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는 스스로가 퍽 차분해졌다고 느낀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내 직업 이력의 막바지에 다다랐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국립목포대학교의 교수가 된 이후, 마음 같아서는 가족들 모두를 광주 전남권으로 옮기게 하고 싶었지만, 대구과학관에서 즐겁게 근무하며 자아를 실현하고 있는 아내의 꿈을 꺾을 수 없어, 계속 주말부부를 하기로 했다. 주말부부의 경험은 신혼 초에도 있었다. 세종시에서의 파견 근무 기간을 포함해, 한국장학재단이 서울에서 대구로 본사를 이전하기 전까지. 그때도 지내기가 쉽지는 않았으나 당시에는 아이들이 없었기에 다소 수월했다. 지금은 다르다. 아이가 셋이고, 무릇 아이들에게는 아빠가 필요한 법이다.
그래도 교수라는 직업 특성상 방학이 있는 등 여러모로 장점이 많기에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또한 나는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기에 나의 생업에 대해서도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 국립대학교 교수는 교육 공무원이므로 철저하게 원칙을 지키며 일해야 하긴 하지만 그만큼 직업적인 안정성을 보장받는다는 장점이 있다. 우리나라의 미래 인재가 될 학생들에게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가르치며 나의 사회적 존재를 인정받고 생활을 영위한다는 사실 자체에 나는 마음 깊이 감사한다. 여전히 나는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42년 동안의 일관된 노력으로 교수라는 직업에 안착했다는 점에 대해 만족하며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국립목포대학교의 교양학부 소속 교수로서 나는 다양한 교과목들을 가르친다. 특히 유일한 서양철학 전공 전임교원으로서 큰 책임감을 느끼는데, 왜냐하면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도 서양철학을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서양철학, 과학사, 과학철학, 논리학 영역을 가르치며, 장기적으로는 자연과학 기초론(수학 철학, 물리 철학)을 강의하고 싶기도 하다. 당연히 아주 깊은 수준으로는 가르칠 수 없다. 학부 교양 수준의 자연과학 기초론을 강의하고 싶다.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하면서도 문제 풀이만이 아니라 수학과 물리학의 ‘의미’를 따지고 이를 ‘해석’하려는 학생들이 있을 것이다. 자연과학 기초론은 그러한 학생들의 바람에 부응하기 위한 과목이다. 교과목의 정식 명칭은 ‘교양으로 읽는 자연과학’ 정도로 하면 될 것이다. 이름을 과도하게 무겁게 지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임용 초기에는 광주에서 출퇴근하는 것이 퍽 부담스러웠는데, 지금은 이에 적응해서 통학버스에서의 출퇴근 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버스 안에서 책이나 논문을 읽으면 능률이 올라가고, 버스를 타고 가며 창밖의 다양한 풍경을 즐길 수도 있다. 서울에서 생활할 때 기본적으로 통근 시간이 편도 1시간이었음을 생각하면 그다지 나쁜 것도 아니다. 게다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김대중 컨벤션센터역 근처)도 마음에 든다. 번화가가 아니라 조용하고, 내가 좋아하는 김대중 대통령을 상징하는 시설도 있어서 때때로 김대통령을 생각하게 된다. 광주라는 도시는 나의 전반적 성향과 상당히 부합한다. 광주에 있으면 한국 민주화의 성지에서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생긴다. 돌아보면 내가 광주 시민이 된 지 어느덧 1년이 넘었다.
내가 요즘 부쩍 차분함을 느끼는 것은 내가 나 스스로에 대해서 좀 더 잘 알고 그만큼 욕심을 부리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나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객관적인 나의 모습과 상당히 비슷하면서도 중요한 부분에서 분명히 다르다. 늘 나는 나에 대한 일종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데, 이것은 인간으로서는 완전히 지울 수는 없는 고질병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에게는 때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나는 여러모로 부족하고 단점이 많은 나 자신을 제법 잘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능력을 초과하는 욕심을 부리지 않으려 하며, 오히려 내 수준에 맞는 최선의 노력을 할 수 있는 요령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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