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123

교수라는 정체성에 적응하기

국립목포대학교로부터 내가 교수가 될 것이란 통보를 받은 이후 대략 2주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그 2주 동안 정말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3월 4일인 어제 총장님으로부터 교수 임명장을 받았고, 오늘은 내 연구실(정보전산원 A10동 319호)에 책상과 책장이 들어왔다. 대학에서 필요로 하는 업무 시스템에는 대략 모두 가입했고 이제 조금씩 시스템을 이용한 행정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오늘 오전에는 목포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처음으로 강의했다. 오늘의 출근과 퇴근 모두 목포대학교 통학 버스를 이용했다. 학교 내부 건물들의 위치에도 조금 더 적응한 것 같다. 이렇게 조금씩 목포대학교의 교수가 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가족들과 떨어져서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

교육 공무원인 과학철학자로서의 마음가짐

어제인 2024. 3. 1.부터 나는 대한민국의 교육 공무원으로서 일하게 되었다. 내 나이 마흔 셋(연 나이로는 42세)의 일이다. 물론 나는 국립대학교에 소속된 교수이긴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교수’라는 이름보다는 ‘교육 공무원’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자 한다. 나는 대한민국의 고등 교육을 담당하는 교원이다. 우리나라에서 고등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은 초․중․고등학교(중등 교육)가 아닌 대학교이며, 그중에서도 나는 사립대학교가 아닌 국립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행정’ 업무가 아닌 ‘교수’ 업무를 하게 된 것이다. 우선 나는 나의 행운에 너무나 감사한다. 왜냐하면 나는 박사과정을 거쳐 계속 대학에서 강의 및 연구 경력을 이어오지 않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교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강의 ..

그냥 하다 보면 편하게 된다

작년 2월 말에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난 뒤 주변 사람들이 나를 ‘강박사님’이라고 불러준다. 아직 약간 어색하기는 하지만 참 기분이 좋다. 내 명함에도 ‘이학박사, 과학사 및 과학철학 전공’이라고 적혀 있다. 내가 박사라니! 아직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박사다! 학위증명서도 있다! 게다가 무려 과학사 및 과학철학 박사다! 오예! 박사학위를 갖게 되니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에서 과학사와 과학철학 강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박사학위가 없으면 강의를 못 한단다. 박사학위를 갖게 되니 이따금 주변에서 강의 혹은 발표 의뢰를 해오기도 한다. 나는 이런 의뢰를 마다하는 법이 없다. 네, 좋은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하지만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그런데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해서 강의했지만 ..

성실한 과학철학 연구자

내 블로그(blog)의 제목은 “성실한 과학철학 연구자”이다. 오늘은 문득 내 블로그 제목에 대해서 설명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이 글을 쓴다. 예전 블로그 제목은 “凡人日記(범인일기)”였다. ‘평범한 한 사람의 일상적인 기록’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정말 평범한 사람이란 없다. 사람이란 아주 희귀하고 독특한 동물이다. 모든 사람이 독특한 생각과 개성을 가진 소중한 존재이다. 나 또한 한 명의 사람이며 내 고유의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나는 블로그 제목을 “성실한 과학철학 연구자”라고 바꿨다. 내 블로그를 몇 번 들어오신 분들은 아마 이 말을 지겹도록 읽으셨을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과학의 역사와 철학을 좋아했고 지금까지 계속 공부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21세기의 갈릴레오?

이미 잘 알려져 있듯, 갈릴레오(1564-1642)가 최초로 망원경을 만들지는 않았다. 이미 갈릴레오보다 먼저 망원경을 만든 사람이 있었다. 그러면 왜 오늘날 우리는 망원경 하면 갈릴레오를 떠올릴까? 갈릴레오가 자신의 물리학적, 공학적 지식과 기술을 이용해서 망원경을 상당히 개량했기 때문일까? 아니다. 당시 다른 사람들이 대개 적군의 동태를 관찰하기 위해 혹은 내가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나 물건이 오는지 오지 않는지를 보기 위해 망원경을 활용했다면, 갈릴레오는 그런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보았다. 그는 달, 금성, 태양, 목성을 보고 그런 천체들이 기존의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과는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공부하고 있는 요즘, 나는 이와 같은 갈릴레오의 이야기가 21세기인 오늘날..

APPSA, PSA around the World 참여 후기

나는 한국의 과학철학 연구자이다. 나는 2016년 8월에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졸업해야겠다고 결심한 2020년부터 매년 여름 개최되는 한국과학철학회 연례 학술대회에서 매번 발표하고 있다. 나는 올해인 2023년 2월에 박사과정에서 졸업하면서, 한국의 과학철학 유지 및 발전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하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차원에서 나는 한국과학철학회가 올해 회원들에게 소개한 두 개의 국제 학술대회인 2023년 APPSA(아시아태평양 과학철학회 학술대회, 2년에 한 번씩 이루어짐)와 2023년 PSA around the World(동아시아 지역에 초점을 맞춘 국제 과학철학회의 온라인 학술대회)에 참여하기로 신청했다. 2023년 APPSA는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빈 대학(Vin Univer..

내가 아닌 철학을 위해

나는 자신을 낭만주의자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낭만주의를 일종의 환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인간에게 환상 아닌 것이 존재하는지 의심스럽다. 고등학생 시절, 과학철학을 하고 싶다며 학교를 그만두고 시내에 있는 도서관들을 전전할 때부터 나는 과학철학에 대한 환상을 가진 낭만주의자였다. 비록 현실과 타협하여 시험을 잘 준비하기 위해 대입 입시학원에 등록했지만, 입시학원에 다닐 때도 나를 지켜준 것은 ‘과학철학’이라는 이상적인 목표였다. 그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목표가 지극히 평범한 능력을 갖춘 나를 계속하게 해 준 결정적인 동기였다. 대학 시절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시절부터 졸업할 때까지 계속 ‘과학철학’을 이야기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점에서 나는 변한 적이 없다. 아내를 만나 ..

삶을 위한 철학

나는 자주 이런 질문을 던진다. 대체 철학을 왜 하는가? 왜 우리는 나 혹은 나 이외의 존재 혹은 나의 외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의미를 밝히려고 하는가? 왜 우리는 굳이 지식 혹은 기술이 아닌 ‘지혜(sophia)’를 얻으려 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퍽 단순하다. ‘더 잘 살기 위해서’,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철학이 우리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직접적인 역할’을 하는 것일까? 더 구체적으로 말해, 철학이 우리에게 먹을 것 혹은 입을 것을 주는가? 아니면 철학이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할 수 있는 재화를 제공해 주는가?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만약 철학이라는 과목이 고등학교의 필수 과목이라면 철학은 학생들의 학업 성취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겠지만, 대부분 철학은 선..

실천과 멀리 있지 않은 철학

나는 최근 인공지능 및 빅데이터 관련 책들을 읽고 있다. 요즘은 많은 경우 과학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인공지능의 철학, 빅데이터의 철학을 연구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전반적인 대세를 거스르는 것은 쉽지 않으며 옳지도 않다고 본다. 대세는 세속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고, 대세에는 대세가 되게 된 상당히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 이런 대세를 따라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공부하며 나는 퍽 즐거움을 느낀다. 나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출간한 책인 [인공지능], [빅데이터의 이해와 활용]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철학이라는 학문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되고 실천되는 학문도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의 철학이란 무엇이고 빅데이터의 철학은 과연 무엇일까?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과학철학이란 과학..

과학사와 과학철학 강의 구상

나는 현재 경상국립대학교에서 [비판적 사고]와 [과학기술과 철학]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이 두 과목은 대학 출판부에서 발간한 훌륭한 표준 교재를 갖고 있어 강의하기가 참 편리하다. 하지만 이 두 과목이 내가 생각하는 대학생들을 위한 [과학사] 및 [과학철학] 교양 강의와 완전하게 합치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대학생 수준의 [과학사]와 [과학철학] 강의를 별도로 구상하곤 한다. [과학사]의 표준 교재로는 임경순․정원의 “과학사의 이해”(다산, 2014)를 들 수 있다. 이 표준 교재를 적절히 15주 정도 분배하여 수업한다면 무난할 것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교재로 데이비드 린드버그의 “서양 과학의 기원들”이 있으며, 피터 보울러 등이 쓴 “현대 과학의 풍경”이 있다. 우리나라의 과학사 전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