연구를 함으로써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 아닌가? 멋진 일이면서도 감사해야 할 일..

일상 이야기 2024.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