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기본에 충실하기

강형구 2025. 3. 16. 07:32

   대학교수가 된 지금도 나는 나 스스로 매우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계속 공부하려 애쓴다. 과학사와 과학철학 전공자이기에 해야 할 공부는 더욱 많다. 과학철학 연구자는 철학뿐만 아니라 과학도 계속 공부해야 한다. 게다가, 과학의 역사적 전개 과정에 대해서도 늘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과학사 및 과학철학’이라는 전공의 이름이 가지는 무게가 이토록 무겁다. 만약 ‘과학학’ 전공이라면 그 안에서 세부 전공을 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사실 일반적인 관점에서 ‘과학학(Science Studies)’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과학사 및 과학철학’과 비교할 때 과연 ‘과학학’이 무엇을 탐구하는 학문인지 잘 파악되지 않을 수 있다.

 

   어제는 한참동안 우리 학교에서 개설된 수업들의 강의계획서를 찾아보았다. 내가 작년인 2024년 3월에 우리 학교에 부임한 이후, 현재 우리 학교에서는 과학사, 과학철학, 논리학을 가르칠 여건이 어느 정도 조성되었다고 본다. 매년 1학기에 ‘과학기술의 역사적 진화’(과학사), ‘논리와 비판적 사고’(논리학), ‘로봇의 윤리학’(인공지능 철학) 수업이 개설되고, 매년 2학기에 ‘과학철학의 이해’(과학철학), ‘현대철학’ 수업이 개설된다. 추후 ‘인공지능 윤리’가 개설될 가능성도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나는 내가 일반수학이나 일반물리를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볼 때 수학은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목적(계산) 및 자연 탐구를 위해 특화된 언어이고, 자연언어로부터 파생된 후 고도로 정교화되었다. 논리학이 주로 자연언어의 논리를 다룬다면, 일반수학은 수학이라는 실용적이고 분화된 언어의 기초적인 논리를 다룬다. 그러니 내가 가르칠 수 있고, 실제로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고도 믿는다.

 

   일반물리는 일반수학보다는 더 구체적인 방식으로 자연에 적용되는 논리 혹은 자연을 이해하는 기본적인 틀을 다룬다. 물리학은 모든 자연과학의 기초가 되는 학문이며, 그런 이유로 과학철학 연구자에게도 기본이 된다. 따라서 나는 과학철학 연구자가 일반물리 정도는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그에 능숙해져야 한다고 본다. 물리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어떤 사람이 일반물리를 가르친다고 해서 그를 전문적인 물리학자라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물리학자들은, 이른바 ‘과학철학’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무릇 일반물리 정도는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전문화를 경계하는 편이다. 전문화에 빠지지 않는 것이 과학철학 연구자의 태생적 특징이라고도 생각한다. 그것은 과학철학이 다루는 대상이 철학에 특화된 대상이 아니라 과학(수학을 포함)이기 때문에 그렇다. 수학과 물리학을 기본으로 하면서, 생물학의 철학이 필요하면 생물학을 공부하고, 인공지능의 철학이 필요하면 인공지능을 공부해서 강의할 수 있는 수준까지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올-라운드-플레이어라 해야 할까? 당연히 각 분야의 전문적인 수준까지 깊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다만 대학의 교양 과목으로 가르칠 수 있는 수준까지는 유동적이고 유연하게 파고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와 같은 유형의 연구자를 현재 우리나라 대학의 철학과 대학원에서 육성할 수 있을까? 그건 좀 어렵지 않을까 싶다. 사실상 전통적 철학 커리큘럼을 따른다면 과학철학 연구자를 양성하기 어렵다. 나는 바로 그러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이른바 HPS(History and Philosophy of Science) 프로그램이 만들어졌을 것이라 이해한다. HPS에서 훈련한 연구자의 특징은 경계인이자 잡종이라는 것이며, 그것은 단점일 수 있지만 가장 강력한 장점이기도 하다. HPS 연구자의 관점에서 보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갈릴레오, 뉴턴, 가우스, 리만, 아인슈타인 같은 인물들은 모두 경계인이자 잡종이었다. 대표적인 예인 갈릴레오는 금전적 이유로 귀족 자제들에게 탄도학과 축성술을 가르쳤으며 망원경을 직접 제작했고,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였지만 자연철학을 논하며 코페르니쿠스 체계를 옹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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