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고등학교 시절의 꿈

강형구 2025. 2. 5. 17:48

   나는 수학과 과학을 아주 좋아한다. 예전에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런데 아쉽게도 수학과 과학을 내 성에 찰 만큼 잘하지는 못했다. 그건 아마도 내가 수학과 과학에 깊은 애정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고등학생 시절 나는 수학과 과학이 가진 풍부한 의미를 알고 싶었고, 그래서 수학과 과학에 관한 역사책과 철학책을 찾아 읽었다. 내 주변에는 수학과 과학을 아주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이들 중에서 나처럼 수학과 과학에 관한 책들을 찾아서 읽는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친구들은 수학과 과학 문제들을 풀이하는 데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지만, 그 의미를 따지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거다.

 

   대학에 입학해서 철학과로 진학하니, 철학과에서는 나와 비슷한 경로로 철학과에 진학한 사람을 거의 찾을 수가 없었다.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주제들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많았고, 실존주의 문학이나 아주 인문학적인 철학(헤겔, 쇼펜하우어, 니체, 하이데거 등)에 관심을 가진 사람도 더러 있었지만, 자연과학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품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실제로 철학과 동기 중 과학철학을 전공한 사람은 나 홀로였다. 언어분석철학에 과학철학과 유사한 점이 있긴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언어분석철학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실로 나는 수학과 과학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목적으로 과학철학을 전공한 사람이며, 나의 주된 관심사는 다름 아닌 수학을 포함하는 자연과학이다.

 

   나는 수학과 과학 문제를 풀이하는 것을 좋아한다. 실제로 나는 이런 문제를 푸는 것에서 상당한 즐거움과 쾌감을 느낀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어렵고 꼬인 문제를 푸는 것은 싫어한다. 적절한 수준에서 개념 적용을 연습할 수 있는 정도의 문제를 푸는 것이 딱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는 것은 내게는 매우 큰 스트레스였다. 짧은 시간에 아주 많은 문제를 기계적으로 풀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수능 이후 나는 기괴하게 어려운 수학과 과학 문제를 푼 적이 없고, 그냥 심심풀이로 적당히 쉬운 교재를 골라 연습문제를 푼다. 딱 떨어지는 정확한 답을 찾아내는 것이 내게 상당한 만족감을 준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그저 개념을 잘 외워 문제를 잘 푸는 사람이 아니라, 역사와 사상 등 수학과 과학에 관한 풍부한 맥락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수학과 과학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나는 지금껏 내가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해 왔다고 믿는다. 뭔가 아주 전문적이고 특별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수학, 과학 해설사라고나 할까? 물론 지금의 내가 뛰어난 수학, 과학 해설사라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나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사람들이 수학과 과학의 깊은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아니, 그 개념(원리)에 그런 의미가 있었나?”라고 반응할 수 있도록 과학에 대한 담론을 만드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내가 고등학교 시절 품었던 꿈을 간직하고 있다. 비록 나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에 학교를 떠났지만, 당시 암기와 문제 풀이 중심이었던 한국의 과학교육 제도를 떠났던 것이지 수학과 과학에 대한 나의 관심과 애정은 지금껏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내게 수학과 과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물질적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틀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부쩍 자주 나는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꾸었던 꿈을 다시 떠올린다. 그 꿈이 지금까지 나를 이끌어왔다는 점을 잊어버리지 말자. 수학과 과학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담론으로서의 과학철학,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추구해 온 과학철학이다.

 

   단순하고 쉽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깊게” 이해하게 만드는 것, 그로부터 쉽게 지울 수 없는 감동이 따라 나온다. 과학철학의 텍스트(담론)는 그러한 깊은 이해로부터 그 진정한 가치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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