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관용적 태도

강형구 2024. 10. 13. 08:34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는 늘 있다. 내 생각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같을 필요는 없으므로, 생각의 차이가 있을 때 그 차이가 무엇인지, 왜 그러한 차이가 생겼는지를 서로 소통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소통이 늘 의견의 일치로 유도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의견이 서로 달라, 한 시간 동안 대화를 한 뒤에도 여전히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러면 그 대화는 가치가 없는 것이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서로의 관점 차이를 다시금 자세히 확인했다는 데 의의가 있을 것이다.

 

   내가 몇몇 논리경험주의 과학철학자에게 깊은 인상을 받는 것은 그 관용적 태도 때문이다. 실제로 카르납은 ‘관용의 원리(principle of tolerance)’를 철학의 주요 원리로서 공식화한 바도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화를 내지 않고 내가 아닌 상대방의 관점을 매우 진지한 대안적 관점으로서 고려하는 것은, 일종의 ‘철학적 태도’인 것 같다. 이와 관련해서 헴펠은 카르납과 유사한 성향의 철학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헴펠은 너무 친절하고 신사적이어서, 헴펠이 속했던 기관에서 헴펠을 싫어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내가 주로 연구하고 있는 라이헨바흐는 카르납이나 헴펠과 대비하면 다소 다혈질적인 사람이었으리라 추측된다. 그러나 칼 포퍼나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라이헨바흐보다 훨씬 더 다혈질적이었을 것이다. 나는 평소에 나 자신이 더 차분하지 못하고 다소 다혈질적인 기질을 갖고 있는 것이 불만스러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카르납, 헴펠과 같은 논리경험주의 철학자들이 제시한 ‘관용의 원리’를 떠올리려 애쓴다. 사람의 생각은 서로 다를 수 있고, 어쩌면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므로,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을 내세우기보다는 차분하게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상대방의 차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카르납, 헴펠이 그저 성격 좋은 사람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방에게 화를 내거나 공격하지 않으면서도 이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철학을 일관되게 진행해 나갔기 때문이다. 또한, 어쩌면 ‘관용의 원리’는 20세기에 등장한 철학의 특성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 주는 철학적 원리이기도 하다. 특정한 범위의 자연 현상을 기술하는 형식적 과학 이론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 있을 수 있는 것처럼, 문제가 되는 자연적 혹은 사회적 현상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다양한 방식이 가능하다. 이럴 때 우리 모두 지킬 필요가 있는 바람직한 태도가 바로 ‘관용적 태도’이다. 다른 사람이 취한 관점은 나의 관점과 마찬가지로 충분히 그럴듯하며, 우리는 각자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추구할 자격이 있다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

 

   ‘관용의 원리’가 논리경험주의 이전에도 있긴 했지만, 대개 철학적 담론 외부에 있던 이 원리를 철학적 담론 내부로 적극적으로 도입한 점은 논리경험주의 철학의 중요한 역사적 공헌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논리실증주의 철학 사조는 다소 강력하고 독단적인 ‘검증가능성 원리’와 결부되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논리실증주의가 논리경험주의로 변화하며 내부적으로 그 강경함이 완화되고 더 관용적이고 포용적인 철학적 입장으로 진화해 가는 모습에 더 큰 의의를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콰인이 “경험주의의 두 독단”이란 논문을 출판했을 때 카르납은 다소 어리둥절했을지 모른다. 이미 논리경험주의는 충분히 관용적으로 변해 있었는데도 콰인은 하나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이를 공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카르납은 차분함을 유지하면서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을 것이다. 관용의 원리에 따르면 콰인의 그와 같은 해석적 관점마저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콰인은 자신의 철학을 내세우기 위해 카르납을 제물로 삼았다. 그렇다면 카르납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계속 자신의 철학을 해 나가면서 이후 진행될 역사적이고 철학적인 심판을 기다리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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