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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하다 보면 편하게 된다

작년 2월 말에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난 뒤 주변 사람들이 나를 ‘강박사님’이라고 불러준다. 아직 약간 어색하기는 하지만 참 기분이 좋다. 내 명함에도 ‘이학박사, 과학사 및 과학철학 전공’이라고 적혀 있다. 내가 박사라니! 아직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박사다! 학위증명서도 있다! 게다가 무려 과학사 및 과학철학 박사다! 오예! 박사학위를 갖게 되니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에서 과학사와 과학철학 강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박사학위가 없으면 강의를 못 한단다. 박사학위를 갖게 되니 이따금 주변에서 강의 혹은 발표 의뢰를 해오기도 한다. 나는 이런 의뢰를 마다하는 법이 없다. 네, 좋은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하지만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그런데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해서 강의했지만 ..

꼭 필요한 만큼만

내 삶의 가능성이 청년 시절에 비해 부쩍 줄어든 만큼 내게는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이 많이 줄어들었다. 예를 들어 식사의 경우 나는 밥 한 공기에 김치와 간단한 반찬만 있으면 맛있게 먹는다. 옷은 이미 사둔 옷들을 대충 깔끔하게 차려입는다. 신발도 마찬가지다. 이미 사둔 신발들이 제법 있어서, 새 신발에 대한 욕심을 내지 않고 그냥 신던 신발을 신는다. 책도 비슷하다. 내가 관심을 둔 분야의 책들은 이미 대부분 구비하고 있어 굳이 새로 책을 살 필요가 없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나의 삶을 영위하는 데는 비누, 치약 등과 같은 최소한의 생필품이 필요할 뿐이다. 내 삶에 꼭 필요한 것들 중 하나가 음악인데, 요즘은 인터넷에만 접속할 수 있으면 거의 모든 음악을 즐길 수 있다. 그러므로 학창 시절에는 음반을 사는..

일상 이야기 2024.01.31

사회적 생존을 위한 선택

부모님에게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측면 모두에서 의존하지 않으려는 의지는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러한 의지를 ‘독립성’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이런 독립성을 추구한다면 그 사람은 ‘금수저’가 될 수는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되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이 물려받은 재산 대부분을 포기했다.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독립성이 강했다. 1997년 IMF 금융위기 이전에 우리 집의 재정 형편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교육에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을 싫어했다. IMF 금융위기는 나의 독립성을 더 심화시켰다. IMF를 통해 나는 직업에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안정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나의 아버지는 대구..

일상 이야기 2024.01.27

다시 본연의 마음자세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나도 모르게 욕심을 가졌던 것 같다. 내 능력을 초과하는 일들을 내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잠시나마 착각을 했다. 작년 2월 말에 박사학위를 받았으니 이제 거의 1년 지났다. 박사가 된 이후 내가 겪었던 여러 일들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이제 다시 내 본연의 마음자세로 돌아가려 한다. 한 사람, 특히 나와 같은 평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이것저것 많은 일들을 벌릴 수는 없는 법이다. 나는 내가 지금까지 해 왔고 내가 가장 잘 하는 일을 앞으로도 계속 하는 것이 나 자신에게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좀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우선, 라이헨바흐의 [시간의 방향] 번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이 작업을 과학관에서의 나의 연구와 연결시키려 한다. 우리 과학..

일상 이야기 2024.01.22

성실한 과학철학 연구자

내 블로그(blog)의 제목은 “성실한 과학철학 연구자”이다. 오늘은 문득 내 블로그 제목에 대해서 설명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이 글을 쓴다. 예전 블로그 제목은 “凡人日記(범인일기)”였다. ‘평범한 한 사람의 일상적인 기록’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정말 평범한 사람이란 없다. 사람이란 아주 희귀하고 독특한 동물이다. 모든 사람이 독특한 생각과 개성을 가진 소중한 존재이다. 나 또한 한 명의 사람이며 내 고유의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나는 블로그 제목을 “성실한 과학철학 연구자”라고 바꿨다. 내 블로그를 몇 번 들어오신 분들은 아마 이 말을 지겹도록 읽으셨을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과학의 역사와 철학을 좋아했고 지금까지 계속 공부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고량주를 마시며

작년 10월에 과학관에서 무한상상 경진대회를 운영했을 때 중국 팀을 이끌었던 분(조선족 출신)께서 한국에 방문하신 후 내게 대회 준비하느라 고생한다고 고량주를 한 병 선물해 주셨는데, 오늘은 기분이 좋아 아껴 두었던 이 고량주를 마신다. 53도 가까이 되는 독한 술이다. 나는 오늘 밤 고량주를 마신 후 흥겨운 마음에 이 글을 쓴다. 우선 나는 2012년 1월 이후로 나를 공인으로 살게 해 준 나의 운명에 감사한다. 나는 교육부 산하의 공공기관인 한국장학재단에서 일할 때부터 우리나라 국민의 세금을 바탕으로 나의 사회적 생존을 유지해 왔다. 나는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공공기관 직원으로서 일하며 살아온 나의 삶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물론 민간 기업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그 액수가 적은 연봉이지만, 나는 지..

일상 이야기 2024.01.16

한스 라이헨바흐와 20세기 경험주의 과학철학(2)

이번 주 주말(1월 14일)까지 출판사에 책의 제목과 목차를 보내야 하므로, 이번 글은 그와 같은 실용적인 목표에 초점을 맞춰 쓰려고 한다. 책 제목은 “한스 라이헨바흐와 20세기 경험주의 과학철학”이다. 그러면 이 책의 핵심 키워드 10개는 무엇으로 선정해야 할까? ① 20세기 이전의 과학철학 – 경험주의(흄)와 이성주의(칸트) ② 상대성 이론과 시간 및 공간의 문제 ③ 통계 물리학과 확률 개념의 문제 ④ 양자역학과 과학언어의 논리 문제 ⑤ 상대화된 선험 : 구성인가 규약인가? ⑥ 과학적 지식 속 규약과 경험의 역할 ⑦ 과학적 지식의 변화와 정당화 ⑧ 과학철학자와 과학자의 관계 : 라이헨바흐-아인슈타인 사례 ⑨ 20세기 경험주의 과학철학에 대한 비판들 ⑩ 21세기 : 경험주의 과학철학의 부활? 대략 이..

두 지도교수님과의 신년 하례식

어제는 바쁜 하루를 보냈다. 첫째 아이를 차에 태워 등교(겨울방학 중 돌봄교실)시킨 후, 김천구미역으로 가서 KTX 열차를 탔다. 서울역에 도착해서 강남역으로 이동, 과학철학 전공 대학원생 3명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대략 5시간 동안 수다를 떨었다. 이 시간에 나는 대학원생들에게 최대한 졸업에 필요한 실질적인 요령을 전달하려고 했다. 솔직히 말해 나는 바람직한 경로를 따라 성공한 선배는 아니다. 그래도 무사히 졸업을 했고 현재 조금이나마 전공을 살려서 직장에서 업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최소한 평균 정도의 성과를 얻은 선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철학 전공 박사과정 대학원생들과의 즐거운 시간 이후, 역시 강남역 근처에 있는 한 우동 가게로 향했다. 가게에 들어가니 이미 전 ..

일상 이야기 2024.01.10

한스 라이헨바흐와 20세기 경험주의 과학철학(1)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을 위해 먼저 밝힌다. 나의 블로그를 몇 번 찾아오신 분들은 이미 아셨겠지만, 나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못 된다. 생각나는 대로 약간 즉흥적이고 두서없이 글을 쓰는 편이므로, 이를 감안하여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다. 또한 하나 더 이야기할 것이 있다. 나는 나의 철학적 아이디어의 우선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런 우선권을 고집한다면, 나의 아이디어를 블로그에 쓰지도 않을 것이다. 만에 하나 나의 글들에서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그것을 자유롭게 자신의 목적에 맞게 활용하시면 된다. 그 분은 그 분의 글을 쓰는 것이고, 나는 나의 글을 쓰는 것이다. 나와 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지만지) 사이의 인연은 퍽 오래되었다. 나는 2014년에 ..

새해라는 상징

매년 1월 1일 새벽이 되면, 부산에 살고 있던 우리 가족은 동해안으로 이동하여 떠오르는 태양을 보곤 했다. 부모님과 누나와 나는 새벽 5시 전후로 일어나 약간의 먹을거리를 챙긴 후 승용차를 타고 동해안인 칠암방파제 근처로 이동해서 30분쯤 기다렸다가 바다 수면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렇게 우리 가족은 매년 새해를 기념했고, 이후 칠암 근처에 있는 절인 장안사를 찾아 부처님께 인사드린 후, 자주 찾아가는 칼국수 집에 들러 칼국수와 두부를 아침으로 먹곤 했다. 누나와 내가 결혼을 한 후에는 우리 가족의 이런 전통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잦아졌다. 그러나 올해 나는 가족들을 데리고 부산으로 내려가 이 전통을 지켰다. 예전에는 아버지께서 운전하셨지만, 올해에는 내가..

일상 이야기 2024.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