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평범함과 행운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강형구 2024. 10. 9. 09:02

   넌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왔냐. 갑툭튀. 나는 나를 갑툭튀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더 멋지게 나 자신을 포장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에 호기심이 많았고, 모범생으로서 공부를 잘했으며, 진지했고, 이러쿵저러쿵.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대신 나는 나 자신을 우연, 아이러니, 역설의 복합체로서 본다.

 

   다만 나는 유약한 사람만은 되고 싶지 않다. 이 세상에 태어나 여러 산전수전을 겪으며 살아남은 강인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어떤 사람에게 덧붙어 있는 여러 이름은 유의미하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허상이라고 본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살아 있느냐, 얼마나 건강하게 살아 있느냐이다. 어쩌면 인간 사회 속에서 언어를 사용하며 체계적인 노동 분업의 일부를 담당하는 우리들 모두 일종의 꼭두각시 아닌가? 그것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간적 현실 아닌가?

 

   저녁 무렵 지는 해를 바라보며 느끼는 아름다움, 새벽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다시금 삶은 살만한 것이라 느끼는 순간. 그런 살아있는 생명체인 나에게 덕지덕지 붙어 있는 여러 인간적인 이름들이 있는데, 나는 때로 그 이름들을 우스꽝스러운 것인 양 의심한다. 하지만 그 이름들은 내가 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데 잘 작동하며 꼭 필요하다. 허구적인 것의 실재함. 진정 텍스트의 바깥은 없는 것일까? 텍스트의 바깥을 감지한다고 느끼는 그 순간에도 나는 특정한 텍스트 안에 있는 것일까? 어디를 가도 특정한 텍스트 혹은 컨텍스트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나는 때로 나 자신이 꼭두각시임을 느낄 때가 있는데, 그러한 순간에는 일종의 짜릿함이 함께 찾아온다. 왜 원숭이가 말을 하지? 혹은 왜 나무가 말하는가? 그런 생각을 할 때 나는 원숭이 혹은 나무와 같은 존재 아닐까? 내게 붙어 있는 말들과 그 의미가 허구적이라는 느낌이 들 때, 나의 몸체 혹은 신체는 나에게 말과 의미보다 더 직접적이고 실재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나의 몸체가 말들의 의미 속에 갇혀 있지 않고 잡혔다 도망치기를 반복할 때, 혹은 나의 몸체가 이전과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새로운 말의 의미를 계속 만들어낼 때, 그때 몸체를 가진 나는 비로소 자신의 살아 있음을 생생하게 느낀다.

 

   이제 이런 뜬구름 잡는 추상적인 이야기보다는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 보자. 먼저 나는 교수들에 관해 형성되어 있는 일반적인 관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하나의 구체적 사례다. 대개 교수들은 학창 시절부터 모범생이었고, 대학에서는 학점이 좋았으며, 대학원에서도 착실하게 학업에 매진하여, 지도교수의 인도를 따르며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교수가 아니다. 학창 시절에 별 모범생이 아니었고, 운이 좋아 좋은 대학에 들어갔으나 학점이 좋지 않았으며, 대학원에서는 지도교수의 실망을 무릅쓰고 휴학하고 취직했으며, 직장에 다니면서 겨우겨우 박사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았다. 그런데 웬걸? 이런 사람이 대학교수가 되었다? 이게 바로 이 세상 곳곳에 숨어 있는 우연성이 만든 기묘하고 흥미로운 결과다. 갑툭튀다.

 

   이런 갑툭튀 교수가 세계적인 석학이 될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하다! 이런 교수는 평범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는 웃으면서 이런 관점 혹은 해석을 받아들인다. 좋다. Why not? 다만 나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계속 평범하게 나의 철학을 할 뿐이다. 아주 평범하게, 너무 평범하게, 하지만 아주 꾸준하게, 마치 내가 계속 살아 있는 것처럼. 사실 나는 지금껏 세계적인 석학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다. 국내에서조차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생명체인 내가, 언어의 그물망 속에서 꿈틀거리는 일종의 꼭두각시인 내가 살아있음을 짜릿하게 느끼기 위해 철학이라는 활동을 해 왔을 뿐이다. 그것은 거창하고 대단한 활동이 아니라 지극히 나 자신을 위한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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