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가 그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나는 실로 이 말에 공감하는데, 왜냐하면 나는 전문적인 학자가 되기 전까지 다른 일들을 하면서 ‘하는 일’이 그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무엇인가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것을 본업으로 삼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그것에 대해 애호가로 남게 된다. “나는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에 대해 영원한 애호가로 남고 싶어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정말 사랑한다면 그 일을 해야 한다. 내가 따르는 학문적 전통은 두 갈래다. 하나는 철학의 전통이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아직도 나는 철학과에 소속되어 백종현, 김상환, 김기현, 강상진, 조인래 교수님의 강의를 수강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