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402

바쁜 나날들

나는 대학교로 임용되기 이전에 2개의 공공기관에서 일을 했다. 대학에서 일을 해 보니, 대학교수의 삶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비해 만만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는다. 분명 교수에게 개인적인 시간이 많이 주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시간은 대부분 강의 준비와 전공과목 연구로 채워진다. 특히 나는 철학과가 아니라 교양학부 소속 전임교원이기 때문에, 나의 전공인 과학사 및 과학철학과 약간 거리가 있는 과목 역시 강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학교 1학년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향후 대학 생활을 잘할 수 있는지에 관해 강의하고, 학생들이 PPT 자료와 UCC 콘텐츠를 어떻게 잘 제작할 수 있는지에 관해 강의한다.    이와 더불어 학교를 위해 ‘학생들의 AI 활용 윤리’에 관한 영상을 촬영하고, 인문대학..

일상 이야기 2024.11.06

자유롭고 즐겁게

사람들은 나에게 가끔 묻곤 했다. 네가 어떻게? 대체 왜? 사람들이 나에게 이렇게 질문을 하면 나도 덩달아 좀 의아스러웠다. 왜 그렇게 반응하지?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아무런 숨은 의도 없이 한 일인데? 지금도 기억난다. 초등학교 2학년이던 시절,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점심시간이 끝날 때쯤 몇몇 친구들이 운동장에 모여 교실로 들어가려던 나를 위협한 적이 있었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을까? 아직도 모르겠다. 그날 이후 나는 태권도에 다니기 시작했고, 태권도를 수련하는 나를 건드리는 친구들은 없었다. 오히려 그때 나를 위협했던 친구들 중의 한 명은 나에게 찾아와서 친구가 되자고 했고, 나는 그러자고 했다.    나는 자유롭고 즐겁게 어떤 행동을 한다. 그런데 그 행동은 타인들로부터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일상 이야기 2024.11.03

조인래 교수님을 다시 생각함

현재 나는 과학철학 연구자로서 살아가고 있는데, 가끔 나는 지금의 나를 가능하게 만들어 주셨던 조인래 교수님을 생각한다. 조인래 교수님은 1953년에 태어나셨고 나의 아버지와 동갑이시다. 어디서 자라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산에 있는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다. 경상도 사투리를 약간 쓰시고, 나와 마찬가지로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조인래 교수님에 대해 더 친숙함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인래 교수님은 1971년 3월에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셔서 1975년 2월에 학부를 졸업하셨다. 19세에 대학에 입학하셨으니, 생일이 좀 빠르신 것인지도 모른다. 학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신 것으로 안다. 1975년 3월에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셨고, ..

일상 이야기 2024.10.27

얽매이지 않는 삶

나는 나 자신을 자유롭고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가족이고, 나의 정체성이다. 나의 아내와 세 아이는 내가 목숨을 걸고 이 세상에서 지켜야 하는 존재다. 나의 정체성은 과학철학 연구자로서, 나는 과학철학 연구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나는 과학철학 연구자라는 정체성을 근거로 사회적인 인정을 받으며 활동하고 있으며, 이런 사회적 활동이 사회 속에서 내 가족을 지킬 수 있게 해 준다. 본질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나에게는 내 가족과 내 정체성 이외에 버리지 못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 없다. 그것은 곧 그것 말고 다른 것들은 그냥 쉽게 웃어넘길 수 있다는 얘기다.    비록 정년 트랙 교수이긴 하지만 정년 보장을 받지는 않은 상황이므로, 나는 스스로 6년 계..

일상 이야기 2024.10.23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

그제와 어제는 아내가 대전 국립중앙과학관 출장이라, 부산에 계신 어머니께서 대구로 올라오셔서 아이들을 같이 봐주셨다. 어제 오전에는 큰딸 지윤이와 함께 평소 자주 가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제 어느덧 지윤이는 카페에서 시간을 잘 보낸다. 눈높이 국어, 한자, 수학, 윤선생 영어교실을 한 다음, 자기가 보고 싶은 영상을 보면서 3시간 넘는 시간을 아무렇지 않게 버틴다. 얘가 벌써 이렇게 크다니. 그새 나는 헐레벌떡 학술대회 발표 준비를 했다. 괜히 의욕만 앞서서 대동철학회 가을 학술대회에서 덜컥 발표하겠다고 신청했는데, 아직 발표문 작성이 덜 된 것이다. 에구 어떡하나. 이게 다 내가 자초한 일이다.    점심때 집에 와서 식사한 다음에, 아이들에게 동네 근처에 있는 롯데시네마에서 “와일드 로봇”이라..

일상 이야기 2024.10.20

차분한 가을

나는 가을을 좋아한다. 덥지도, 춥지도 않고, 자연 풍경을 보며 약간의 쓸쓸함을 느낄 수도 있다. 차분하고 애틋한 음악을 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계절이다. 오늘 문득 학교에 출근하면서 가을은 참 좋은 계절이라 생각했다. 출근하는 길에 싱어송라이터 최유리, 백예린의 잔잔한 음악을 들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 자신을 고독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가족 이외에는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어쩌면 사람들과 친하게 지낼 필요성을 심각하게 느끼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가끔 친구들에게서 연락이 오고, 나는 아주 반가운 마음으로 이에 응한다. 큰딸의 친구가 주말에 우리 집에 놀러 오기도 하고, 둘째와 셋째의 어린이집 친구와 그 부모님이 주말에 우리 집에 놀러 오기도 한다...

일상 이야기 2024.10.17

관용적 태도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는 늘 있다. 내 생각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같을 필요는 없으므로, 생각의 차이가 있을 때 그 차이가 무엇인지, 왜 그러한 차이가 생겼는지를 서로 소통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소통이 늘 의견의 일치로 유도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의견이 서로 달라, 한 시간 동안 대화를 한 뒤에도 여전히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러면 그 대화는 가치가 없는 것이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서로의 관점 차이를 다시금 자세히 확인했다는 데 의의가 있을 것이다.    내가 몇몇 논리경험주의 과학철학자에게 깊은 인상을 받는 것은 그 관용적 태도 때문이다. 실제로 카르납은 ‘관용의 원리(principle of tolerance)’를 철학의 주요 원리로서 공식화한 바도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화를 ..

일상 이야기 2024.10.13

평범함과 행운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넌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왔냐. 갑툭튀. 나는 나를 갑툭튀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더 멋지게 나 자신을 포장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에 호기심이 많았고, 모범생으로서 공부를 잘했으며, 진지했고, 이러쿵저러쿵.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대신 나는 나 자신을 우연, 아이러니, 역설의 복합체로서 본다.    다만 나는 유약한 사람만은 되고 싶지 않다. 이 세상에 태어나 여러 산전수전을 겪으며 살아남은 강인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어떤 사람에게 덧붙어 있는 여러 이름은 유의미하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허상이라고 본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살아 있느냐, 얼마나 건강하게 살아 있느냐이다. 어쩌면 인간 사회 속에서 언어를 사용하며 체계적인 노동 분업의 ..

일상 이야기 2024.10.09

남은 반평생을 준비함

나는 이 세상,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지구 위에서 살아가는 그 누구도 매우 치열하게 살아간다고 믿는다. 실로 그럴 수밖에 없다. 삶은 매일 전쟁이고 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던 나 역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애썼다. 나는 요즘 나를 이러한 비유를 들어 생각한다. 일반 병사로 입대해 전쟁 통에서 우여곡절을 겪고 겨우 살아 남아 중위나 대위 정도로 진급한 군인. 살아남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공을 세우기는 했지만 아주 빛나는 무공을 세운 것은 아니었기에, 현재 대위이며 소령 진급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 과연 장군까지 진급할 수 있을까? 아마 힘들 것이다. 그래도 중령이나 대령까지 군 생활을 해도 군인으로서 실패하지는 않은 것 아닐까?    나는 10년..

일상 이야기 2024.09.29

성실하되 너무 열심히 하지 않기

아내는 종종 ‘내 손이 느리다’라며 핀잔을 준다. 이건 맞는 이야기다. 아내는 나보다 일 처리가 훨씬 빠르다. 내가 뭘 하고 있으면 답답하다면서 자기가 해 준다. 그러면 나는 머쓱하게 웃으면서 고맙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볼 때 이와 유사한 상황이 나에게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일을 빨리 처리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나는 좀 느린 편이라서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나를 좀 둔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다만 나는 아주 성실하긴 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일어난 이후부터 계속 꾸준하게 내가 할 일을 한다. 나에게는 성실함이 최대의 무기였다. 공부할 때도 나는 그냥 성실하게만 했다. 내가 딱히 다른 친구들보다 머리가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성실..

일상 이야기 2024.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