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149

나의 언어로 표현하는 일

읽는 것은 편하다. 내가 어떤 글을 읽는다고 하면, 그 글은 대개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쓴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는 데 1분이 걸렸다고 할 때, 아마도 그 글을 쓴 사람은 1시간 이상을 공들여 글을 썼을 것이다. 여기서 노동의 차이 혹은 비대칭성이 발생한다. 많은 경우 글 읽는 사람은 글 쓴 사람의 노동 성과를 즐긴다. 그래서 글을 읽는 일은 글을 쓰는 일보다 편하고, 더 익숙해지기 쉽다.    비슷한 논리가 듣는 것에도 적용된다. 말하는 것보다는 말을 듣고 이해하는 게 훨씬 더 편하다. 듣는 사람이 재미있도록 말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동과 준비가 필요하다. 1시간 재밌게 말하기 위해 3시간 이상 준비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듣는 것을 위해서는 거의 별다른 준비가 필요하지 ..

2025년의 연구 주제

나는 기준을 높게 잡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말해, 나보다 훨씬 더 잘하는 사람들을 비교 대상으로 삼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세상은 전쟁터이고, 인생은 끊임없는 싸움의 연속이다. 일시적인 평화와 잠정적인 동료는 일련의 싸움이 이루어지는 하나의 양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싸워서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만났을 경우, 고집을 피우며 끝까지 저항하다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상처를 입어서는 안 된다. 화해하려고 시도하거나, 그게 안 되면 도망을 쳐서 살길을 찾고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    나는 기준을 높게 잡지 않기 때문에 나의 능력으로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연구도 그러하다. 내가 세계적인 수준의 뛰어난 철학자가 아닌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철학 연구에는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건 당연한..

과학을 살펴보는 고고학적 태도

돌이켜보면, 나는 정규 과정에서 과학을 배울 때 군인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느꼈다. K-2 소총에 대해서 배울 경우, 훈련병은 이 소총의 제원과 기능에 대해서 학습하지만, 이 모든 학습은 결국 소총을 잘 쏘기 위한 것이다. 소총을 잘 쏘기 위해서 많은 연습 사격을 시행한다. 100명의 훈련병은 20발 중 20발을 맞추는 사람, 20발 중 12발을 맞추는 사람 등으로 분류된다. 다양한 상황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연습 사격을 하고, 그렇게 훈련을 받은 이후 훈련병들은 정식 군사로서 실전에 투입된다. 결국 훈련의 목표는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전투 병력을 양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훈련병은 기계가 아니다. 훈련병은 왜 내가 이 훈련을 받아야 하는지, 지금 내가 참여하고자 하는 전쟁은 왜 ..

치열한 경쟁 속, 마음의 평정

내가 어린아이였던 시절, 나는 우연히 체스 게임을 알게 되었고 이윽고 이 게임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게임을 몇 번 하다 보니 금방 알게 된 사실이 있었으니, 그것은 세상에 나보다 체스를 잘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었다. 게임에서 지면 속이 무척 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내가 평범한 체스 게이머임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일에서 기를 쓰고 애써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내 머리가 그리 좋지는 않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했다. 그러자 나는 뛰어남보다는 성실함에 더 무게를 두는 방식으로 삶의 전략을 조정했다. 승패에는 크게 연연해하지 않고, 그저 성실하게 내 일을 하겠다는 거였다. 이런 전략은 어느 정도 먹혀들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천천히 나의 길을 걸어간다

우리 집안에서 대학교수가 된 사례는 내가 처음이다. 그렇다고 나는 내가 뛰어난 능력이 있어서 교수가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노력했고, 무엇보다 운이 좋았을 뿐이다. 나의 아이들 역시 나처럼 공부하는 것을 좋아할까? 나는 이를 크게 바라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제각각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있으며, 아이들은 그저 자신들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 굳이 그 일이 공부일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내가 서울대학교와 같이 국내에서 매우 유명한 대학의 과학철학 교수였다면 나는 나의 역할에 대해 큰 부담감을 느꼈을 것이지만, 다행히도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부담 없이 자유롭게 내가 지금까지 추구해 온 과학철학의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다. 백종현 교수님이 칸트 철학 연구의 화신이었다면..

학문적 선배들을 따라서

어떤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가 그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나는 실로 이 말에 공감하는데, 왜냐하면 나는 전문적인 학자가 되기 전까지 다른 일들을 하면서 ‘하는 일’이 그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무엇인가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것을 본업으로 삼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그것에 대해 애호가로 남게 된다. “나는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에 대해 영원한 애호가로 남고 싶어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정말 사랑한다면 그 일을 해야 한다.    내가 따르는 학문적 전통은 두 갈래다. 하나는 철학의 전통이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아직도 나는 철학과에 소속되어 백종현, 김상환, 김기현, 강상진, 조인래 교수님의 강의를 수강했던..

과학철학 연구의 즐거움

한동안 정치적인 문제들에 신경을 쓰다가, 이제는 나의 본업이자 생업인 과학철학 연구에 집중하려고 한다. 나는 올해 3월에 대학교수로 정식 부임하기 전까지 직장 생활과 과학철학 교육 및 연구를 병행해 왔다. 올 한 해를 전체적으로 돌이켜보면 지난 1년은 나에게는 대학교수라는 삶에 적응하는 기간이었던 것 같다. 대학교수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계속 국립대구과학관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과학관 인근에 있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에서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강의하며 지냈을 것이다.    과학철학 연구는 나의 적성에 맞고 재미있다. 생각하면 할수록 과학철학이라는 세부 분과가 철학의 영역에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안타까운 사실이 하나 있긴 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철학과에는 과학철학을 전공한 교수님이 계시지 않..

청년 시절의 꿈 속에서

사람은 평생 그가 청년 시절 꾸었던 꿈속에서 사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보편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최소한 이 생각이 나에게는 들어맞는 말인 것 같다.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가장 많이 읽었던 저자는 단연코 아인슈타인이었다. 아인슈타인의 자서전적인 글을 거듭 읽었던 나는 세상으로부터의 도피처를 물리학이 아닌 철학에서 찾았다. 대학에서 나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저자는 니체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니체의 책을 읽으며 보냈던 시간도 많았다. 그런데 사실 나는 그 시절 니체의 사상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려고 했다기보다는, 니체의 생각을 도구로 삼아 그의 생각을 타고 생각의 모험을 하려 했다.    형식적인 절차는 중요하다. 나는 지금껏 살면서 우리 사회의 형식적인 절차를 위배한 적이 ..

철학, 과학철학, 과학사

나는 철저히 대한민국의 산물이다. 한편으로는 나 개인이 있다. 1982년 부산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시절까지 그곳에서 자란 후, 서울에서 대학 공부를 하고 강원도 홍천에서 군 복무를 하고 다시 서울에서 대학원 공부를 한 뒤 대구를 거쳐 광주에서 살고 있는 내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철학이라는 학문의 전통을 잇는 내가 있다. 나는 대학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석사와 박사 과정에서는 과학사 및 과학철학을 전공했다. 결국 나에게는 학문적으로 철학이 가장 우선이며, 그다음이 과학철학이고, 그다음이 과학사이다.    학문을 하는 사람이라면 학문의 전통을 잇고 계승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 학문의 가장 오래된 공식적 선조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이다. 플라톤은 수학철학을 제시했지만, 그..

과학철학자의 길

고등학교 2학년 여름,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하자 눈물을 글썽이며 내가 왜 학교에서 나가야 하냐고 말하던 한 고등학교 친구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 친구가 볼 때 나는 참으로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고 늘 그에 관한 책들을 읽었기 때문이다. 나에게서는 내가 과학을 정말로 좋아한다는 티가 났다. 단지 나는 문제집을 기계적으로 계속 풀기를 거부했을 뿐, 과학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좋아했다. 그렇게 과학을 좋아했던 나는, 다만 주입식 과학 교육을 받으며 문제를 잘 푸는 머리 똑똑한 학생이 되기를 거부했을 뿐이다.    아직도 나는 2000년에 검정고시 고사장에서 시험을 치렀을 때의 풍경을 기억한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특히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나와 함께 시험을 치렀다. 그때 나는 지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