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 6

변방에서의 생존과 전투

나는 우리나라의 수도권 편중 현상을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수도권 편중 현상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예를 들어, 통일신라 시대에는 서라벌(경주) 편중 현상이 있었을 것이다. 수도권 편중이 일어나고, 부와 권력의 집중이 일어나고,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에서 계급이 분화된다. 이런 편중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는 지역별로 혁신도시를 만들었고, 수도권에 있던 공공기관을 지역으로 이전했고, 행정수도를 옮겼고, 국회도 옮기려 한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편중 현상은 계속된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나는 지역 정체성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었다. 그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게 목표였고, 부모님께서 따로 이에 관한 지침을 주시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

일상 이야기 2025.02.19

개학을 앞두고

지난 목요일, 큰이모부께서 폐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토요일과 일요일에 부모님을 모시고 누나와 함께 서울에 다녀왔다. 급작스러운 비보에 많이 놀라고 당황했지만, 친지들을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마음을 추릴 수 있었다. 다시 대구로 돌아와 2025년 봄학기를 준비하려 한다.    우선, 2월이 가기 전에 [물리적 지식의 목표와 방법] 번역과 [시간의 방향] 번역을 마무리한다. [물리적 지식의 목표와 방법]의 경우 번역 원고의 해설을 쓰고, [시간의 방향]의 경우 초벌 번역을 마무리한 후 수식 부분을 다시 한번 검증한다. [시간의 방향] 해설은 늦어도 4월까지는 쓴 다음 출판사에 넘기려 한다. 이 두 번역 원고가 언제 출판될지 확신할 수 없지만, 최소한 두 원고 중 하나는 올해 출판이 될 수 있..

일상 이야기 2025.02.16

욕심 없이 커피 한 잔

나는 아침에 바쁜 일들을 마친 후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면서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직장을 다닐 때도 그랬고, 대학 교수가 된 지금도 그렇다. 나는 이렇게 아무런 의무 없이 편하게 숨 쉬며 생각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모든 인간은 의무적으로 일을 해야 한다. 인간이 퇴직한 이후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그가 열심히 일하던 시절에 모은 돈을 다 쓰지 않고 저축하여 퇴직 후 쓸 수 있게 설계해 두었기 때문이다. 나는 먼 훗날 공식적으로 퇴직한 이후에도 스스로 일을 만들어 할 것이다. 아마도 나와 같은 유형의 사람은 매일 근처 도서관에 나가 작업을 하지 않을까. 글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일. 그러나 퇴직 후에도 나는 마음속으로 일과 휴식을 분리하지 않을까 한다.  ..

일상 이야기 2025.02.12

평범하면서 비범한 삶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사람들로부터 크게 주목을 받은 경우가 별로 없다. 부모님께서는 아들 자랑을 드러내놓고 하지 않는 편이었다. 나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친구들과 두루 어울리는 편이 아니었고 그냥 조용히 지냈다. 학원(문봉 학원 → 서전 학원)에서는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아주 많았고, 나는 그냥 공부를 그럭저럭 잘하는 편에 속할 뿐이었다. 대입 입시학원에 다닐 때는 내 주변에 공부로 날고 긴다는 친구들과 형님들이 수두룩했다. 내가 다녔던 학원에서만 20명이 넘는 인원이 서울대학교에 합격했으니, 나의 합격이 크게 대단한 게 아니었다. 늘 그랬듯 부모님은 합격 축하 현수막을 게시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고 과학철학을 고집했던 바보 멍청이였다. 대학에 ..

일상 이야기 2025.02.09

고등학교 시절의 꿈

나는 수학과 과학을 아주 좋아한다. 예전에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런데 아쉽게도 수학과 과학을 내 성에 찰 만큼 잘하지는 못했다. 그건 아마도 내가 수학과 과학에 깊은 애정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고등학생 시절 나는 수학과 과학이 가진 풍부한 의미를 알고 싶었고, 그래서 수학과 과학에 관한 역사책과 철학책을 찾아 읽었다. 내 주변에는 수학과 과학을 아주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이들 중에서 나처럼 수학과 과학에 관한 책들을 찾아서 읽는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친구들은 수학과 과학 문제들을 풀이하는 데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지만, 그 의미를 따지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거다.    대학에 입학해서 철학과로 진학하니, 철학과에서는 나와 비슷한 경로로 철학과에 진학한 사람을 거의 찾을 수가 없었..

일상 이야기 2025.02.05

치열한 경쟁 속, 마음의 평정

내가 어린아이였던 시절, 나는 우연히 체스 게임을 알게 되었고 이윽고 이 게임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게임을 몇 번 하다 보니 금방 알게 된 사실이 있었으니, 그것은 세상에 나보다 체스를 잘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었다. 게임에서 지면 속이 무척 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내가 평범한 체스 게이머임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일에서 기를 쓰고 애써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내 머리가 그리 좋지는 않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했다. 그러자 나는 뛰어남보다는 성실함에 더 무게를 두는 방식으로 삶의 전략을 조정했다. 승패에는 크게 연연해하지 않고, 그저 성실하게 내 일을 하겠다는 거였다. 이런 전략은 어느 정도 먹혀들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