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이 느끼고 있는 감정은 아마도 ‘상식이 파괴되는 고통’이 아닐까 한다. 사실 ‘상식’이 파괴 불가능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상식’ 역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식’은 우리나라가 만든 교육기관에서 시작하여 사람들의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구성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상식’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러한 괴리를 ‘교육’에서 처음으로 목격했다. ‘교육’이란 상식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국민 모두에게 고른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오히려 ‘교육’에서 우리나라의 온갖 부조리한 불평등을 고스란히 찾아볼 수 있다.
12월 3일,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 비상계엄의 포고령에는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 내용이 명백하게 포함되어 있었고, 이는 헌법에 반한다. 또한 군인과 경찰이 국회에 투입되어 국회에 들어가려는 국회의원들을 저지하는 모습을 모든 국민이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이 역시 명백한 헌법 위반이다. 대통령은 헌법을 수호하는 기관이지 헌법을 초월하여 파괴하고 새로 만드는 기관이 아니며, 이는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동의하는 바다. 물론 야당과 여당 사이의 정치적 다툼이 과하게 격했을 수는 있다. 설사 그러했다고 하더라도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선이 있는데, 대통령은 그 선을 넘어버렸다. 그리고 그 상황을 모든 국민이 직접 생생하게 목격했다.
나는 아무리 소속된 정당이 달라도 최소한의 상식은 여당과 야당이 공유하리라 생각했다. 그때의 최소한의 상식이란, 여당과 야당이 서로 싸우고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기 힘들더라도, 어떤 상황이 있어도 헌법만은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당은 그러한 최소한의 상식을 어기는 행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상황이 오죽 나빴으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발동했겠냐, 계엄이 아니라 계몽이다, 대국민 호소용 계엄이었다 등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최소한의 상식을 조금씩 파괴했다. 정치적, 집단적 이익이 상식을 초과하고 위배하는 상황. 어찌 생각하면 이미 그러한 상황은 우리 사회 곳곳에 팽배해 있다. 실제로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이 중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바람직한 삶과는 명백히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나라를 대표한다는 사람들이 버젓이 대놓고 우리 사회 공동체 구성원 대다수가 갖고 있는 상식을 조금씩 파괴하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사뭇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것은 적어도 내게는 아주 은근하고 지독한 고통을 준다. 한편으로는 ‘그래, 이게 우리네 삶의 냉정한 현실이지. 저들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온갖 일을 다할 것이고, 짐승들마저도 저들에 비하면 순진한 편이다.’라고 생각하면서도, 냉정한 삶의 현실을 좀 더 이상적이고 따뜻하게 만들어 보라고 선출하고 높여준 사람들이 더 극단적으로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으로부터 분노가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한다. 물론 나는 저들이 바뀌지 않을 것임을 잘 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저들의 말을 고분고분 따라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최소한의 인간적인 권리 아니겠는가.
대통령 탄핵소추에 관한 판결이 지연될 수 있고, 계속 판결이 지연되어 2명의 헌법재판관 임기가 종료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떤 해괴망측한 논리도 대통령이 헌법을 초월하여 파괴하고자 했다는 사실을 덮을 수는 없다. 그것이 ‘파면 사유가 될 만큼 중요하지 않다’라는 말을 만들어낼 수는 있겠으나, 만약 그런 말을 만들어 우리 사회의 현실로서 구현한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 공동체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최소한의 상식마저 파괴하겠다는 뜻이다. 물론 상식은 파괴될 수 있고 그에 따른 고통은 엄청나게 클 것이다. 그리고 그 엄청난 고통은 전국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떨쳐 일어서게 하는 도화선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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