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세상,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지구 위에서 살아가는 그 누구도 매우 치열하게 살아간다고 믿는다. 실로 그럴 수밖에 없다. 삶은 매일 전쟁이고 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던 나 역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애썼다. 나는 요즘 나를 이러한 비유를 들어 생각한다. 일반 병사로 입대해 전쟁 통에서 우여곡절을 겪고 겨우 살아 남아 중위나 대위 정도로 진급한 군인. 살아남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공을 세우기는 했지만 아주 빛나는 무공을 세운 것은 아니었기에, 현재 대위이며 소령 진급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 과연 장군까지 진급할 수 있을까? 아마 힘들 것이다. 그래도 중령이나 대령까지 군 생활을 해도 군인으로서 실패하지는 않은 것 아닐까?
나는 1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늘 하루 종일 책 읽고 생각하고 글 쓰는 삶을 꿈꿨다. 그런 삶이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야 비로소 나는 그런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국립대학교의 철학 교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우리 학교가 사립대학이 아니라 국립대학이라서 더 마음에 든다. 국립대학의 교수는 교육공무원이고, 사립대학보다 급여는 높지 않겠지만 교육공무원은 국가를 위해서 일하는 공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소위 ‘성공한 교수’가 되려는 욕심은 없고, 그저 내가 꿈꿔 왔던 삶 즉 하루 종일 교육과 연구를 하는 삶을 살고 싶을 뿐이다. 큰 문제 없이 성실하게 교수로서 평생을 보낸 후, 명예교수가 되어서 2년 정도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훈훈하게 학교를 떠나고 싶다.
아직도 나는 잘 믿어지지 않는다. 내가 교수가 되다니. 이게 진짜일까? 나에게는 내가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 직장 생활을 그동안 겨우겨우 해 온 것, 결혼을 해서 아이들을 낳아 키우고 있는 것 등 이 모든 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치러온 전쟁과도 같이 여겨진다. 본능에 따라 행동하며 어찌어찌 겨우 살아왔지만, 내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고 그동안 나에게 따라 준 과분한 행운에 감사한 마음을 갖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는 그 누구도 정확하게 예상할 수 없다. 그렇기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서도 앞으로 다가올지 모를 예상 밖의 일들에 대해서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아주 운이 좋아 이 세상 위 한적한 어떤 곳에 가족들이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조촐한 크기의 땅을 얻은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그 땅에 가족들이 살 수 있는 작은 집도 하나 마련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아마도 그 사람은 열심히 땅을 가꾸어 농사를 짓고 집을 관리하며 아이들을 잘 키우려고 할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얻게 된 모든 것에 너무 감사하며 더 큰 욕심을 부리지 않으려 한다. 나는 내가 운 좋게 얻을 수 있었던 것을 잘 관리하면서 소박하게 만족하면서 살고자 한다. 나의 삶은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빛나는 삶’은 아니겠으나,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런 삶을 바라지도 않았으며 그저 소박하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었을 뿐이다.
내 생각에 나는 이제 삶의 절반을 살았고 이제 내게는 절반의 삶이 남았다. 그리고 나는 내 남은 삶을 선비로서, 학자로서, 철학자로서 소박하고 검소하게 살고 싶다. 철학자는 이 세계에 대한 아주 고상하고 고귀한 진리를 탐구하고 추구하는 사람일까? 솔직히 나는 그럴 생각이 없고 그럴 욕심을 갖지도 않는다. 내 생각에 철학자는 특별한 유형의 삶을 사는 사람일 뿐이다. 글을 읽고, 생각하고, 쓰고, 말하며, 사고와 언어를 통해 이 세상의 여러 현상을 좀 더 명료하고 분명하게 이해하려고 활동하는 사람이 철학자다. 나는 철학자가 세상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 보지 않는다. 다만 그는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한 삶의 이정표 역할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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