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교로 임용되기 이전에 2개의 공공기관에서 일을 했다. 대학에서 일을 해 보니, 대학교수의 삶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비해 만만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는다. 분명 교수에게 개인적인 시간이 많이 주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시간은 대부분 강의 준비와 전공과목 연구로 채워진다. 특히 나는 철학과가 아니라 교양학부 소속 전임교원이기 때문에, 나의 전공인 과학사 및 과학철학과 약간 거리가 있는 과목 역시 강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학교 1학년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향후 대학 생활을 잘할 수 있는지에 관해 강의하고, 학생들이 PPT 자료와 UCC 콘텐츠를 어떻게 잘 제작할 수 있는지에 관해 강의한다.
이와 더불어 학교를 위해 ‘학생들의 AI 활용 윤리’에 관한 영상을 촬영하고, 인문대학의 인문 주간에는 내가 번역한 책에 관한 북콘서트를 준비한다. 올해 겨울 방학 때는 15주 분량의 과학철학 강의를 영상으로 촬영해서 학생들이 학습할 수 있도록 특정 사이트에 탑재할 예정이란다. 이렇듯 학교에 관련된 일만 해도 제법 많은데, 곧 다가올 가을 학술대회(11월 중순)에서 발표를 하기로 해서 발표 준비도 해야 한다. 여러 철학학회로부터 수시로 학술논문 심사 의뢰도 들어와서 기한에 맞게 논문 심사도 한다. 나는 교수가 다른 직업보다 더 바쁘다는 게 아니라 교수 또한 최소한 다른 직업만큼은 바쁘다고 말하고 싶다. 대학교수가 마냥 시간이 많고 여유로운 직업이라는 생각은 이미 거짓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가정에 소홀할 수는 없다. 한창 아이들이 자라는 중이라 최대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꼭 필요한 강의와 연구 아니면 가급적 하지 않는다. 주말에는 아이들과 영화관에 가거나, 비슬산 자락에 있는 자연 친화적 카페에 가거나, 대구미술관에 가거나, 집 주변에 방문할 만한 다른 곳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나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이 세상 그 어떤 즐거움도 이에 비할 수 없다. 그 이외의 시간에 나는 내가 꼭 해야 할 일들에 집중한다. 강의 준비, 책 번역, 논문 준비 등. 다른 사람들이 보면 내가 참 재미없게 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이 모든 일들이 재미있다. 나에게는 내 전공 수업을 준비하는 것도 일종의 도전이고, 내 전공이 아닌 수업을 준비하는 것도 도전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나는 과학사와 과학철학과 관련하여 대학생들을 위한 표준 교재를 집필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고, 향후 기초 논리학에 관한 책을 쓰고 싶기도 하다. 귀납과 확률을 중심으로 대학생들을 위한 입문서 수준의 과학방법론 책도 쓰고 싶다. 시간과 공간의 철학에 관한 책을 쓸 생각도 있는데, 그 생각은 과연 언제쯤 구현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내 머릿속은 과학철학에 관한 교육과 연구로 가득 차 있다. 이 일들만 해도 시간이 모자란다. 욕심이 너무 큰 것일까.
내년에 APPSA 학술대회를 대만에서 하고, 대회 참여 제안서를 올해 말까지 제출해야 하는 것을 기억한다. 가능하면 이 학술대회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내년 1학기에는 “과학기술의 역사적 진화”라는 이름의 새로운 교과목도 신설하기로 계획되어 있다. 이 모든 것들을 준비하려면 겨울 방학이 되어도 그다지 여유롭지 않을 것 같은 다소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러나 이렇게 바쁘게 지내다 보면 분명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나는 처음부터 잘 준비해서 진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배워 나가는 사람이다. 내가 제갈량(諸葛亮) 같은 똑똑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최근 아주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어느덧 국립목포대학교에서의 1년이 지나가고 있다. 올해 가을학기를 잘 마무리하면 내년에는 올해보다 좀 더 심적으로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한다. 다만 좀 신경 쓰이는 것은 운동이다. 근래에 운동을 너무 안 하고 있어, 아랫배가 나오고 몸이 점점 둔해지는 것 같아서 퍽 걱정이다.
'일상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쓰면서 생각한다 혹은 일하면서 일한다 (4) | 2024.11.17 |
---|---|
인문학 전공 교수로서 만족함 (6) | 2024.11.13 |
자유롭고 즐겁게 (6) | 2024.11.03 |
조인래 교수님을 다시 생각함 (0) | 2024.10.27 |
얽매이지 않는 삶 (16) | 2024.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