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평범하면서 비범한 삶

강형구 2025. 2. 9. 08:44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사람들로부터 크게 주목을 받은 경우가 별로 없다. 부모님께서는 아들 자랑을 드러내놓고 하지 않는 편이었다. 나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친구들과 두루 어울리는 편이 아니었고 그냥 조용히 지냈다. 학원(문봉 학원 → 서전 학원)에서는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아주 많았고, 나는 그냥 공부를 그럭저럭 잘하는 편에 속할 뿐이었다. 대입 입시학원에 다닐 때는 내 주변에 공부로 날고 긴다는 친구들과 형님들이 수두룩했다. 내가 다녔던 학원에서만 20명이 넘는 인원이 서울대학교에 합격했으니, 나의 합격이 크게 대단한 게 아니었다. 늘 그랬듯 부모님은 합격 축하 현수막을 게시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고 과학철학을 고집했던 바보 멍청이였다. 대학에 들어가니 이공계열을 전공했던 고등학교 친구들은 석사, 박사, 교수가 되는 트랙을 따르거나, 이공계열에서 가장 높게 평가를 받는 전문직인 변리사 시험을 준비했다. 변리사 자격을 취득한 친구들은 이윽고 법학전문대학원에도 진학해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인문계열을 전공했던 지인들은 신속하게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 등을 준비했다. 나도 그렇게 해야 했는데, 그저 나는 순진하게 계속 과학철학을 공부하겠다고 일종의 객기를 부렸다. 실제로 철학 교수가 되려 했다면 철학 학사, 석사, 박사(해외)의 트랙을 밟는 게 좋았지만 그러지도 않았다. 아마도 내 주변 사람들은 “대체 쟤는 왜 저래?”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주 천천히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세상 물정을 파악하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극단적으로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지는 않았다. 4년 8학기 만에 대학을 졸업했고, 대학원에 합격한 뒤 육군학사장교로 복무했다. 군 복무 후 석사학위를 받았을 때 나는 표면적으로 볼 때 평균 이상의 스펙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 후 국가 중앙 공공기관 2곳(한국장학재단, 국립대구과학관)에서 근무했고,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국립대학 교수가 되었으니, 결과적으로 보면 나는 실리를 챙기며 스펙 관리도 어느 정도 해 온 셈이 되었다. 마냥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 멍청이와 같은 순진한 삶을 살아오지는 않았다.

 

   대학에 다니면서 내가 꾸었던 꿈은 비교적 소박한 것이었다. 평범하게 사는 것. 직장을 갖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며 소박하게 사는 것.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 너무 어려웠다. 나와 아내는 결혼 직후 한 낡은 아파트(엘리베이터가 없었다)의 단칸방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나의 직장은 서울에, 아내의 직장은 대구에 있어, 나는 주말마다 대구로 내려와 단칸방 신혼집에서 지내다가 다시 올라가곤 했다. 그러다가 신축 아파트에 전세를 얻어 살았고, 전세를 한 번 더 거친 뒤에 아파트 대출을 받아 우리 집을 마련했다.

 

   아이들을 낳아 기르는 일도 쉽지 않았다. 주말 부부이던 시절 아이가 잘 생기지 않아 꽤 오랫동안 난임 병원에 다녔고, 둘째 셋째가 예상하지 못했던 쌍둥이였기 때문에 출산할 때 아내가 정말 고생을 많이 했고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 갓난아기 둘을 동시에 키우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아내와 함께 우리의 젊음을 갈아 넣으며 아이들을 길렀다. 그러면서도 계속 공부해서 끝내 과학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교수가 되었다. 내가 머리가 좋거나 똑똑했다면 우수한 학점을 받아 일찍 학위를 끝내고 일찌감치 교수가 되었거나, 고등고시에 합격한 후 전문직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냥 나는 무식하고 우직하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 밀고 나갔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멍청하고 바보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결국 뒤돌아보면 나는 실제로 정말 평범한 사람이지만 오로지 멍청함과 강인한 의지만으로 나름 비범한 삶을 추구해 온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평범한 듯 보여도 잘 보면 어딘가 특별하고 비범한 구석이 있는 삶, 그런 삶을 힘써 추구하며 살고 있다.

'일상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등학교 시절의 꿈  (2) 2025.02.05
부산에서  (4) 2025.01.29
구미에서  (2) 2025.01.26
한국과학교육학회 학술대회 발표 후  (2) 2025.01.24
자유로운 마음으로  (0) 2025.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