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는 내 삶의 패턴을 최대한 단순화시켰다. 내가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을 제외한 부수적인 일들은 다 정리를 한 것이다. 다재다능한 뛰어난 사람이라면 여러 일들을 한꺼번에 잘 해낼 수 있겠지만, 불행히도 나는 그런 사람이 못 된다. 물론 나는 매우 성실한 사람이긴 하다. 그러나 내가 생각해도 나는 업무의 효율성이 좀 떨어지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남들이 1시간 만에 할 일을 나는 3시간에 걸쳐서 한다. 약간 멍청해서 그런 것일까? 어쨌든, 이번 학기에는 매번 수업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금방 지나가고 있다.
나는 대학교수도 하나의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이다. 그런데 교육과 연구를 함으로써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 아닌가? 멋진 일이면서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내가 교수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해 준 내 삶의 모든 행운에 감사한다. 나 역시 열심히 노력하긴 했지만, 여러 행운이 따라주지 않았다면 결코 이뤄낼 수 없는 일이었다. 나를 믿고 뽑아준 우리 학교에 감사한다. 목포대학교 정보종합센터 3층에 있는 내 연구실이 얼마나 만족스러운지 모른다. 지금 이 글 역시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연구실에서 쓰고 있다. 아침의 학교는 한가롭고 평온하다.
출근하면 나는 컴퓨터로 명상을 위한 음악을 켠다. 향(香)도 하나 피우는데, 향을 피우면 마음을 정리하기에 좋다. 나는 옛 승려나 유학자가 된 기분으로 수업을 준비하거나 책과 논문을 읽으려 한다. 나는 나의 연구실을 기도원 혹은 수도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유명하지 않은 무명의 학자이기에 내게는 바쁘거나 번거로운 외부 일이 거의 없다. 사실 앞서 말했듯 명민하지 못한 나는 학교에서 개설한 수업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하루 수업이 끝나면 다시 연구실로 돌아와 나의 연구를 한다. 읽고 싶던 책과 논문을 읽고, 필요하면 글도 쓴다. 그러다 보면 밤이 되고 금방 하루가 다 간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삶을 지루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에게는 이런 삶이 딱 맞는 것 같다. 나로서는 12년 동안의 직장 생활 이후 겨우 제 자리를 찾은 것이다. 우리 사회가 나와 같이 인문학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사람을 많이 필요로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점점 더 인문학의 자리가 좁아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인문학이 아예 사라질 수는 없겠지만, 인문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사람이나 인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의 수가 줄어들 수는 있을 것이다. 나는 인문학이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내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저 나의 실천으로 인문학의 필요성을 조금이나마 이 사회에 전파할 수 있을 뿐이다.
이제 나는 겨우 1살인 새내기 교수다. 제대로 된 교수가 되려면 최소한 10년은 걸리지 않을까 싶다. 마음껏 교육과 연구에 전념하고 싶긴 하나, 아내와 아이들이 떨어져 있어 그게 마음에 걸린다. 그러나 늘 인간은 현실에 맞춰서 적응하며 살아간다. 나도 올해 3월에 임용된 이후 나름대로 내 상황에 맞게 적응하며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해가 갈수록 교수로서의 삶에도 더욱더 적응할 것이라 기대한다. 특히 나는 철학과 소속이 아닌 교양학부 소속 교수라, 다양한 특성을 가진 과목들을 두루 강의하고 있다. 나는 문학사 학위와 이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갖고 있는 나 자신이 교양학부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나는 인문학을 전공한 교양학부 소속 교수로서 살아가는 일에 아주 만족한다. 나는 올해 1권의 책을 번역 출간했고, 2편의 학술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했다. 이 정도 수준으로 꾸준히 계속 교수로서 생활한다면 소기의 학문적 성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나는 의식주에 대한 큰 욕심을 갖고 있지도 않은 사람이므로, 국립대 교수이자 교육 공무원으로서 받는 월급에 대해서도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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