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나는 과학철학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말렸다. 그게 뭐야? 왜 해? 하지 마. 어쩌면 그때 나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들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하고 싶다는 나의 마음이 하지 말라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보다 더 강했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나는 과학철학을 하면 안 되는 건가? 이걸 하면 죄를 짓는 건가? 그런데 그건 아니었다. 결국 나는 내가 과학철학을 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냥 하기로 했다.
과학철학을 하면서는 내적인 회의감이 자주 들었다. 특히 과학철학을 하기에는 내가 너무 멍청하다는 생각을 수시로 했다. 과연 내가 계속 과학철학을 해도 되는 걸까? 철학도, 수학도, 물리학도 잘 못하는 내가? 그래서 나는 물었다. 과학철학을 잘 못하는 내가 과학철학을 하면 안 되는 건가? 이걸 하면 죄를 짓는 건가? 그런데 그건 아니었다. 잘 못하면 잘 못하는 대로 하면 된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잘 못하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조금씩 잘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부족한 내가 계속 과학철학을 해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저 너무 큰 기대를 나 스스로에게 하지만 않으면 될 일이었다.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오래전부터 나는 나 자신이 비교적 보수적인 사람이라 생각해 왔다. 지금까지 내가 속했던 사회정치적 집단들의 속성이 그러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 성격 혹은 성향이 과격한 변화와 혁신보다는 기존의 논리와 질서를 유지하고 계승하는 일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보수적인 내가 볼 때 “이건 정말 아니다”라고 판단했을 때는 어떤 방식으로든 나의 정치적인 견해를 표현하고자 했다. 집회에 참여하거나, 나의 정치적인 관점을 나타내는 글을 쓰거나, 꼬박꼬박 투표했다. 너무나 소박하고 평범한 정치적 행위였다.
당연히 나의 정치적인 영향력은 누가 봐도 미미하기 짝이 없다. 그런 영향력이 없는 내가 정치적 행위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치적 행위는 정치인들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정치인이 아닌 일반 시민은 투표만 하면 되고, 투표조차도 상황에 따라서는 안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나는 이런 물음들이 과학철학에 관해 내게 던져진 물음들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묻는다. 나는 정치적 행위를 하고 싶은데, 하면 안 되는 건가? 이게 죄를 짓는 건가?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해도 된다. 애초부터 내가 거창한 정치적 영향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는 비교적 확실하게 깨달은 게 있다. 내가 부족함을 걱정하지 말고, 나에 대한 남들의 걱정을 크게 신경 쓰지 말고, 만약 그 일이 죄가 아니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면, 그걸 그냥 계속 해 나가라는 거다. 이런저런 걱정을 하면서 내가 하고 싶고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거나 불필요하게 에너지 소모를 하지 말라는 얘기다. 어차피 많은 경우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제한된다.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내게 주어진 합법적 자유의 범위 내에서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해 나가면 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결코 나만큼 내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대한민국 대통령 윤석열의 탄핵소추 심판 선고가 2025년 4월 4일 금요일 오전 11시에 헌법재판소에서 진행되기로 결정되었다. 한 사람의 국민이자 시민으로서 이 결정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 질서가 제자리를 되찾고 우리 사회의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 분열하지 않고 다시 결합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거라 희망한다. 이를 계기로 우리가 이전까지 공유해 왔던 헌법과 법률 질서의 허점 혹은 문제점을 다시 돌아보고, 지금껏 우리 사회의 기득권으로 군림해 왔던 소수 엘리트의 문제점을 파헤쳐 이를 사회적으로 치유하고 개선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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