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357

예배, 차례, 관용

추석 전 성묘를 하지 못해서 어제(10월 7일) 오전에 경상북도 성주에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묘소에 다녀왔다. 묘소 바로 아래에는 예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쓰시던, 이제는 큰아버지께서 관리하는 집이 있다. 그로부터 차를 타고 5분 정도 내려오면 아버지께서 마련하신 작은 농막이 있다. 나는 아버지 농막에 들러 마른 멸치 조금과 소주 한 병을 챙겨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뵈러 갔다. 생전에 할아버지께서는 소주를 참 좋아하셨다. 할머니께서 술을 드시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절을 하며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할아버지에게서는 선비의 느낌이 났지만, 술과 육회를 좋아하셨고 욱하는 성미도 있으셨다. 할머니께서는 늘 부지런히 일하셔서 등이 구부러져 있었지만, 다른 사람이 ..

일상 이야기 2023.10.08

글 쓰는 시간

나는 과학철학자일까? 박사학위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물음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답하지 못할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껏 나름 고생을 해서 학위를 취득했지만, 나 자신이 확고한 과학철학자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다소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과학철학 연구자’라는 명칭이 나에게는 더 편안하고 마음에 든다. 다만 나에게 제법 확실한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글 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나는 강한 확신을 갖고 있다. 나라는 사람에게 글쓰기는 삶의 핵심적인 에너지원이다. 내가 글 쓰는 습관을 들인 것은 중학교 시절이었는데, 아주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매일 일기쓰기를 의무적으로 시켰다! 약간 특이한 학교이긴 했다. 교실 바닥이 마루..

일상 이야기 2023.10.05

물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다스리는 것

의외로 사람들은 물을 쉽게 혹은 우습게 본다. 대개 “나를 물로 보나?”라는 말은, 어떤 사람이 나를 쉽게 혹은 우습게 생각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때로 우리는 “물 흐르듯 살아라.”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물보다 무서운 것이 없다.”라는 조언을 듣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볼 때 나는 물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보다는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나는 평소에는 물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꼭 필요한 만큼만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해야 할 일을 해내는 것을 선호한다. 삶은 전체적으로 볼 때 물의 흐름과도 같은 것인지 모른다. 삶을 잘 살기 위해서는 물의 흐름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 우선 물에서 살기 위해서는 물에서 뜨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 마음대로 발버둥 친다고 해서 물에 뜰 수 있는..

일상 이야기 2023.10.01

아버지와의 목욕

추석이라 어제 오후 반차를 써서 대구에서 부모님이 계시는 부산으로 내려왔다. 차가 좀 막히긴 했지만, 저녁 6시 30분쯤 부모님 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짐을 풀고 온 가족이 저녁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 한창 아시안 게임이 유행이라 다른 가족들은 열심히 텔레비전으로 각종 스포츠 경기들을 시청했고, 나는 며칠 전에 주문한 인공지능 관련 책을 틈틈이 읽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필수 소양이고, 특히 과학관에서 과학교육을 담당하는 중인 나로서도 꼭 익혀야 하는 지식이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아버지께서 목욕탕에 가자고 하셨다.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셋째 아이인 아들 태현이도 같이 데려가려 했으나, 오늘 아침에 아이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아서 그냥 ..

일상 이야기 2023.09.28

블로그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제 블로그에 쓰이는 대부분의 글들은 저의 독백과도 같은 글이지만, 이번 글은 특별히 블로그 독자 여러분을 위해 쓰고자 합니다. 우선 저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방문해주시고 제 글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평소 저는 그렇게 말이 많은 편이 아닙니다. 어쩌면 말로 표현을 잘 못하는 편이라 이렇게 글을 통해서라도 제 자신을 표현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글로 표현되는 저의 모습과 실제로 만났을 때의 저의 모습이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저는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매우 사랑합니다. 예전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당연히 사랑한다고 해서 그것을 잘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학자 혹은 연구자로서의 저의 역..

일상 이야기 2023.09.23

차분한 나날들

다른 사람들은 나를 이상적인 혹은 비현실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가 생각할 때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지극히 현실적인 의사 결정을 일관되게 해왔다. 내가 과학고등학교를 자퇴한 것은 내신 성적이 불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과학고등학교에서 교과과정 학습이 거의 끝나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에 자퇴했다. 자퇴 후 나는 응시 계열을 이과에서 문과로 바꿨는데, 왜냐하면 나의 경우 이과보다는 문과 계열 과목들에서 더 성적이 잘 나왔기 때문이다. 자퇴 후 나는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대입 입시학원에 등록했다. 과학고를 자퇴했던 까닭에 나는 학원에서 다른 과학고 자퇴생들과 함께 일종의 특별대우를 받아 매달 8만 8천원만을 내고 학원에 다닐 수 있었다. 나는 대입 입시학원에 다닐 때도 학원에..

일상 이야기 2023.09.19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나는 많은 측면에서 불완전한 사람이다. 내가 정말 잘하는 일들은 얼마 없다. 예를 들어, 나는 노래를 잘하지 못하며, 운동을 잘하는 것 또한 아니다. 각종 게임을 잘하지도 못한다. 그나마 내가 잘하는 것은 책을 읽고 이해하고 요약하고 글을 쓰는 일이며, 주로 영어로 된 글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이다. 다른 일들에 관해서는 평균적인 혹은 그보다 더 못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대체 ‘잘났다’라는 것이 무엇일까? 공부를 잘하는 게 잘난 것인가? 그것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돈을 잘 벌면 잘난 것일까? 요즘은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어떤 측면에서는 잘나고 다른 측면에서는 못났다. 일은 잘하지만 관계에서 젬병인 사람도 있고, 일은 못하지만 관계를 잘..

일상 이야기 2023.09.16

나답게 살되, 욕심을 줄이고 적을 만들지 않는다

살다 보면 참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난다. 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대체 나는 왜 이런 사람인가 싶다. 나는 어쩌다가 이런 사람이 되었나. 거듭 생각해봐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참 여러 일들이 일어난다. 저 사람은 대체 왜 저러나. 무엇이 저 사람을 저렇게 만들었나. 왜 저 사람은 그런 사소한 일 때문에 그토록 과도한 힘과 열정을 소모하는가. 내가 아주 어린 학생 시절부터 억울함을 느꼈던 것도 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 목소리를 드러내서 적극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저 미련한 곰처럼 나는, 공부를 해야 할 때는 그냥 말없이 공부했고, 세상에서 정해 놓은 여러 규칙을 순순히 따랐다. 그래도 나에게 고집은 있었고, 그 고집은 센 편이었다. 나..

일상 이야기 2023.09.01

죽음을 생각하며 산다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사람마다 취미, 특기, 취향 등이 서로 다르다. 나는 학생 시절부터 글 읽는 것을 좋아했다. 사실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글 읽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시험을 봐서 좋은 성적을 얻는 일에는 크게 흥미를 가지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을 시험 성적에서 앞지르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었다. 그냥 공부를 해서 시험을 보는 것은 학생으로서 내가 해야 하는 의무였고, 그저 그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을 뿐이다. 나는 한반도의 남쪽 지역에서 서식하는 5천만의 인간 개체들 중 하나이다. 41년 동안 죽지 않고 겨우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나는 대한민국의 한 지방의 중산층 가정에서 1980년대 초반에 남성으로 태어나, 표준적인 교육 과정을 거친 후, 군 복무를 하고, 공공기..

일상 이야기 2023.08.28

오만함을 반성함

요즈음 ‘공동체’에 대해서 자주 생각한다. 그 어떤 사람도, 그 사람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특정한 공동체의 일원에 지나지 않는다. 한 사람이 모든 일들을 다 할 수는 없다. 어쩌면 이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무엇인가 제대로 된 일은 그러한 공동체 속에서 다른 구성원들의 인정을 받은 후에야 이루어진다. 공동체 내에서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할 경우, 그것은 그저 특정한 개인의 머릿속에 상상이나 몽상으로서 남아 있을 뿐이다. 이런 생각을 자주 하는 것은 아마도 내가 최근 복직하여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연구는 개인적일 수 있다. 개인 단위로 연구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많은 경우 최소한 2명 이상이 함께 논문을 쓴다. 책 집필도 마찬가지다. 설혹..

일상 이야기 2023.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