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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적인 연구자

일요일 오전, 자주 들르는 카페에 앉아 느긋하게 글을 쓴다. 나는 성실하긴 하지만 조바심을 내지는 않는다. 급할 게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성실하므로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되는지 모른다.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욕심이 별로 없다는 것. 가끔 회의 같은 것에 참여해 보면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주 보는데, 사실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그 사람에게는 그게 그렇게 중요할 수 있는 걸까. 결코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비난하려는 건 아니다. 그건 사람들이 아닌 나의 문제일지 모른다. 나는 살아오면서 그 어떤 집단에도 온전히 소속되어 본 적이 없다. 내가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부모님이나 누나가 나를 온전히 이..

좋은 사람으로 살기

이 세상에서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여러 방식이 있다. 대한민국 사람으로 살기. 이건 태어날 때부터 그러했던 것이어서 나에게 선택지가 없었다. 그런데 마음만 먹으면 다른 나라 사람으로 살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살 수도, 중국에서 살 수도 있고, 그렇게 살면서 국적을 바꿀 수 있다. 변화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남자로서 살기. 이것도 내가 태어날 때부터 그러했지만, 오늘날 생물학적 성을 전환할 수도 있을 정도로 의학 기술이 발전했으므로 마음만 먹으면 바꿀 수 있다. 우리 부모님 자식으로 살기. 나는 이미 인간으로 태어났으므로 생물학적 부모님을 바꾸는 방법은 없다. 다만 법적으로 부자 관계를 바꿀 수는 있을 것이다. 사는 게 아니라 죽기. 이것도 가능은 하다. 태어난 건 나의 의지가 아니었지만..

일상 이야기 2026.10.08

일을 막지도 잡지도 않기

나는 수행(修行)하듯 철학을 한다. 이때 나는 주로 역사를 참조한다. 옛날 로마 제국이 그리스 문명이 이룩한 학문을 얕잡아보고 그리스 학자들을 박해했을 때, 이들은 그리스의 문헌을 싸매 들고 동쪽으로 갔다. 동쪽으로 간 그리스 문헌들은 시리아어와 아랍어로 번역되어 그곳에서 보존되고 발전되었다. 이민족이 쓴 문헌을 번역하고 연구하기. 불교가 인도에서 탄생하여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왔을 때, 한반도에서 살던 사람들도 불교 문헌(한문, 산스크리트어)을 오래도록 연구하고 소화했다. 나는 그런 역사적 사례를 참조하여 나의 작업을 진행한다. 우리가 접하는 오늘날의 과학(科學, science)은 우리 고유의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소화하는 작업, 내게 과학철학은 그러한 소화를 위한 작업이다. 내..

일상 이야기 2026.10.04

게임의 즐거움

최근 중고로 닌텐도 스위치2를 구매했다. 위쳐3 리마스터 버전이 출시된다는 소식을 듣고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삼국지 게임(삼국지8 리메이크)도 좋아하는데 스위치1은 화면이 너무 작아서 플레이하기가 좀 어려웠다. 그래서 10번도 넘게 고민하다가 최근 당근마켓에서 시세보다 10만 원 정도 저렴하게 스위치2를 구했다. 원래 주인이 거의 쓰지 않아서 새것 같은 스위치2였다. 스위치1에 비해 화면이 넓고, 그래픽이 좋고, 로딩 시간이 짧았다. 충전 유지 시간은 스위치1보다 못해서 좀 아쉬웠다. 어쨌든, 9월 30일에 한국에서 위쳐3 리마스터 버전이 출시되자 나는 기다렸다는 듯 이를 받아서 플레이하고 있다. 위쳐3, 삼국지8 리메이크를 번갈아 하다 보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나도 모르게 2시간은 금세 지나간..

일상 이야기 2026.10.01

신변잡기를 권함

신변잡기(身邊雜記)란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을 적은 수필체의 글이다. 나는 내가 쓰는 글이 대개 신변잡기에 해당한다고 보며,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쓴다. 아마 나의 글을 읽는 사람들도 그것을 매우 심각하거나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으리라. 나는 뭔가 거창하고 대단한 것을 글로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거창하고 대단한 글을 쓰는 것은 분명히 필요하며 그건 아무나 할 수 없는 매우 힘든 일이다. 그에 반해 나는 아무나 쓸 수 있는 쉬운 글을 쓰는 것을 추구한다. 세상은 계속 바뀐다. 나는 추석과 같은 명절에 부모님이 계신 나의 고향에 내려가면 그러한 변화를 실감한다. 예를 들어 대구에서 부산으로 내려가는 최적의 고속도로 노선은 조금씩 바뀐다.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최근 개통된 고..

일상 이야기 2026.09.27

삶의 소소한 목표

나는 대중의 일원이다. 별로 두드러지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존재감이 별로 없이 지내며 그렇게 지내는 게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 아직도 기억하는 나의 학창 시절 감성은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약간 늦은 밤까지 독서실에서 공부하는데, 성적을 잘 받고 싶다는 욕망보다 그냥 그렇게 하는 게 나의 일인 것 같아 밤 10시 정도까지 공부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듣는다. 음악을 듣는 시간이 내겐 행복한 치유의 시간. 나는 영화보다는 음악이 좋았다. 영화는 뭔가를 많이 준비해야 볼 수 있었지만, 음악은 그저 건전지를 충전하기만 하면 플레이어를 들고 다니면서 언제든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서울대에 들어간 것도 딱히 자랑스럽지 않았다. 주변에서 나를 대단히 칭찬해 주지도 않았다..

일상 이야기 2026.09.24

가을의 느낌

기나긴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찾아왔다. 어느덧 국립목포대학교에서 일한 지도 3년이 되어 간다. 임용 당시의 총장님께서는 최근 임기를 마무리하셨고, 곧 새로운 총장님께서 학교를 이끌어가시게 될 것 같다. 그동안 학교를 떠난 교수님들도 계시고 새롭게 학교에 들어오신 교수님들도 계신다. 나는 대학 임용과 함께 주말부부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게 어느덧 3년이 되어 간다. 돌이켜보면 그 시간이 너무나 빨리 지나갔다. 교육과 연구를 함께 하면서 가정도 챙기는 일.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실로 그만큼의 성과가 있었던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금껏 나는 다른 것들을 챙기면서도 나 자신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게 아닐까? 다른 사람의 부탁은 거절하지 못하면서도 왜 나는 유독 나 자신에게 ..

일상 이야기 2026.09.20

성찰과 해석

사람은 생각보다 기계에 가깝다. 혹은, 사람은 자신이 기계가 아니라고 생각하게끔 프로그램된 기계와 가깝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 “당신은 기계와 비슷하군요.”라고 말하면 그 사람은 대개 모종의 불쾌함을 느낀다. 맹목적으로 계속 움직이는 기계 장치. 데카르트는 강아지를 보면서 정교한 기계 장치를 떠올렸다. 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강아지를 떠올리곤 한다. 비슷한 듯 다른 얼굴들. 자기의 삶과 정체성에 대해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는 듯한 표정. 사람은 자신의 현재 삶에 오롯이 빠져 있는 기계들인지도 모른다. 기계처럼 행동하고 말하고 심지어 감정을 느낀다. 삶은 늘 시급하다. 매 순간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계, 삶, 사건에 대한 해석은 광대하게 열려 있다. 그런 해석의 광대함을 깨닫는 때..

교육자로서의 마음가짐

나는 수학과 과학 특히 물리학을 좋아한다. 당연히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다. 나는 수학과 물리학을 좋아하지만 잘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잘하지 못한다고 해도 즐길 수는 있다. 나는 수학과 물리학을 즐긴다. 책을 읽고, 문제를 풀고, 곰곰이 생각한다. 이건 직업이 아니라 취미다. 고등학생 시절, 나는 수학과 물리학 문제를 푸는 것보다 그 역사와 철학을 읽는 게 훨씬 더 재밌었다. 그래서 나는 과학사와 과학철학의 길을 선택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나는 훗날 수학과 물리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삶이란 참 흥미롭다.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과의 대화와 타협을 완전히 포기해서는 안 된다. 적당히 대화하고 타협해야 한다. 포기해서는 안 된다. 대학 시절에는 신림동 공부..

일상 이야기 2026.09.13

교양 교육을 생각한다

나는 국립대학교의 특정 학과가 아닌 교양학부에 소속되어 일하고 있다. 나는 이 상황에 상당히 만족한다. 대학원에 진학할 당시, “너는 학부 시절 인문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는데 왜 철학과 대학원에 가지 않고 자연대학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으로 가느냐”라고 몇몇 지인이 내게 물었다. 그런데 나는 애초에 대학 1학년 때부터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으로 진학하려고 했다. 과학철학을 하려면 인문대학에서 계속 공부하는 것보다는 자연대학에서 과학과 과학사를 공부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사학위를 받고 보니 왜 지인들이 내게 그런 질문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국내 대학에서 철학과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철학과가 있더라도 철학과 고유의 전통이 강한 편이다. 일반적으로 철학과에서는 학부와 대학원..

일상 이야기 2026.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