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97

서울대학교 이학박사 학위논문을 제출하는 심정

나는 아직도 내가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는 것에 대해서 실감이 나지 않으며 다소 어리둥절하게 느껴진다. 우리 집안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사람은 내가 최초이다. 서울대학교에 학부생으로 입학한 것(2001년) 역시 우리 집안에서 내가 최초였다. 최초라는 것에는 좋은 의미도 있지만 그만큼 ‘의외’라는 의미도 있다. 가족 중에서는 계속 학문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주변에 상의할 사람도 딱히 없이 우리 집안에서 계속 학문 연구를 해왔다. 적절한 조언자나 역할 모델이 있었다면 모를까,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비교적 독립적으로 학문의 길을 걸어왔고 그만큼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나는 학부를 정확히 4년 만에 졸업했지만, 졸업 후 곧바로 석사과정에 진학..

연구자로 거듭나기로 다짐함

박사학위 논문 제출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 2023년 2월 6일까지 제출이며, 이번에 제출하면 앞으로 이 논문을 수정할 수 없다. 과학철학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앞으로 계속 간헐적으로 나의 학위논문을 검색하여 살펴볼 것이다. 객관적인 수준을 확실하게 보장할 수는 없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학위논문을 썼다. 그리고 내 학위논문의 서론(1장)과 결론(8장)을 제외한 모든 장의 내용은 이미 국내의 철학 학술지(KCI 등재지)에 게재된 바 있다. 나는 적어도 나의 학위논문이 박사학위 논문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믿는다. 지금 돌이켜보면 학부 시절이 많이 후회된다. 만약 과학철학을 계속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했다면 그때부터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했다. 운이 좋게..

과학철학 연구자로 살아가기

과학철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우리 사회에 실제로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포털 사이트에서 ‘과학철학’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이에 관한 설명을 찾을 수 있고, 과학철학을 전공한 교수님들께서 우리나라 대학 곳곳에 자리를 잡고 계신다. 대학들에서는 과학철학 강의를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고, 과학철학 관련 책을 시중의 서점들에서 살 수 있으며, 과학철학 관련 각종 교양 강의와 특강 역시 여러 기관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렇듯 ‘과학철학’은 우리 사회에 잘 자리 잡은 사회적인 현상이며 그 존재를 부정하기 어렵다. 자신만의 과학철학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거치며 자신만의 훈련을 수행해야 한다. 기준을 너무 높게 세울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한 재능을 타고나..

독립적인 과학철학 연구자

나는 나 자신을 독립적인 과학철학 연구자로서 생각한다. 왜 과학철학인가?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나는 아이였던 시절부터 자연경관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꼈고 그것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자연을 연구하는 물리학자가 되고자 했다. 나는 중학교 시절 공부를 곧잘 했기 때문에 물리학자가 되기 위해 내가 살던 도시인 부산에 설립되어 있던 부산과학고등학교로 진학했다. 하지만 과학고등학교의 수업에서 나는 내가 바랐던 과학 수업을 들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나는 도서관 혹은 다른 친구들의 책꽂이에서 찾은 ‘과학에 관련된 책들’을 읽으며 만족감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에 자퇴원을 내고 학교에서 나왔다. 나는 부산 시내의 도서관을 돌아다니면서 내가 ..

시행착오 대장

학위논문 수정을 하면서 참 많은 것을 느낀다. 그중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참으로 시간과 공간에 관한 철학적 논의의 전통이 제대로 자리잡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국내의 연구 전통이 제대로 자리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으니, 연구 과정에서 여기 부딪히고 저기 부딪히며 온갖 시행착오들을 겪지 않을 방법이 있겠는가. 내 생각에 만약 내가 시간과 공간의 철학적 논의 전통, 특히 상대론적 시간과 공간에 관한 철학적 논의 전통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소화해서 이에 관한 정식 연구서를 우리말로 출판한다면, 오직 이것만으로도 진정 우리나라 과학철학계를 위한 중요한 공헌을 하게 될 것이다. 나는 실로 내가 맨땅에 여기저기 머리를 박으면서 연구를 해나가고 있다고 느낀다. 진행 속도는 참으로 더디지만..

해야 할 일을 한다

어떻게 ‘선험적 종합 지식’이 가능한가? 이것은 18세기를 살았던 칸트의 낡은 물음이고 이 물음이 잘못되었다는 점 또한 밝혀졌지만, 나는 나 자신이 이러한 물음이 가진 직관적인 의의를 계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인간의 자연과학적 지식이 이토록 자연을 잘 설명하고 또 잘 예측하는 것일까? 과연 우리의 자연과학적 지식이 실제로 존재하는 자연과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어떻게 자연과학적 지식을 획득하고 구축하고 평가하고 교정해나가는 것일까? 나는 이런 현대적인 물음들이 전제하는 기본적인 직관이 칸트의 물음이 유래한 직관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칸트의 물음은 특별하게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갖춘 사람뿐만 아니라, 건전한 사고 능력을 가진 일반적인 사람이 던질 수 있는 진지한 물음이라 ..

다시 시공간의 철학으로

결국 나는 다시 시공간의 철학으로 돌아왔다. 당연히 이렇게 돌아오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한 학자는 라이헨바흐다. 그러나 리처드 뮬러와 리 스몰린의 책을 번역한 것은 나에게 시공간의 철학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큰 힘을 주었다. 뮬러는 실험물리학자의 관점에서, 스몰린은 이론물리학자의 관점에서 시간 흐름의 실재성을 옹호한다. 그리고 시간 흐름의 실재성은 라이헨바흐의 시공간 철학에서 옹호하는 관점이다. 그렇기에 나는 다시 라이헨바흐의 논리경험주의 시공간 철학으로 돌아가는 것은 완전히 틀린 것이 아닐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시공간의 철학을 실체론과 관계론의 관점에서 성찰하는 전통은 제법 오래된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이미 상대성 이론이 등장하여 성공적인 이론으로 자리 잡은 이상, 실..

과학에 대한 좀 더 많은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나는 그저 과학에 대한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에 쓰인 내용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많은 문제를 빨리 풀라고 하거나, 의미를 알 수 없고 어렵기만 한 문제들을 풀라고 했다. 그냥 나는 그게 성에 안 찼다. 적성에 맞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학교 도서관에 가서 과학에 관한 책들을 빌려 읽었다.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는 그런 이유로 고등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하이젠베르크에게 유혹되었다. 그러니까 잘못 낚인 거다. 그리스의 젊은이들이 소크라테스에게 낚였던 것처럼 말이다. 8월 말에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선생님과 저녁 식사를 하며 2시간 동안 열띤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고깃집에 ..

경상국립대학교 과학철학 강의

나는 올해 9월부터 경상국립대학교 철학과 소속의 시간강사로서 강의를 하고 있다. 담당하는 과목은 3과목으로서, ‘비판적 사고’ 2과목과 ‘과학기술과 철학’ 1과목이다. 예전에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 동안(매년 봄 학기에) 대구과학고등학교(영재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과학철학’ 과목을 가르친 적이 있다. 2020년 가을에는 서울대학교 과학학과 대학원에서 실질적으로 ‘시간과 공간의 철학’ 수업을 진행했으나, 그때는 100% 화상강의로 진행했다. 대학에서 대면으로 가르치는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1주차 수업은 태풍 ‘힌남노’로 인해 화상강의로 진행했고, 2주차 수업인 어제(2022. 9. 13.)는 경상국립대학교 통영캠퍼스에 방문하여 해양과학대학 소속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오래간만에 진..

전통의 계승자

오늘은 2022년 추석이다. 우리 가족은 어제 부모님이 계신 부산으로 이동하여, 오늘 아침 차례상을 차려 고조할아버지와 할머니, 증조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추석 인사를 드렸다. 새로운 해가 시작하는 날(설날)과 한 해의 수확을 감사하는 날(추석)에 온 가족들이 모여 돌아가신 분들의 넋을 기리고 살아 있는 사람들끼리 함께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좋은 문화적 관습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설날과 추석의 본질이지, 차례상을 차리느라고 고생하거나 명절 때마다 친척들끼리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것은 그 본질이 아니다. 나는 조상님께 절을 올리며 나의 박사학위 논문이 잘 통과되기를 빌었다. 내가 생각해도 분명 잘 쓴 논문은 아니지만, 그 누구처럼 다른 사람의 글을 허락 없이 베끼지는 않았다. 나의 논문은 처음부터 끝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