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왜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까?

강형구 2025. 2. 23. 07:47

   왜요? 왜 그렇게 생각해야 하죠? 나는 이렇게 묻는 것을 일종의 태도 혹은 습관으로 삼는 것을 서양철학의 근본적인 두 정신 중 하나라고 본다. 이와 쌍둥이와도 같은 서양철학의 다른 정신은 어떤 형태로든 이 세계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서사를 만들려는 태도다. 흔히 탈레스를 신화적인 방식이 아니라 자연적인 방식으로 세계를 설명하려 했던 최초의 철학자로서(혹은 과학자로서?) 평가한다. 그러나 그보다 나는 탈레스의 설명 역시 하나의 정합적이면서도 불완전한 서사였음에 주목한다. 인간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경험적인 지식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지식에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고 설명하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런 성향을 모든 인간 개체에서 볼 수 있지는 않지만, 이는 분명 서양철학의 또 다른 기둥이다.

 

   이상과 같은 ‘따져 물으려는 성향’과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는 성향’은 상호 보완적이다. 소크라테스는 따져 물으려는 성향이 강했고, 세상을 이끌어가던 기존의 이야기들에 지치지 않고 의문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켰고 죽음에까지 이르렀다. 그에 반해 그의 제자였던 플라톤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는 성향이 더 강했고, 이 세상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환상적인 서사를 꾸며냈다. 스승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따르는 제자는 그다지 흥미롭지가 않은데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다. 라파엘로의 그림을 보면 플라톤은 하늘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땅을 가리킨다. 누군가가 A라고 말하면 A가 아니라 A’ 혹은 B라고 말함으로써 세상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방식은 더 다채로워진다.

 

   토론과 논쟁은 결코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다. 인간 문명의 역사에서는 토론과 논쟁이 없거나 제한되는 경우를 더 흔하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담론이 한 사회를 지배하고, 그 담론을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사회적 집단이 존재하며, 그 집단이 그 사회의 지배적 권력과 밀접하게 결부되는 상황은 토론과 논쟁이 벌어지는 상황보다 더 흔하다. 그런 의미에서 토론과 논쟁은 인간 문명이 산출해 낸 희귀한 발명품 중 하나이며 예술 작품과 유사한 특성을 갖는다. 그렇기에 한 사회에서 토론과 논쟁의 문화를 성립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공이 든다. 그것은 일종의 전통이며 다른 전통에 의해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전통은 묻고 따지는 전통 이전부터 존재했으니, 이러한 ‘서사의 전통’을 철학 고유의 창조물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서양철학의 가장 중요한 정신은 ‘묻고 따지는 정신’이다. 아마도 이 정신은 불멸할 것인데, 왜냐하면 인간이 세계에 대해 만들어내는 이야기 중 영원하고 완벽한 이야기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세계를 설명하는 이야기는 다양한 방식으로 성립될 수 있으므로, 묻고 따지는 정신은 지금까지 있었던 이야기와는 다른 이야기를 가능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서양철학의 정수를 설명하는 표현 혹은 개념은 ‘천재’가 아니라 ‘독립적으로 사유하는 사람’이다. ‘천재’ 개념은 그 자체가 퍽 신화적이며 일종의 역사적 유물이다. ‘독립적으로 사유하는 사람’은 그 어떤 이야기도 쉽게 믿지 않고, 묻고 따지며,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견해를 정립한다.

 

   이렇듯 나는 서양철학의 묻고 따지는 정신이 흔하지 않고 소중한 문화적 전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이 쉽게 무너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기반하고 있는 물질적인 기초가 중요하다는 것을 늘 의식하려 한다. 간단히 말해, 기본적인 의식주가 갖춰져 있고 강압적인 권력과 무력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상황에서만 한 인간은 묻고 따질 수 있다. 대체 어떤 소대원이 전쟁 상황에서 소대장에게 묻고 따질 수 있겠으며, 어떤 소대장이 중대장에게 묻고 따질 수 있겠는가? 먹을 것, 입을 것, 쉴 수 있는 곳이 없을 때, 대체 누가 묻고 따질 수 있을 것인가? 이렇듯 철학의 정신은 제도화된 사회 속에서만 성립할 수 있기에, 철학을 하는 사람에게 사회적 참여는 선택이 아닌 의무적 사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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