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나의 언어로 표현하는 일

강형구 2025. 4. 9. 09:29

   읽는 것은 편하다. 내가 어떤 글을 읽는다고 하면, 그 글은 대개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쓴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는 데 1분이 걸렸다고 할 때, 아마도 그 글을 쓴 사람은 1시간 이상을 공들여 글을 썼을 것이다. 여기서 노동의 차이 혹은 비대칭성이 발생한다. 많은 경우 글 읽는 사람은 글 쓴 사람의 노동 성과를 즐긴다. 그래서 글을 읽는 일은 글을 쓰는 일보다 편하고, 더 익숙해지기 쉽다.

 

   비슷한 논리가 듣는 것에도 적용된다. 말하는 것보다는 말을 듣고 이해하는 게 훨씬 더 편하다. 듣는 사람이 재미있도록 말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동과 준비가 필요하다. 1시간 재밌게 말하기 위해 3시간 이상 준비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듣는 것을 위해서는 거의 별다른 준비가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약간의 수고를 들일 경우 집중해서 경청할 수 있고, 요즘은 사람들이 그러한 경청조차 잘 하지 않는다.

 

   학문에 종사하는 사람, 특히 인문학 연구자는 읽고 듣는 일과 대등하게 쓰고 말하는 일에 노력을 기울인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쓰고 말하는 일이 인문학 연구자의 생존을 위해 직접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글을 읽는 행위를 한다고 해서 돈을 주지 않으며, 말을 듣는 행위를 한다고 해서 돈을 주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 연구자가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가치 있는 노동은 대개 읽기가 아닌 쓰기, 듣기가 아닌 말하기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가치 평가에는 나름 합당한 이유가 있다.

 

   인문학이라는 사회적 활동에 참여한다는 것은, 곧 그 연구자가 계속 자신의 연구 주제와 관련하여 글을 쓰고 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인문학 연구의 필요조건과도 같아서, 인문학 연구자가 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글을 쓰고 말해야 한다. 달리기 경주에서 달리기를 안 할 수 있나? 농구 경기에서 공을 튀기지 않을 수 있을까? 우수하고 뛰어난 인문학 연구자가 되는 것은 다음 일이다. 인문학 연구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계속 글을 쓰고 말해야 하며, 글을 쓰고 말하는 행위는 글을 읽고 말을 듣는 행위보다 더 높은 수준의 노동을 요구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전문성이 있다. 요리사는 요리를 잘하고, 자동차 정비공은 자동차 수리를 잘 한다. 유튜버는 온라인 방송을 잘하고, 화가는 그림을 잘 그린다. 물론 아주 위대한 요리사, 아주 위대한 자동차 정비공 등은 그 수가 매우 적겠지만, 전문적인 요리사와 전문적인 자동차 정비공의 수는 제법 많다. 내 생각에 인문학 연구자의 전문성은 그 사람이 자신의 주제에 대해 얼마나 많이 깊이 아는가에서 드러나지는 않는다. 좀 더 실용적인 차원에서 보면, 그 사람의 전문성은 자신이 연구하는 주제에 대해 얼마나 잘 쓰고 얼마나 잘 말하느냐에서 드러난다. 글 읽기만 좋아하는 인문학 연구자? 말을 듣고만 싶어 하는 인문학 연구자? 나는 이게 일종의 ‘형용모순(形容矛盾)’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관심 주제에 관해 계속 말하고 계속 쓰는 것은 인문학 연구자의 일상적인 사회적 생존 활동이라 볼 수 있다. 듣고만 싶고 읽고만 싶은 사람은 ‘인문학 연구자’가 아니라 ‘인문학 애호가’이며, 인문학 이외의 다른 생업을 찾으면 된다. 좋은 혹은 뛰어난 혹은 위대한 인문학 연구자 되기는 말하고 쓰는 것을 습관으로 만든 이후의 일이다. 그리고 굳이 좋은 혹은 뛰어난 혹은 위대한 인문학 연구자가 될 필요도 없다. 그냥 인문학 연구자로서 사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사람들이, 나를 포함해서, 많이 있다.

 

   왜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말하고 쓰는 일을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렵다고 해서 피해서는 안 된다. 인문학 연구자가 되려는 사람은 늘 말하기와 쓰기라는 가장 기본적인 언어적 표현의 문제에 과감히 맞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