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우리나라 교육 제도에 관한 단상

강형구 2025. 2. 26. 11:09

   법, 규칙, 제도는 일반적이다. 개인적인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한 중학교에서 2달 정도 뒤에 중간고사를 치른다고 학생들에게 공표한다고 하자. 이 공표는 학생들 모두에게 예외 없이 적용된다. 잘사는 학생과 못사는 학생을 구분하지 않는다. 시험 내용은 교과서 내에서 출제되며, 수업에 충실하게 참여한 학생은 누구나 시험을 잘 치를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 첫째, 모든 학생이 걱정 없이 식사할 수 있는가? 점심 식사와 저녁 식사 이야기다. 필요하면 신청자에 대해 학교에서 저녁 식사까지 지원할 필요가 있다. 둘째, 집이나 학원에서 공부하기 어려운 학생의 경우 학교에 남아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공부할 수 있는가? 셋째, 책이나 참고서 혹은 문제집을 사 보기 어려운 학생의 경우, 학교 도서관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나?

 

   대학수학능력시험은 학교에서의 수업 내용과 국가기관인 교육 방송 강의 내용 위주로 출제한다. 교육 방송에서 출판하는 교재는 시중에 출판되는 교재보다 훨씬 저렴하게 살 수 있고, 일선 학교에는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해 더 저렴하게 교육 방송 교재를 보급한다. 시험에 고도로 기술적이고 복잡한 문제를 출제하지 않으며, 그렇기에 매년 시험에서 만점을 받는 학생들이 100명 이상 나온다. 이렇게 제도를 설계해 두면, 여전히 사교육 시장을 이용하는 학생들도 있겠지만, 굳이 사교육 시장을 이용하지 않는 학생들에게도 비교적 공평한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잘하는 학생들과 못하는 학생들을 구분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능력과 의지가 있다면 그 사회적 배경이나 재산의 정도와 상관없이 골고루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위의 내용은 그저 하나의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전반적으로 사회 제도를 설계할 때 기회의 평등을 제시하는 식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은 상징적인 세계 속에서 자아상을 형성하고 이 세계와 사회 속에서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는데, 이러한 의지를 최대한 공정하게 실현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제도를 설계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는 다름 아닌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 자신이 설계하고 만들어간다. 헌법과 법률은 한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기초적인 규칙이고, 이 규칙은 구성원들의 합의를 통해 성립하고 수정되며 유지된다. 내가 생각할 때 오늘날 우리 사회를 가장 고통스럽게 좀먹고 있는 것은 사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불합리한 불평등이다. 법과 제도는 그 안정성이 중요하긴 하지만,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맞게 수정하는 일 역시 꼭 필요하다.

 

   학원에 다니지 않고 학교에서만 공부해도 충분히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일은 우리 사회의 제도 구성을 통해 실현할 수 있다. 이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고, 지금껏 이를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으며, 앞으로 지금보다 더 개선할 수 있다. 내가 이 문제를 정말 심각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나 스스로가 지금과는 다른 여건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교육 방송은 기본적인 방송료만 내면 시청할 수 있었고, 교육 방송의 교재는 일반적 교재보다 훨씬 더 저렴했으며, 수능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물론 당시 나는 그저 한 명의 학생이었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제시하는 제도에 따라야 했지만, 그 당시의 공부 여건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음을 기억한다. 게다가 당시에는 대학 입시에서 내신 성적과 수능 성적을 모두 반영했고, 학교마다 논술과 면접을 치렀다.

 

   물론 나는 교육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우리나라 교육 제도의 설계와 유지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지도 않다. 그러나 나는 우리나라의 중등교육에 관해서 큰 관심을 가지며,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고 생각하고, 중등교육으로부터 온갖 종류의 불평등이 우리 사회의 각종 영역으로 침투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렇기에 나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우리나라 중등교육 개선 영역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으리라 예상한다.

'일상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혼란한 시국에서 미래를 예측함  (0) 2025.03.09
왜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까?  (0) 2025.02.23
변방에서의 생존과 전투  (6) 2025.02.19
개학을 앞두고  (2) 2025.02.16
욕심 없이 커피 한 잔  (2) 2025.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