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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나날들

내가 특별히 잘하기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 나이에 맞게 내 할 일을 열심히 한다는 생각이 요즘 정말 자주 든다. 최근 나는 연구, 교육, 봉사 영역에서 내 역량을 초과하는 많은 일들을 하느라 상당히 바쁜 편이다. 연구의 경우, 한국연구재단의 신진 연구자 지원 사업을 신청했고, 우리 학교 교내 연구비 지원 사업을 신청할 예정이며, 우리 학교의 신진교수 연구 정착 지원 사업에도 신청할 예정이다. 만약 연구재단 사업에 선정된다면 올해만 3개의 연구 사업을 꾸려나가는 셈. 게다가 5월의 고려대학교 특강, 6월의 학술대회 발표 2건(한국 1건, 대만 1건), 7월의 학술대회 발표 2건(한국 2건)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쉴 틈이 없이 바쁜 셈이다. 이렇게 상반기에는 학술대회 발표를 준비하며 학..

일상 이야기 2025.04.30

교수 1년

내가 어느덧 대학교수가 된 지도 1년이 넘어간다. 사람은 본래 적응의 동물이라, 2024년 2월까지 내가 국립대구과학관에서 일했다는 사실이 지금으로서는 사뭇 까마득하게 여겨진다. 막연하게 생각하던 예전에는 대학교수라는 직업이 평범한 나로서는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직업처럼 여겨졌지만, 막상 교수가 되고 나니 교수의 스펙트럼은 매우 다양하고 교수가 될 확률이 생각보다 작지는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오히려 나는 내가 교수라기보다는 공무원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국가가 주는 녹을 먹고 사는 공인이라고 생각하는 게 내 마음에 편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이력은 연속적인 편인데, 왜냐하면 육군-한국장학재단-국립대구과학관 모두 국가 재정으로 운영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 또한 국립대학교이므로(법인이긴..

일상 이야기 2025.04.27

일관된 연구의 필요성

이제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적절한 사용이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 나는 인공지능을 사용할수록 인간에게는 더욱더 일관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특정 분야에 대한 확고한 전문적 식견이 없다면 그 분야에 관련된 언어적 게임에서 인공지능을 이길 가능성이 상당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인공지능은 오히려 좀 더 전통적인 인간의 수련 방식을 강조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어떤 일을 할 때 아주 깊게 해야만 인공지능을 이길 수 있다. 물론 계산의 영역, 단순한 규칙에 기초한 게임의 영역에서는 더 이상 인간이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다. ‘시간’과 ‘공간’은 매우 전통적인 철학적 탐구 주제다. 이 주제를 가지고 평생 연구를 해도 충분할 정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세기 이후 발전한 자연과학을 기초..

내 나이에 맞게 내 할 일을 꾸준히

사회의 순리라는 게 있다. 이러한 순리가 고정불변의 진리인 것은 아니다. 그저 순리는 한 사회를 유지하고 갱신해 나가는 데 꼭 필요한 규칙과 같다. 예를 들어 내가 20대일 때는 우리 사회 분위기상 대개 남성의 경우 30대 초반에 결혼하는 게 순리였다.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남성이 30대 후반에 결혼하는 게 별로 늦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내가 지금 20대였다면 아마 30대 후반쯤 결혼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지금까지 사회의 순리대로 살기 위해 노력해 온 것 같다. 실제로 나로서는 특별하게 사는 게 아니라 사회의 순리대로 무난하게 사는 것조차 아주 어렵게 여겨졌다. 내 나이 또래의 지인들을 생각하면 직장인의 경우 대개 부서에서 차장이나 부서장의 역할을 맡고 있다...

일상 이야기 2025.04.20

철학의 전장, 혹은 전장의 사유

철학을 하는 사람은 전장에 있는 사람이다. 전사로서의 철학자. 나는 소크라테스를 생각할 때마다 강인하고 두려움 없는 군인을 떠올린다.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여러 전투를 치러내며 죽음의 위기를 이겨낸 훌륭한 군인이었다고 전한다. 그러면 소크라테스는 ‘철학자이기도 하고 좋은 군인이기도 했던’ 것일까? 오히려 그는 좋은 군인이었기 ‘때문에’ 철학을 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오늘날 존재하는 대학, 연구소 혹은 다른 겉보기에 평화적인 기관과 제도는, 철학자에게는 끊임없이 치러나가는 일련의 전투 속 일시적인 휴식처일 뿐이다. 그 허상을 즐기되 스스로 속아 넘어가지는 않는다. 너무 당연하게도, 철학자가 굳이 전사로 살아갈 이유는 없다. 예를 들어 그는 이미 일어났던 전쟁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으로 살아가도 된다..

발표 준비의 즐거움

작년에 대구에서 열린 철학 학술 발표회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한 고려대학교 철학과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교수님께서도 과학철학에 큰 관심을 보이고 계신 것 같았다. 그날 이후 교수님께서는 나에게 연락을 주셔서, 고려대 철학과에서 2025년 1학기에 철학과-물리학과가 서로 협업하여 수업을 개설할 계획인데, 그때 혹시 공간과 시간에 관한 특강을 각각 1회씩 해줄 수 있겠느냐고 제안하셨다. 당연히 나로서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그 제안에 응했다.    막대와 시계의 물리학. 나는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을 이렇게 간단히 정리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고 유형의 기원을 찾던 중 나는 리만과 헬름홀츠의 논문 원전을 읽게 되었..

나의 언어로 표현하는 일

읽는 것은 편하다. 내가 어떤 글을 읽는다고 하면, 그 글은 대개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쓴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는 데 1분이 걸렸다고 할 때, 아마도 그 글을 쓴 사람은 1시간 이상을 공들여 글을 썼을 것이다. 여기서 노동의 차이 혹은 비대칭성이 발생한다. 많은 경우 글 읽는 사람은 글 쓴 사람의 노동 성과를 즐긴다. 그래서 글을 읽는 일은 글을 쓰는 일보다 편하고, 더 익숙해지기 쉽다.    비슷한 논리가 듣는 것에도 적용된다. 말하는 것보다는 말을 듣고 이해하는 게 훨씬 더 편하다. 듣는 사람이 재미있도록 말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동과 준비가 필요하다. 1시간 재밌게 말하기 위해 3시간 이상 준비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듣는 것을 위해서는 거의 별다른 준비가 필요하지 ..

상상력과 변화

2025년 4월 4일 11시 22분에 헌법재판소 판결 선고에 따라 윤석열은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다. 사실 검찰 출신이었던 윤석열이 보수 정당의 대권 후보가 될 때부터 나로서는 좀 이상하고 황당했다. 대체 저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대통령을 할 수 있는가? 법조인 출신 정치인이라면 실제로 많이 있으니 이해하겠지만, 정치 경력이 너무나 짧고 실질적으로 오직 검사로서의 경력만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 저런 사람이 어떻게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도 내에서 대통령이 될 수 있나?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로 손꼽히는 것이 정치인데, 그런 정치 중에서 가장 정점에 있는 대통령직을 정치 초보가 수행한다? 이상하다. 그런데 실제로 대한민국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억지 결정을 했다.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것이다.    윤석..

일상 이야기 2025.04.06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

오래전 나는 과학철학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말렸다. 그게 뭐야? 왜 해? 하지 마. 어쩌면 그때 나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들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하고 싶다는 나의 마음이 하지 말라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보다 더 강했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나는 과학철학을 하면 안 되는 건가? 이걸 하면 죄를 짓는 건가? 그런데 그건 아니었다. 결국 나는 내가 과학철학을 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냥 하기로 했다.    과학철학을 하면서는 내적인 회의감이 자주 들었다. 특히 과학철학을 하기에는 내가 너무 멍청하다는 생각을 수시로 했다. 과연 내가 계속 과학철학을 해도 되는 걸까? 철학도, 수학도, 물리학도 잘 못하는 내가? 그래서 나는 물었다. 과학철학을 잘 못하는 내가 과학철학을 ..

일상 이야기 2025.04.02

운명의 한 주

나는 현재 한국이 정치적인 대립을 넘어선 일종의 내전 상황에 돌입했다고 판단한다. 그 가장 뚜렷한 징후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 선고 지연이다. 정상적으로 사법 시스템이 작동되었다면 인용이든 기각이든 벌써 판결 선고해야 했다. 이는 명백한 이상 징후이며, 헌법재판소 내에서 격렬한 정치적 대립과 긴장이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다음으로 살펴볼 수 있는 징후는 철면피를 한 여당의 뻔뻔한 거짓 공격이다. 이때 여당 스스로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명백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참과 거짓, 정의와 불의를 가장 근본적인 기준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힘의 싸움 속에서 지지 않으려는 의지만을 발현하고 있다. 이제 진실 혹은 정의를 판가름하는 여당과 야당의 공통 기준은 사라졌..

일상 이야기 2025.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