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145

천천히 나의 길을 걸어간다

우리 집안에서 대학교수가 된 사례는 내가 처음이다. 그렇다고 나는 내가 뛰어난 능력이 있어서 교수가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노력했고, 무엇보다 운이 좋았을 뿐이다. 나의 아이들 역시 나처럼 공부하는 것을 좋아할까? 나는 이를 크게 바라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제각각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있으며, 아이들은 그저 자신들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 굳이 그 일이 공부일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내가 서울대학교와 같이 국내에서 매우 유명한 대학의 과학철학 교수였다면 나는 나의 역할에 대해 큰 부담감을 느꼈을 것이지만, 다행히도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부담 없이 자유롭게 내가 지금까지 추구해 온 과학철학의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다. 백종현 교수님이 칸트 철학 연구의 화신이었다면..

학문적 선배들을 따라서

어떤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가 그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나는 실로 이 말에 공감하는데, 왜냐하면 나는 전문적인 학자가 되기 전까지 다른 일들을 하면서 ‘하는 일’이 그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무엇인가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것을 본업으로 삼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그것에 대해 애호가로 남게 된다. “나는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에 대해 영원한 애호가로 남고 싶어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정말 사랑한다면 그 일을 해야 한다.    내가 따르는 학문적 전통은 두 갈래다. 하나는 철학의 전통이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아직도 나는 철학과에 소속되어 백종현, 김상환, 김기현, 강상진, 조인래 교수님의 강의를 수강했던..

과학철학 연구의 즐거움

한동안 정치적인 문제들에 신경을 쓰다가, 이제는 나의 본업이자 생업인 과학철학 연구에 집중하려고 한다. 나는 올해 3월에 대학교수로 정식 부임하기 전까지 직장 생활과 과학철학 교육 및 연구를 병행해 왔다. 올 한 해를 전체적으로 돌이켜보면 지난 1년은 나에게는 대학교수라는 삶에 적응하는 기간이었던 것 같다. 대학교수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계속 국립대구과학관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과학관 인근에 있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에서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강의하며 지냈을 것이다.    과학철학 연구는 나의 적성에 맞고 재미있다. 생각하면 할수록 과학철학이라는 세부 분과가 철학의 영역에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안타까운 사실이 하나 있긴 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철학과에는 과학철학을 전공한 교수님이 계시지 않..

청년 시절의 꿈 속에서

사람은 평생 그가 청년 시절 꾸었던 꿈속에서 사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보편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최소한 이 생각이 나에게는 들어맞는 말인 것 같다.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가장 많이 읽었던 저자는 단연코 아인슈타인이었다. 아인슈타인의 자서전적인 글을 거듭 읽었던 나는 세상으로부터의 도피처를 물리학이 아닌 철학에서 찾았다. 대학에서 나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저자는 니체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니체의 책을 읽으며 보냈던 시간도 많았다. 그런데 사실 나는 그 시절 니체의 사상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려고 했다기보다는, 니체의 생각을 도구로 삼아 그의 생각을 타고 생각의 모험을 하려 했다.    형식적인 절차는 중요하다. 나는 지금껏 살면서 우리 사회의 형식적인 절차를 위배한 적이 ..

철학, 과학철학, 과학사

나는 철저히 대한민국의 산물이다. 한편으로는 나 개인이 있다. 1982년 부산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시절까지 그곳에서 자란 후, 서울에서 대학 공부를 하고 강원도 홍천에서 군 복무를 하고 다시 서울에서 대학원 공부를 한 뒤 대구를 거쳐 광주에서 살고 있는 내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철학이라는 학문의 전통을 잇는 내가 있다. 나는 대학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석사와 박사 과정에서는 과학사 및 과학철학을 전공했다. 결국 나에게는 학문적으로 철학이 가장 우선이며, 그다음이 과학철학이고, 그다음이 과학사이다.    학문을 하는 사람이라면 학문의 전통을 잇고 계승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 학문의 가장 오래된 공식적 선조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이다. 플라톤은 수학철학을 제시했지만, 그..

과학철학자의 길

고등학교 2학년 여름,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하자 눈물을 글썽이며 내가 왜 학교에서 나가야 하냐고 말하던 한 고등학교 친구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 친구가 볼 때 나는 참으로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고 늘 그에 관한 책들을 읽었기 때문이다. 나에게서는 내가 과학을 정말로 좋아한다는 티가 났다. 단지 나는 문제집을 기계적으로 계속 풀기를 거부했을 뿐, 과학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좋아했다. 그렇게 과학을 좋아했던 나는, 다만 주입식 과학 교육을 받으며 문제를 잘 푸는 머리 똑똑한 학생이 되기를 거부했을 뿐이다.    아직도 나는 2000년에 검정고시 고사장에서 시험을 치렀을 때의 풍경을 기억한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특히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나와 함께 시험을 치렀다. 그때 나는 지금까..

철학을 권함

돌이켜 보면 나의 삶은 늘 주관이 뚜렷한 삶이었다. 부산과학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나는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와 같은 철학적인 글을 읽으며 철학에 눈을 떴다. 수학자 하워드 이브스가 쓴 책인 [수학의 기초와 기본 개념]은 기본적으로 수리철학에 관한 책이었다. 국어 시간에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에게 러셀이 쓴 [철학의 문제들]을 읽고 요약하라고 하셨고, 이를 계기로 러셀의 책을 읽은 나는 철학에 관해 가졌던 관심을 심화시켰다. 그런데 한국의 제도에서는 철학을 하기 위해서는 이과(理科)가 아닌 문과(文科)로 옮겨야 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이 되자 수학과 과학(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의 기본적인 학습이 끝났다. 그때가 되니 과학고등학교가 아닌 다른 인문계 고등학교로 굳이 전학을 간다고 해..

연구년에 관한 생각

지난 학기는 대학교수로서의 첫 번째 학기라 비교적 바쁘고 정신없이 보냈는데, 이번 학기는 그나마 좀 차분하게 지내고 있는 듯하다. 특히나 이번 학기에는 철학 과목을 2개 강의하고 있어 나 자신의 정체성을 다소 찾은 느낌이 든다. 어떤 수업이든 처음 할 때는 힘이 든다. 수업 자료를 새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번 수업 자료를 만들면, 다음에 수업할 때는 기존의 수업 자료를 수정하면 되기 때문에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절약한 시간에 다른 책과 논문을 읽고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읽고 생각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수업 교재의 생각이 아닌 나만의 생각이 형성될 것이다.    예를 들어 “현대 철학”이라는 수업을 하게 되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그 수업을 하는 첫 번째 학기에는 시중..

과학을 성찰하는 시간

나는 종종 내가 왜 과학철학을 하게 되었는지를 잊지 않으려 애쓴다. 학생 시절 나는 수학과 물리학이 좋았는데, 왜냐하면 수학을 언어로 삼은 물리학이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한 믿을 만한 설명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학교에서 혹은 학원에서 수학과 물리학의 문제를 푸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고, 이와 관련한 더 풍부한 이야기를 듣고 생각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찾은 것이 수학사, 물리학사에 관한 책이었다. 그렇게 역사를 읽다 보니 사상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부터 ‘철학’이라는 학문에 입문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제 ‘과학철학’이라는 전문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가 되어버렸다. ‘과학철학’이라는 철학의 한 분야가 있고, 이 분야에 관련한 교과서적인 책들 또..

교수로서의 삶에 조금씩 적응함

만약 내가 국립목포대학교의 교수가 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국립대구과학관에서 선임연구원으로서 사회적 활동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올해 3월부터 대학교수가 되면서 새로운 종류의 삶을 시작했고, 어느덧 두 번째 학기를 진행하고 있다.    나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비교적 합리적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내가 대학교수가 된 것 역시도 비교적 합리적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나의 역량에 적합한 자리에 오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나는 내가 철학과가 아닌 교양학부에서 가르치게 된 것, 국내에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국립대학교인 국립목포대학교에서 일하게 된 것에 감사한다. 내가 목포대학교에 부임한 이상, 목포대학교의 교양교육 운영과 과학철학 교육을 위해 긍정적으로 공헌하는 것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