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1982년생인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다. 나의 아버지는 경상북도 성주, 나의 어머니는 경상남도 합천에서 태어나셨고, 나의 본적은 아버지를 따라 경상북도 성주로 되어 있다. 나의 아버지는 차남이셨다. 장남이었던 큰아버지는 군대에서 부사관으로 복무하신 후 대구의 농협에 취직하셨는데, 나의 아버지는 큰아버지와 달리 대구가 아닌 부산으로 내려와 의류도매업을 시작하셨다. 그 시절 아버지는 부산의 한 공장에서 일하시던 어머니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고, 부산 금정구 구서동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하셨다.
내가 4살 혹은 5살 경에 우리 가족은 부산 동래구 명륜동으로 이사왔다. 마당이 딸려 있고 여전히 연탄으로 난방하던 집 한 채를 아버지께서 구매하신 것이다. 화장실도 본채 밖에 따로 있는 구식 화장실이어서, 주기적으로 분뇨차가 와서 화장실에 쌓인 오물을 퍼 갔다. 그러다가 그 자리에 3층짜리 집을 새로 지어 거기에서 살았다. 그 시절 아버지의 의류도매업이 비교적 성공적이어서, 나는 설이나 추석 때 동네를 돌아다니며 이웃들에게 명절 선물(수건, 양말)을 나눠드리곤 했다. 명륜동에서 나는 유아원,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왔다. 그러니까 실로 나를 키운 것은 부산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부산에 오래 살았지만 부산 곳곳을 돌아다니지는 않았다. 나는 학교를 가거나, 우리 집 근처에 있는 금정산에 가거나, 당시 부산에서 가장 번화가였던 서면의 서점 또는 부전도서관에 갔다. 이런 내 삶의 패턴은 서울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나는 서울에서 대학교에 다녔지만,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고작 나는 광화문이나 삼성역 코엑스에 있는 대형 서점에 방문했을 뿐이다. 나는 철저하게 내 할 일만을 꼭 필요한 만큼 나만의 방식으로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청운유아원, 명륜유치원, 명륜초등학교, 동해중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부산진구에 있는 부산과학고등학교(현 한국과학영재학교)에 다니다가 2학년 여름에 그만둔 이후, 도서관 및 집 근처에 있던 대입 입시학원에서 대입 준비를 했다.
누나는 서울에서 대학을 마친 후 다시 부산으로 내려왔다. 나는 그러지 않았다. 서울에서 대학을 마쳤고, 강원도 홍천에서 군 복무했고, 다시 서울에서 석사학위를 한 후 서울에서 취직했다(한국장학재단). 세종시에서 6개월 정도 파견근무를 하다, 직장을 따라 대구로 내려와 대구 내에 있는 다른 직장(국립대구과학관)으로 이직했다. 이제는 대학교수가 되어 국립목포대학교에 소속되어 있으므로, 나는 마치 고향이 없는 사람처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 지금 내 가족들이 있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테크노폴리스에서 살게 될 것 같다. 이곳은 아버지의 고향과도 가까운 곳이다.
부모님은 오래전부터 부산에 터를 잡고 사셨으므로 지인 대부분이 다 부산에 계신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계속 부산에 사실 것이다. 누나가 부모님 근처에 살고 있으므로 다소 마음이 놓인다. 나의 아이들에게는 대구가 고향이 될 것이므로, 아마도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이후에는 지금처럼 자주 부산에 내려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부산에 내려올 때마다 내가 살았던 동네를 이리저리 걸으며 나의 과거를 떠올린다. 실로 나는 샌님처럼 살았던 것 같다. 학교, 학원, 도서관, 서점을 주로 방문하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관에 자주 가기는 했다. 거리를 걸으면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긴 하지만,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는 것들이 많아서 내가 예전에 이곳에 살았음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나의 아이들이 삶의 우연으로 인해 다시 부산으로 내려오게 될지 모른다. 그건 사실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아이들은 서울, 인천, 춘천, 원주, 강릉, 대전, 전주, 광주, 경주 등으로 가게 될지 모른다. 어쨌든, 인간의 삶이라는 건 흥미진진한 것이라 늘 변화와 예상치 못한 사건들에 직면한다. 그래도 내가 부산에서 자란 사람이란 사실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으리라.
'일상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미에서 (2) | 2025.01.26 |
---|---|
한국과학교육학회 학술대회 발표 후 (0) | 2025.01.24 |
자유로운 마음으로 (0) | 2025.01.19 |
침착하고 겸손한 행보 (0) | 2025.01.15 |
역사의 도구 (0) | 2025.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