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815

겸손하고 신중하게

내가 아주 많이 나이가 든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에게 아주 많은 시간이 남은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행보는 상당히 신중해야 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삶을 일관되게 살아가는지이다. 특히 나와 같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경우, 자기의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이것저것 무모하게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이다. 관심을 둬야 하는 주제를 확정한 후 그 길로 학문 탐구를 계속 밀고 나가야 한다. 한스 라이헨바흐의 과학철학 연구를 계속 진행해야 한다. [물리적 지식의 목표와 방법] 원고는 이미 출판사에 넘겼다. [시간의 방향] 원고를 6월 말까지 출판사에 넘기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늦어도 7월까지는 반드시 출판사에 넘겨야 할 것이다. 8월부터는 라이헨바흐의 ..

일상 이야기 20:48:19

독립성의 추구

나는 독립적인 삶을 선호하는 유형의 사람인데, 나도 내가 왜 이러한 유형인지는 잘 모른다. 어쨌든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독립성을 추구했다. 초․중․고등학생 시절 내가 독립성을 추구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도구는 공부였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공부를 잘하면 그 학생은 잘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판검사, 변호사, 의사가 되기 위해서 공부를 한 게 아니라, 그저 독립성을 얻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이고, 이것이 나라는 유형의 사람을 특징짓는다고 볼 수 있다. 대학에 들어간 뒤에는, 과연 철학을 전공해서 어떻게 우리나라 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느냐의 문제가 내 앞에 놓였다. 그때 내가 처음으로 생각했던 방법은 공무원이 되는 거였다. 공무원이 되면 법과 규정에 따라 일을 할 수..

일상 이야기 2025.07.11

도서관형 인간

고등학교 2학년 여름에 학교에서 나왔던 나는, 학교 대신 시립 도서관으로 출근 비슷한 것을 시작했다. 나는 아주 성실하게 출퇴근했고, 업무 시간에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했다. 내가 하는 일이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생각하며 노트를 꺼내 글을 쓰는 일이었다. 어머니께서 도시락을 싸 주시는 경우에는 도서관 식당에서 도시락을 꺼내 먹었고, 아닌 경우에는 도서관 식당에서 사 먹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에는 어쩔 수 없이 입시 준비를 위한 학원에 다녔다. 집에서 걸어갈 수 있던 학원이었다. 아침 일찍 학원까지 걸어가서 밤늦게 돌아왔고, 그때도 대개 어머니께서 도시락을 싸 주셨다. 나는 정규 수업이 끝나고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좋았다. 처음 학원에 가서 모의고사를 보니 성적이 형편없었지만, 상관없었다...

일상 이야기 2025.07.07

後生可畏

이번 한국과학철학회 연례 학술대회(30주년)에 참가하며 나로서 제일 좋았던 것은 새로운 얼굴들, 젊은 얼굴들이 학술대회에서 많이 보였다는 것이다. 다른 전공에서 연구하는 연구자들, 다른 학교에서 연구하는 젊은 연구자들이 적극적으로 각 세션에 참여하며 활발하게 질문 및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한국과학철학의 미래를 보았다. 後生可畏라. 새롭게 등장하는 과학철학 연구자들이 과학철학을 새롭고 튼튼하게 만들 것이다. 나는 스스로가 우리나라 과학철학 발전을 위해서 별다르게 공헌하지 못한 못난 과학철학 연구자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공헌을 하고 있음에 자부심을 느낀다. 학술대회 참여 후의 몇 가지 소감을 간략하게 적어본다. 우선, 나는 학술대회를 즐거운 ‘쇼’라고 생각하려 애쓴..

세상과 만나는 과학철학

우선 한국과학철학회 30주년을 기념하는 이 자리에 저를 초대해 주셔서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한국 과학철학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과학철학을 연구하면서 느끼고 생각한 바가 몇 가지 있어 이 자리를 빌려 이에 대해 여러분께 말씀드리려 합니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실제로 쓰이는 과학철학’입니다. 그리고 과학철학이 실제로 쓰이려면 과학철학이라는 전문 분과를 넘어서 계속 세상과 만나고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로 저는 제가 처음으로 과학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시절을 떠올립니다. 저는 이과를 전공한 고등학교 학생으로서,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과 과학 내용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서 시중에 있던 과학사와..

생명과 생명력을 생각한다

나는 생명체, 인간 개체이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내가 태어났고, 나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나의 어머니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로부터 태어났다.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일제 치하와 한국전쟁을 겪으신 분들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한국전쟁이 끝나던 무렵 태어나셨고, 먹을 것이 없던 시절에 자라셨다. 이런 역사적 맥락 속에서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 자랐다. 내가 부산에서 태어나 자란 것은 전혀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내 정체성의 일부가 되었다. 나는 세상 물정을 몰랐고, 누가 나에게 세상 물정을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만약 권력과 성공을 잘 아는 사람이 나를 안내했다면, 나는 철학이 아니라 법을 전공하여 사법 시험에 응시하여 법조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일상 이야기 2025.06.27

할 일은 즐겁게

해야 할 일들이 제법 된다. 우선, 6월까지 [시간의 방향(The Direction of Time)] 번역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야 한다. 이 시점에서 꼭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상황. 어떻게든 정리해서 보내야만 내년까지 출판할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함을 기하기 위해 시한을 늦추면 득(得)보다는 실(失)이 많다. 당연히 현재 번역 원고에는 부족함이 많을 것이고, 사실 번역 원고의 완전성을 추구하려면 라이헨바흐의 [확률론(Theory of Probability)] 역시 참고해야 할 것이지만, 일단 여기서 한 번 정리를 해야만 뒤에 다시금 돌아볼 수 있다. 7월 초에 한국과학철학회 발표, 7월 말에 한국과학교육학회 발표가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어김없이 발표 신청을 했다. 학술대회 발표에 대해서 나는 ..

일상 이야기 2025.06.23

上善若水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2025 APPSA(Asia-Pacific Philosophy of Science Association) 참여를 무사히 마친 후, 타오위안 공항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 발표에서도 역시 영어 말하기가 문제였는데, 다행히도 무사히 발표를 끝낼 수 있었다. 내가 무난하게 발표를 한 것이 아니라 청중이 너그럽게 나의 발표를 들어준 것(참아준 것?) 같다. 2년 후에는 일본 쿄토에서 APPSA가 열린다고 하는데, 그때는 다른 학자들에게 좀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물론 그게 아주 쉽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영어 말하기는 평소에 습관처럼 준비해야만 할 것이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도 다시 한번 깨달은 것이지만, 이 세상에는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너무나 ..

일상 이야기 2025.06.20

소소하게 만족하는 삶

나는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개 가만히 있는다. 그런데 외부에서 싸움을 걸면, 나는 그런 싸움에는 어쩔 수 없이 응한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싸움이라는 것은 살면서 죽을 때까지 피할 수 없는 듯하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 사람들은 초등학교에 간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학교에서는 시험이란 것을 치른다. 학생 관점에서 시험은 일종의 싸움이다. 다른 학생들과 겨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이 피하고 싶더라도 피할 수 없는 게 시험이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이 싸움을 치러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공부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나는 그냥 공부했을 뿐, 다른 이유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이렇듯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 본능이 왜 나에게 있는 것인지 나는 잘 모른다. 그런데 이런 본능은 나라는 사람을 ..

일상 이야기 2025.06.15

관용적 태도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어.” 이것은 내가 한국장학재단에서 모셨던 모 실장님께서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은 말이었다. 이와 관련되어 그 실장님께서는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사자성어 역시 늘 마음에 새기고 다니셨다. 나는 실원으로서 실장님의 그 태도로부터 큰 인상을 받아 이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내가 한국장학재단에서 모셨던 다른 부장님께서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사자성어를 책상에 붙여 놓고 생활하셨다. 서로 화합하되 서로 같아지지는 말라는 뜻이다. 두 부서장께서는 중간에 사고 없이 직장 경력을 끝까지 잘 마무리하셨다고 알고 있다. 참으로 존경할 만한 직장 선배들이었다. 내가 생각할 때 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자신의 길을 잘 걷는 일이다. 다른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도 ..

일상 이야기 2025.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