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384

남은 반평생을 준비함

나는 이 세상,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지구 위에서 살아가는 그 누구도 매우 치열하게 살아간다고 믿는다. 실로 그럴 수밖에 없다. 삶은 매일 전쟁이고 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던 나 역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애썼다. 나는 요즘 나를 이러한 비유를 들어 생각한다. 일반 병사로 입대해 전쟁 통에서 우여곡절을 겪고 겨우 살아 남아 중위나 대위 정도로 진급한 군인. 살아남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공을 세우기는 했지만 아주 빛나는 무공을 세운 것은 아니었기에, 현재 대위이며 소령 진급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 과연 장군까지 진급할 수 있을까? 아마 힘들 것이다. 그래도 중령이나 대령까지 군 생활을 해도 군인으로서 실패하지는 않은 것 아닐까?    나는 10년..

일상 이야기 2024.09.29

성실하되 너무 열심히 하지 않기

아내는 종종 ‘내 손이 느리다’라며 핀잔을 준다. 이건 맞는 이야기다. 아내는 나보다 일 처리가 훨씬 빠르다. 내가 뭘 하고 있으면 답답하다면서 자기가 해 준다. 그러면 나는 머쓱하게 웃으면서 고맙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볼 때 이와 유사한 상황이 나에게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일을 빨리 처리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나는 좀 느린 편이라서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나를 좀 둔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다만 나는 아주 성실하긴 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일어난 이후부터 계속 꾸준하게 내가 할 일을 한다. 나에게는 성실함이 최대의 무기였다. 공부할 때도 나는 그냥 성실하게만 했다. 내가 딱히 다른 친구들보다 머리가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성실..

일상 이야기 2024.09.26

생활하는 철학자

철학사를 보면 역사에 남은 철학자 중에서는 집이 부유해서 생계를 걱정하지 않았던 철학자가 많다. 그러나 나는 전혀 그런 유형의 철학자가 아니다. 우리 집은 1990년대까지는 제법 벌이가 괜찮은 의류 도매상인의 집안이었지만, 1997년의 대규모 외환 위기 이후 우리 집안의 가세는 계속 기울었다.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대학에 다니면서도 해외 연수를 가지 않았고 극도로 절약하는 삶을 살았다. 서울대학교는 국립대학이라 사립대학에 비해 등록금이 저렴했다. 나는 대부분 학교에서 제일 저렴한 밥을 사 먹었고, 커피는 대개 자판기에서 뽑아 마셨다. 남들이 궁상을 떤다고 비판해도 상관없었다. 그게 나의 생존 방식이었다.    육군 장교는 군 복무도 하고 돈도 벌자는 내 나름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복학 후 대학원에 다니..

일상 이야기 2024.09.22

삶을 단순화하기

나는 평소에 아침 일찍 일어난다. 부지런하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 남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매일 일찍 일어나서 무엇인가를 계속 해 나간다. 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집안일을 하고, 나 혼자 있을 때는 대부분 학교 연구실에 간다. 연구실에 있으면 가끔 쉬기도 하지만 그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가 계속 무엇인가를 하게 만든다. 수업을 준비하고, 책을 읽고, 논문을 읽는다. 그렇게 나는 나라는 사회적 존재가 해야 하는 일을 끊임없이 한다. 그렇게 계속 일을 해야 마음이 편해진다.    이번 학기에는 수업이 많다. 지난 학기보다 5학점이나 수업을 더 많이 한다(14학점, 6과목). 그래서 아직은 수업 준비로 바쁘다. 이번 주만 지나면 좀 더 적응되어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번역도 꾸준히 해야 한다. ..

일상 이야기 2024.09.11

철학자로서 살아가기

나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삼국지를 읽으면서 큰 영향을 받았다. 이문열씨가 편역한 10권짜리 삼국지를 거듭 읽었고, 일본 코에이(Koei)사에서 출시된 삼국지 게임도 거의 빼놓지 않고 즐겼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많이 아쉽긴 하다. 우리나라의 역사에도 흥미로운 사건들이 많았을 테고, 그걸 재밌는 소설로 썼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왜 한국인인 내가 중국의 역사에 열광했고, 왜 그 역사를 배경으로 삼아 만든 일본의 게임을 즐겼을까? 지금이라도 우리의 역사를 단서로 해서 멋진 소설과 게임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이제 우리나라의 작가들도 충분히 뛰어난 역사 소설을 쓸 수 있고 우리나라의 게임 개발자들도 세계적으로 뒤지지 않는 수준 높은 게임을 만들 수 있지 않나?    어쨌든, 나는 삼국지 속에 등장하는 인물 중 ..

일상 이야기 2024.09.04

국립목포대학교 교수라는 자부심

지금 나는 내 생애의 세 번째 직장인 국립목포대학교에 재직하고 있다. 나의 전 직장인 한국장학재단, 국립대구과학관 모두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가 기관이다. 그렇지만 ‘과학철학 연구자’라는 나의 핵심적인 정체성에 가장 들어맞는 직장은 현 직장인 국립목포대학교다. 작년인 2023년 12월에 국립목포대학교는 공개적으로 과학철학 전공자를 모집했고, 나는 이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해서 정정당당하게 합격했다. 강의 평가와 면접 평가 과정에서 다시금 자신의 부족함을 절감했지만, 최종적으로 나의 열정과 가능성을 보고 나를 선택해 준 국립목포대학교에 감사드린다.    전체적으로 보면 나는 점차 내 전공에 맞는 기관으로 옮겨왔다. 나는 한국장학재단에서 주로 행정적인 업무를 담당했지만, 그래도 대학생의 학업을 ..

일상 이야기 2024.08.28

한반도 지식인의 전통 속으로

최근 나는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는 세계상이나 세상에 대한 개념들이 마치 내가 입고 있는 옷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세계상과 개념은 ‘비역사적’이고 ‘동시대적’이다. 19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우리 한반도에 수입된 서양의 문물이다. 그 이전까지 한반도에서는 한반도 고유의 역사가 전개되고 있었다. 우리는 예전까지 진행된 역사의 연장선 위에서 우리와 나 자신의 역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내가 오래전 가졌던 서양적 수학과 과학에 관한 선망과 환상 역시 그다지 근거가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된 것 또한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982년에 태어난 나는 1980년대 대한민국 경제 호황의 수혜자다. 당시 의류도매업을 하셨던 아버지의 사업이 비교적 잘 되었고, 나는 물질적 부족함 없이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일상 이야기 2024.08.25

나의 정치적인 관점

나는 스스로 서민 또는 중산층에 속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내 가까운 가족 중 사회적으로 권위 있는 사람은 없었다. 큰아버지께서 대구에 소재한 한 농협의 지점장을 하셨다는 정도? 그런데 그 사실이 우리 가족에게 특별히 도움이 된 것은 없었다. 내가 성인이 된 이후 셋째 고모부께서 모 사립은행의 부행장까지 오르신 적이 있지만, 내가 고모부로부터 사적인 도움을 받은 일은 전혀 없다. 나는 국사와 세계사를 싫어하지 않았지만, 역사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대학에서도 국사학, 서양사학, 동양사학(철학, 미학, 종교학, 고고미술사학을 포함하여)을 전공으로 선택할 기회가 있었지만, 나는 철학을 선택했으며 역사학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또한 나는 스스로 보수 성향의 인물이라 생각한다. ..

일상 이야기 2024.08.18

즐거운 과학 및 공학 공부

나의 전공이 철학인지 모른 채 나와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은 이후 내가 철학을 전공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소 놀라곤 한다. 이들은 내가 수학 또는 물리학을 전공한 사람인 줄 알았다고 말한다. 내가 말하는 대부분의 주제, 개념, 이야기 등이 실제로 과학 혹은 기술에 연계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들의 이와 같은 반응이 타당하며, 이는 나라는 사람의 중요한 면모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나는 가끔 내가 수학이나 물리학을 전공했다면 어땠을지 생각한다. 그만큼 나는 명료한 개념 체계와 단순하고 분명한 문제 풀이를 좋아한다. 추상적이기만 하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맹목적으로 수학과 과학을 공부하고 문제를 잘 푸는 것에만 집중하는 관행은 몹시 싫어했다. 나는 자연이 ..

일상 이야기 2024.08.14

내 삶에 특권이나 반칙은 없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나와 가까운 사람이 직위 혹은 권력을 통해 특혜를 받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나의 친척 중에는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약사, 변리사 등 소위 말하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건 내가 태어난 집안이 지극히 평범한 집안이었다는 것을, 좀 강하게 말하면 나의 집안은 별볼일없었음을 뜻한다. 실로 나는 정치와 권력에 관해서 오로지 글과 책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 실제를 경험하여 생생하게 실감할 수 없었다. 오직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런 뭣도 모르는 내가 대학에 들어가니, 나의 관점에서 볼 때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들을 접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험을 봐서 서울대학교..

일상 이야기 2024.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