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변방에서의 생존과 전투

강형구 2025. 2. 19. 21:27

   나는 우리나라의 수도권 편중 현상을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수도권 편중 현상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예를 들어, 통일신라 시대에는 서라벌(경주) 편중 현상이 있었을 것이다. 수도권 편중이 일어나고, 부와 권력의 집중이 일어나고,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에서 계급이 분화된다. 이런 편중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는 지역별로 혁신도시를 만들었고, 수도권에 있던 공공기관을 지역으로 이전했고, 행정수도를 옮겼고, 국회도 옮기려 한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편중 현상은 계속된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나는 지역 정체성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었다. 그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게 목표였고, 부모님께서 따로 이에 관한 지침을 주시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이상적인 것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에 설립된 국립대학교에 진학하여 공부한 후 그 지역에서 직장을 얻어 정착하는 것이다. 부산에서 태어난 사람이나 광주에서 태어난 사람 모두 굳이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억지로 수도권에 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내가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면서 더 강해졌다. 굳이 변별력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을 억지스레 가지려고 하면서 대학 입시는 기형적으로 변한다. 입시 문제를 잘 푸는 것과 학문 탐구에 흥미를 갖고 추진하는 것 사이에는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다.

 

   억지로 서열을 만들고, 그 서열을 기반으로 신화를 만든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전국의 모든 국립대학교를 평준화하고 특성화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확고한 신념이다. 심지어 내가 서울대학교 출신이라고 해도 그러하다. 2023년 2월에 어렵게 박사학위를 마친 후, 나는 지역을 가리지 않고 과학철학 전공자를 채용한다는 모든 대학에 지원했다. 나는 수도권에 소재하는 대학을 선호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국가는 그 국가에 속한 지역이 골고루 발전할 때 건강하게 유지되고 발전한다. 한 지역에만 사람들이 쏠리고 부와 권력이 쏠리면 그 국가는 이내 병이 들게 마련이다. 나는 현재 대한민국이 수도권 쏠림이라는 병에 걸려 있다고 본다. 수도권에서 온갖 병적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다른 광역시에서도 볼 수 있긴 하지만 수도권에서 유독 심각하다.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금전적 유산이 별로 없다.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 크게 돈을 쓰지 않았고, 국립대학교에 다녔으므로 학비도 크게 들지 않았다. 지금은 내가 공무원이고 아내 역시 공공기관에 재직하고 있어 급여가 그다지 풍족하지 않다. 나와 아내는 우리 아이들도 우리 스스로와 비슷하게 키우려 한다. 우리 아이들은 7살까지 국공립 어린이집에 다닌다. 영어 유치원에는 보내지 않는다. 학원도 1~2개 정도 다니고,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고 나와 아내가 아이들과 함께 풀이할 수 있는 가정 학습지를 시킨다. 이는 서울 대치동이나 대구 수성구의 사교육과 비교할 바가 못 된다. 나는 대치동이나 수성구에서 사교육을 받는 아이들이 치킨이나 삼겹살이 되기 위해 단체로 사육되는 가축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광주에서 태어났으면 전남대학교, 목포에서 태어났으면 목포대학교, 부산에서 태어났으면 부산대학교, 서울에서 태어났으면 서울대학교에 간다. 학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실력이 중요하다. 나는 우리나라가 이런 사회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굳이 수도권을 고집하지 않는다. 소위 말하는 ‘인 서울 대학’은 일종의 환상이라고 본다. 대학에 서열을 만들고, 지역을 수도권에 비해 무시해서 얻는 대가가 무엇인가. 누가 왜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 많은 학생을, 학생들의 부모를 착취하나.

 

   당연히 한 나라의 수도가 갖는 여러 이점이 있고, 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수도권 편중도가 과도하게 심해지고 있다. 이전 정부가 이를 완화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하다. 물론 나는 이에 동조하지 않고 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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