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촌스러운 게 뭐가 문제인가?

강형구 2024. 7. 5. 10:46

   나는 ‘뉴진스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로듀서 250(이오공)의 뉴썰 인터뷰를 보고 참으로 멋지다고 생각했다. 250은 ‘나는 촌스러운 사람이다. 그런데 그게 뭐가 문제냐? 그걸 쿨하게 인정하는 게 멋진 거 아니냐’라는 취지로 말했다. 나는 이 말에 너무나 깊이 공감했다. 과연 촌스럽다는 게 무슨 뜻일까? 촌스러운 건 나쁜 것인가? 내가 고등학생 시절까지 부산에서 살다가 서울에 올라가 대학교에서 들었던 가장 황당한 말은 나를 약간 비하하는 어투가 담긴 “시골에서 올라왔네.” 였다. 시골? 부산은 시골이고 서울은 시골이 아닌가? 과연 시골이란 무엇인가? 시골은 나쁜 것인가? 부산은 시골이라서 서울보다 못한가?

 

   내 생각에 서울이 멋진 것은 전국 곳곳에 있는 특이하고 재능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서울 혹은 서울 근방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만 서울에 모이면, 서울은 점점 재미없고 불필요하게 딱딱하며 창의적이지 못한 권위적인 지역이 된다. 이와 유사하게, 인간 사회의 위계질서 속에서도 순환이 계속되어야 그 사회가 재미있어진다. 한때 서울에 모였던 사람들은 각자 자기에게 맞는 지역으로 가는 게 좋지 않나? 예를 들어,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가족들이 부산에 있는 나는, 서울에서 공부한 후 부산으로 돌아가는 게 좋은 것 아닌가? 나는 직장 때문에 할 수 없이 부산이 아닌 대구로 왔지만, 살아가기 위해 부득이하게 거처를 옮기는 일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수도권이 비수도권보다 무엇인가 더 낫고 특권을 갖는다는 생각은 철저하게 거부한다. 서울이든 대구이든 목포이든 광주이든 사람 사는 건 대개 비슷하다. 각자 자신의 사정에 맞게 열심히 살아가는 것일 뿐이다.

 

   이 세상은 우연적인 일들로 가득 차 있다. 내가 내 삶을 생각해 봐도 그렇다. 내가 부산에서 태어난 것이 나의 잘못인가? 그냥 우연히 그렇게 태어났을 뿐이다. 내가 수학능력시험을 잘 치른 게 온전히 나의 능력 때문인가? 아니다. 우연히 내가 공부한 내용이 나왔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 입학에 성공한 것이 나의 능력 때문인가? 우연히 나와 성향이 맞는 면접관을 만나게 되어 그런 것 아닐까? 내 이력의 거의 모든 사항에서 나의 능력이 큰 비중을 차지한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것이 나의 본질적인 면모는 아니라고 본다. 정말 나에게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은, 내가 나의 의지대로 선택해서 추구하고 있는 온전한 나의 일들이다. 예를 들어 과학철학자 라이헨바흐(Reichenbach)를 연구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라이헨바흐를 집요하게 연구하는 것은 전적으로 내 의지에 의한 것이다.

 

   나는 정말 오래전부터 ‘왜 그렇게 구닥다리이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과학철학자를 연구하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너무 구시대적인 철학자이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적으로 이름 있는 철학자를 연구하는 게 더 좋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심지어 함께 과학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로부터도 그런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런데, 대체 그게 어때서? So what? Why not? 내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내가 좋고 옳다고 믿는 일을 열심히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왜 내가 그런 부당한 편견과 판단에 동조해야 하는가? 나는 라이헨바흐 연구로 학사, 석사, 박사학위 모두 취득했다. 이만하면 최소한 나는 나라는 개인으로서 라이헨바흐 연구에 성공한 것 아닐까? 내가 스스로 대외적으로 공신력 있는 라이헨바흐 연구자로서 널리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촌스러운 게 뭐가 문제인가? 내가 다소 부족한 사람인 게 뭐가 문제인가? 왜 억지로 다른 사람이 정해 준 기준을 따르려 하는가? 우리 모두 꼭 지켜야 하는 기본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가운데 나에게 맞는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게 정말 멋진 것 아닌가? 적어도 나는 오래전부터 그렇게 살아왔다. 고집이 셀 수도 있고, 일관성이 있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최소한 나 스스로는 그런 촌스러움을 증명하며 살아왔다고 자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