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123

잘하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것

돌아보면 정말 그런 것 같다. 나는 잘 해왔다기보다는 끈질기게 버텨왔다. 뭐든 잘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나는 오직 몇 가지를 계속 붙들고 끈질기게 그것을 계속 해 왔다. 왜 나는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버티는 사람인 것인가? 마음에 안 든다. 그런데 마음에 안 들어도 그게 나다. 다시 말해, 나는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버티는 사람이다. 공격과 수비로 따지면 나는 늘 수비하는 사람이다. 보수적인 관점에서 수비만 하니까 급격하고 혁신적인 변화를 이루지는 못한다. 때로는 과감하게 공격적인 태도를 갖고, 이전에 이루지 못했던 일들을 이루어야 한다.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나는 너무 보수적이고 소극적으로 철학을 하는 것이 아닌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의 모두를 걸고 실패의 위험을 충분히 끌어안으며 과감하고..

주말만 되면 도지는 병

내가 지금도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는 일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내가 육군 장교로 군 복무를 할 때 홍천도서관 근처에서 살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남자 중에 군대에 정말 가고 싶어 군 복무를 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나는 철학, 특히 과학철학을 계속 공부하고 싶었지만, 성적이 좋지 않았고 집안 형편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런 내게 철학 공부는 사치처럼 여겨졌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얻을 수 있는 일종의 안식이었다. 군 복무는 내게 고통스러운 의무였다. 그래서 나는 주말만 기다렸다. 주말에는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홍천도서관에서 종일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시절에 내 인생을 바꾼 기적이 일어났다. 예나 지금이나 내 블로그는 그다지 인기가 없..

때로는 맹목적으로

나는 20세기 경험주의를 대표하는 과학철학자 한스 라이헨바흐(Hans Reichenbach, 1891-1953)가 1938년에 출판한 [경험과 예측]을 번역하여 최근 출판사에 넘겼다. 돌이켜보면 내가 라이헨바흐의 저술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은 2004년부터 시작했다. 어느덧 20년 정도가 지난 셈이다. 지금 나는 그의 유고작인 [시간의 방향]을 번역하고 있다. 한 명의 과학철학자의 여러 저술을 계속 번역하는 일은 과학철학계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지만, 철학계에서는 비슷한 일들을 종종 찾을 수 있다. 나는 철학과를 졸업했으므로, 특히 칸트 연구자이신 백종현 교수님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므로, 이런 식의 연구 작업이 어색하지 않다. 동시대의 과학 지식에 대한 아주 정확한 이해를 갖춘 철학적 정신은 꼭 필요하..

아인슈타인을 연구하는 한 방법

과학자, 특히 이론 물리학자였던 아인슈타인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아인슈타인 연구자’라고 할 만한 사람은 사실 별로 없다. ‘상대론 전문가’는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중앙대학교 물리학과의 강궁원 교수님이다. 만약 ‘아인슈타인 연구자’가 있다면, 아마 그 사람은 과학의 역사와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 사람이 물리학 학위를 갖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본질은 아니다. 아인슈타인 연구자는 과학의 역사와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일 필요가 있다. 아인슈타인을 연구해서 국내의 대학에 자리를 잡는 것은 힘든 일이다. 오히려 나는 과학관의 연구원이자 학예사인 내가 아인슈타인 연구를 그나마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아인슈타인은 과학에서는 불멸의 인물이다. 과학교육에..

직장인과 학술인의 중간에서

이른바 ‘교육과정’을 마치고 나면, 실질적으로 한 사람을 정의하는 것은 실제로 그 사람이 사회 속에서 생존을 위해 무슨 일을 하여 그에 따른 대가를 받느냐이다. 석사학위를 마치고 내가 처음 취직했던 기관은 교육부 산하의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인 한국장학재단이었다. 이 기관은 국가장학금 사업, 학자금 대출 사업, 대학생 교육 기부 사업과 같은 공공적 특성이 강한 일들을, 교육부를 대신하여 수행하는 기관이었다. 나는 대학생 교육 기부 사업과 행정 부서에서의 기획 업무(기관 및 부서 평가)를 했다. 이런 일들은 사회적으로 볼 때 바람직했지만, 나의 전공인 과학사 및 과학철학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일들이었다. 장학재단에서의 5년 6개월 근무 이후 이직해서 지금까지 재직하고 있는 국립대구과학관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

러닝메이트, 혹은 선의의 경쟁자

내가 한국장학재단에 다니면서 기획재정부에서 파견 근무를 하고 있을 때였다. 장학재단에서 본부장을 1명 외부 공모하는데, 기재부 출신의 서기관급 직원 2명이 지원한 상황이라 했다. 나는 그 2명 중 1명과 우연히 잠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께서는 자신을 일종의 ‘러닝메이트’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볼 때 그분의 이력은 상당했고 매우 경쟁력이 있는 공무원이었다. 비록 최종적으로 선발되는 한 사람이 ‘주인공’이겠고 결국 내가 대화했던 그분은 주인공을 위한 ‘러닝메이트’로 남겠지만, 나는 그때 ‘러닝메이트’조차도 상당한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는 ‘제발 졸업만 좀 하자’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과학철학 연구에 더욱더 재미가 붙었..

학술대회 발표 준비

만약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의 시간과 공간 질서가 빛 신호(세계에서 가장 빠른 신호)를 통해서 수립될 수 있고, 특히 이렇게 빛 신호를 통해 수립되는 사건들 사이의 위상적 관계가 계량적 관계와 달리 기준계와 무관하게 불변한다면, 우리는 눈을 떠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이 순간 세계의 객관적인 시간과 공간 질서를 파악하고 있는 셈이다. 세계는 인과적 영향들로 가득 차 있다. 내게 빛 신호를 보내고 있는, 그래서 내가 시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모든 사건은 나에게 인과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과성만으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을 설명할 수 없나? 시간이 흐르기 때문에 원인은 원인이 되어 결과를 초래하는 것일까? 아니면 원인과 결과가 있을 뿐이며 시간..

Philosophy First

내가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내가 철학을 전공했다는 것이다. 철학은 근본적이면서도 멋진 학문이다. 물론 철학만을 전공하거나 공부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을 해도 되고 그런 형식적인 전공에 매이고 싶지 않다면 철학 말고 다른 것을 따로 공부하고 익히면 된다. 철학을 밑천으로 삼아 영화를 찍어도 음악을 만들어도 행정이나 법을 공부해도 된다. 계속 철학을 공부해서 철학으로 살아가려면 철학만 공부해도 되지만 사실 다른 학문이나 삶의 여러 측면을 두루 고찰하지 않는 철학이라면 그다지 흥미로울 것 같지 않다. 철학으로 살아가려고 해도 다른 학문 혹은 세계의 여러 모습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어쨌든 나는 철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을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

조인래 교수님과의 만남

내가 처음 조인래 교수님을 만난 것은 2002년 가을학기(과학철학)였다. 나는 2001년에 대학에 입학했고, 장회익 교수님의 수업(물리학의 개념과 역사)은 2001년 1학기에, 구자현 교수님의 수업(과학사 개론)은 2001년 2학기에 수강한 바 있었다. 2002년 가을학기 과학철학 수업을 마친 어느 날, 아직 철학과로 전공 진입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교수님께 과학철학에 관심이 있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때도 교수님께서는 나의 그 말을 진지하게 듣고 곰곰이 생각하신 다음, 계속 그 관심을 이어가도록 격려의 말씀을 해 주셨다. 나는 조인래 교수님을 지도교수로 삼아 학부 졸업 논문(2005년 2월 졸업)을 썼다. 그리고 대학원에 지원하기 전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으로 진학하고 싶다는 의사를 교수님께 말..

경험주의의 전통을 이을 뿐

철학 연구자로서 나는 경험주의의 전통을 잇고 있다. 경험주의는 과학적 지식을 포함한 인간의 모든 지식이 경험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본다. 경험주의는 지식 수립에 있어 인간의 이성적 능력이 중요하고 필수 불가결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그와 같은 이성의 역할을 불필요하게 과도한 방식으로 해석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경계한다. 지식은 인간이 만들어낸 경탄할만한 발명품이지만, 그와 같은 발명품에 그것이 정당하게 가져야 할 해석보다 지나친 해석을 부여해서 그러한 해석 부여를 통해 지식에 과도하고 부당한 권위를 부여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철학 연구자가 반드시 대학에서 철학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교수가 될 필요는 없다. 즉, 어떤 사람이 철학을 연구한다는 것과 그 사람이 대학에서 교수로서 일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