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일관된 연구의 필요성

강형구 2025. 4. 23. 09:56

   이제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적절한 사용이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 나는 인공지능을 사용할수록 인간에게는 더욱더 일관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특정 분야에 대한 확고한 전문적 식견이 없다면 그 분야에 관련된 언어적 게임에서 인공지능을 이길 가능성이 상당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인공지능은 오히려 좀 더 전통적인 인간의 수련 방식을 강조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어떤 일을 할 때 아주 깊게 해야만 인공지능을 이길 수 있다. 물론 계산의 영역, 단순한 규칙에 기초한 게임의 영역에서는 더 이상 인간이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다.

 

   ‘시간’과 ‘공간’은 매우 전통적인 철학적 탐구 주제다. 이 주제를 가지고 평생 연구를 해도 충분할 정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세기 이후 발전한 자연과학을 기초로 시간과 공간을 화두로 삼아 평생 연구해 온 학자를 찾기 어렵다. 4차 산업혁명, 메타버스, 생성형 인공지능 등 특정 시기에 뜨겁게 떠오르는 주제들이 있고, 연구자들은 그러한 주제들에 몰리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메타버스 열풍’을 경험해 본 당사자로서 나는 그 열풍이 얼마나 허무한 것이었는지를 잘 알고 있다. 메타버스가 아예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그것을 과대포장하고 아까운 국가 예산을 상당 부분 불필요하게 낭비한 것에 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주제가 갖는 근본적인 매력이 있다. 그래서 나는 한편으로는 라이헨바흐의 과학철학을 연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와 관련하여 ‘시간’과 ‘공간’을 내 평생의 연구 화두로 계속 붙잡고 나가려고 한다. 멍청한 나지만 계속 읽고 생각하고 쓰다 보면 뭔가 유의미한 성과가 나오겠지. 시간이 없다고 조바심 낼 필요는 없다. 계속 특정한 주제를 반복해서 연구할 마음을 먹으면 시간이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당연히 내가 모든 주제를 연구해서 알 수는 없다. 그러므로 나는 다른 주제들에 대해서는 다른 연구자들에게 맡긴다. 이게 연구의 기본 아니었던가? 한 사람이 모든 주제를 깊이 파고들지 못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단지 몇몇 주제에 대해서만 깊게 천착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자신이 전문으로 연구하는 주제 몇 개를 확고하게 잡고 있으면서, 그 무게 중심을 적절하게 유지한 채 인근의 다른 영역으로 자신의 연구를 확장하는 게 바람직하고 안전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과도한 수준의 영역 가로지르기를 경계한다. 인간에게 인공지능만큼의 빠른 계산 또는 정보처리 역량이 있다면 모를까, 인간은 여전히 인간일 뿐이고 여러 제약조건을 갖고 있다. 나는 어떤 시기에는 4차 산업혁명 전문가이고 다른 시기에는 메타버스 전문가이며 이제는 인공지능 전문가인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런 역량을 갖고 있지 않다. 그냥 나는 라이헨바흐를 포함한 논리경험주의 철학 연구자, 시간과 공간의 철학 연구자로 남고 싶다.

 

   사실 철학 연구자의 여유로움은 자신만의 연구 주제를 연구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그다지 많지는 않다는 안도감에서 나온다. 나도 마찬가지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이 세상에는 라이헨바흐의 과학철학, 시간과 공간의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고, 그래서 나는 그런 나의 운명에 감사한다. 뭔가 여유롭다는 느낌? 그런데 오늘날에는 철학 연구자 역시 일선의 과학자처럼 끊임없이 바쁘게 다른 여러 사람과 협업하면서 자신의 연구에 매진해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런데, 과연 그럴까? 그래도 철학은 여전히 철학만의 여유로움을 굳게 간직하고 나아가야 하는 것 아닐까?

 

   꿋꿋한 일관성은 나라는 철학 연구자를 대표하는 표식과 비슷한 것이 되어 버려, 이제는 돌이킬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나는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그냥 가던 길을 계속 간다. 계속 가다 보면 새로운 가능성, 새로운 시야, 새로운 지평이 지치지 않고 등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