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군대에 가기 싫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치러야 하는 의무였기에, 나로서는 그나마 내 나름대로 전략적인 군 복무 선택을 했다. 나는 대학 시절 카투사(KATUSA, Korean Augmentation To the United States Army) 복무를 지원했지만 선발되지 못했고(무작위 추첨이다), 대학 졸업 무렵에는 군 복무를 하면서 제법 돈을 모을 수 있는 학사장교로서 복무하기를 지원했다. 학사장교 후보생으로 선발된 내가 훈련을 받았던 곳은 경상북도 영천에 있는 육군3사관학교였다. 2005년 7월 4일에 입대해서 2005년 10월 31일에 그곳에서 나왔으니, 꼬박 4개월 동안 훈련을 받은 셈이다.
훈련을 받는 기간에는 어떻게든 훈련 기간을 무사히 잘 보내고 싶었다. 내게 다른 사관후보생보다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냥 무사하게 무난하게 훈련받아 소위로 임관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사실 훈련 기간에도 성적은 중요했다. 훈련 성적에 따라서 부대에 배치되기 때문이다. 특히 사격 결과가 중요했는데, 나는 20발 중 겨우 12발을 맞혀 통과했던 기억이 난다. 200km 행군을 했던 유격훈련도 기억이 생생하다. 훈련장에 갈 때 40km, 훈련장에서 매일 밤 20km씩 5일을 행군했고, 부대에 복귀할 때 60km를 행군했다. 부대에 복귀할 때쯤 양쪽 발에 물집이 너무 많이 잡혀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그 4개월의 훈련 기간은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내게 중요한 경험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이 있다. 사관후보생을 지도하는 대위를 ‘훈육장교’라고 한다(소령은 ‘훈육대장’이다). 대개 후보생으로 훈련을 받게 되면 후보생들은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은 행태를 보인다. 주말이 되면 후보생들은 초코파이 하나 더 먹으려고 평소에는 가지도 않던 교회, 성당, 법당에 간다. 나도 후보생 시절에 일요일이면 하루 종일 종교행사에 참여했던 기억이 난다. 후보생들은 훈육장교를 두려워하면서도 그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한다. 훈육장교는 평소 후보생들에게 냉정한 태도를 보이며,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대개 훈련 기간에는 어떻게든 이 기간을 무탈하게 지내기만을, 빨리 훈련이 끝나기만을 바란다. 그런데 막상 훈련이 끝나고 소위로 임관하게 되면 전방 부대에서 병사들과 부대껴야 하고, 장교는 더 이상 후보생처럼 교육받는 것이 아니라 병사들에게 교육훈련을 시켜야만 하는 입장으로 바뀐다. 이때 장교는 훈련 기간 동안 배웠던 것을 자기도 모르게 병사들에게 써먹게 된다. 정말 열심히 훈련받았던 후보생은 실제로 전방 부대에 투입되어도 금방 잘 한다. 고통스럽게 훈련을 받았던 기억이 몸에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훈련생일 때 사격을 잘 못했던 장교가 전방 부대에 배치된 후 갑자기 사격을 잘 하기는 쉽지 않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왜 하냐면, 오늘 문득 나는 우리 목포대학교에서 일종의 장교 노릇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사 신분으로 강의할 때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물론 내가 소대장과 중대장 생활을 하면서 전역시킨 병사들은 부대를 떠난 뒤에는 나와 잘 연락하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최소한 부대에 있는 동안에는 매달 생활기록부를 기록하면서 병사 개개인에게 인간적인 관심을 가지려 했다. 내가 아직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소대장과 중대장을 하면서 병사들에게 큰 사고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병사를 영창 보냈던 일이 두 번 있긴 했다. 그래도 그게 그렇게 심각한 사고는 아니었다.
내가 후보생 시절 경험했던 두 사람의 선배 훈육장교는 평소 엄격하게 후보생들을 훈련시켰지만 사실 인간적으로 따뜻한 분들이었다. 나는 훈련 기간이 끝날 때쯤에야 왜 그분들이 그렇게 엄격하게 훈련을 시켰는지 이해했다. 그렇게 훈련을 시켜야만 잘 모르는 초임장교들이 실전에 닥쳤을 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후보생들에 대한 인간적인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그렇게 훈육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도 그런 인간적인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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