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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나를 원할 때까지

오래전부터 나의 바람은 ‘평범하게 사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껏 그렇게 평범하게 살고자 노력해 왔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란 무엇이냐? 나는 대한민국에서 남자로서 평범하게 사는 것이 군대에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부는 내가 결코 놓을 수 없는 진정 사랑하는 것이었기에, 나는 내가 교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은 채 최소한 석사과정만 마치자는 생각으로 공부했다.    박사 과정에서 휴학하고 취직 준비를 할 때, 나는 한 편으로는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도 했다. 내 주제에 무슨 박사 공부냐. 사실 공부는 내게는 일종의 사치이지 않았는가. 석사과정 2년 동안 실컷 공부했으니 됐다. 이제 나도 남들처럼..

일상 이야기 2024.11.20

쓰면서 생각한다 혹은 일하면서 일한다

조직원은 조직의 부품이다. 팀원은 팀의 부품이고, 팀은 부서의 부품이며, 부서는 본부의 부품이고, 본부는 기관의 부품이며, 기관은 부처의 부품이고, 부처는 나라의 부품이다. 한국장학재단에서, 국립대구과학관에서 내가 했던 일들은 제법 가치 있는 것이었지만, 일을 끝내면 혹은 조직을 떠나고 나면 내가 한 일들은 공적인 일들로 남고 그 속에서 나의 이름은 사라지거나 잊힌다. 그 대가로 기관은 나에게 급여를 지급한다. 부품으로서 역할을 잘 해냈기 때문이다.    대개 사회 속에서 언어는 실질적인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기 위해 사용된다. 그렇게 사용되는 언어를 운반하고 작동시키는 개인들은 독립적인 존재라기보다는 능률적인 기계에 가깝다. 하지만 조직과 사회는 개인들이 직접적인 실용적 목적 없이 유희에 가까운 방식으로..

일상 이야기 2024.11.17

인문학 전공 교수로서 만족함

최근 나는 내 삶의 패턴을 최대한 단순화시켰다. 내가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을 제외한 부수적인 일들은 다 정리를 한 것이다. 다재다능한 뛰어난 사람이라면 여러 일들을 한꺼번에 잘 해낼 수 있겠지만, 불행히도 나는 그런 사람이 못 된다. 물론 나는 매우 성실한 사람이긴 하다. 그러나 내가 생각해도 나는 업무의 효율성이 좀 떨어지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남들이 1시간 만에 할 일을 나는 3시간에 걸쳐서 한다. 약간 멍청해서 그런 것일까? 어쨌든, 이번 학기에는 매번 수업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금방 지나가고 있다.    나는 대학교수도 하나의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이다. 그런데 교육과 연구를 함으로써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 아닌가? 멋진 일이면서도 감사해야 할 일..

일상 이야기 2024.11.13

과학철학자의 길

고등학교 2학년 여름,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하자 눈물을 글썽이며 내가 왜 학교에서 나가야 하냐고 말하던 한 고등학교 친구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 친구가 볼 때 나는 참으로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고 늘 그에 관한 책들을 읽었기 때문이다. 나에게서는 내가 과학을 정말로 좋아한다는 티가 났다. 단지 나는 문제집을 기계적으로 계속 풀기를 거부했을 뿐, 과학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좋아했다. 그렇게 과학을 좋아했던 나는, 다만 주입식 과학 교육을 받으며 문제를 잘 푸는 머리 똑똑한 학생이 되기를 거부했을 뿐이다.    아직도 나는 2000년에 검정고시 고사장에서 시험을 치렀을 때의 풍경을 기억한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특히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나와 함께 시험을 치렀다. 그때 나는 지금까..

바쁜 나날들

나는 대학교로 임용되기 이전에 2개의 공공기관에서 일을 했다. 대학에서 일을 해 보니, 대학교수의 삶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비해 만만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는다. 분명 교수에게 개인적인 시간이 많이 주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시간은 대부분 강의 준비와 전공과목 연구로 채워진다. 특히 나는 철학과가 아니라 교양학부 소속 전임교원이기 때문에, 나의 전공인 과학사 및 과학철학과 약간 거리가 있는 과목 역시 강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학교 1학년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향후 대학 생활을 잘할 수 있는지에 관해 강의하고, 학생들이 PPT 자료와 UCC 콘텐츠를 어떻게 잘 제작할 수 있는지에 관해 강의한다.    이와 더불어 학교를 위해 ‘학생들의 AI 활용 윤리’에 관한 영상을 촬영하고, 인문대학..

일상 이야기 2024.11.06

자유롭고 즐겁게

사람들은 나에게 가끔 묻곤 했다. 네가 어떻게? 대체 왜? 사람들이 나에게 이렇게 질문을 하면 나도 덩달아 좀 의아스러웠다. 왜 그렇게 반응하지?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아무런 숨은 의도 없이 한 일인데? 지금도 기억난다. 초등학교 2학년이던 시절,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점심시간이 끝날 때쯤 몇몇 친구들이 운동장에 모여 교실로 들어가려던 나를 위협한 적이 있었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을까? 아직도 모르겠다. 그날 이후 나는 태권도에 다니기 시작했고, 태권도를 수련하는 나를 건드리는 친구들은 없었다. 오히려 그때 나를 위협했던 친구들 중의 한 명은 나에게 찾아와서 친구가 되자고 했고, 나는 그러자고 했다.    나는 자유롭고 즐겁게 어떤 행동을 한다. 그런데 그 행동은 타인들로부터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일상 이야기 2024.11.03

철학을 권함

돌이켜 보면 나의 삶은 늘 주관이 뚜렷한 삶이었다. 부산과학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나는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와 같은 철학적인 글을 읽으며 철학에 눈을 떴다. 수학자 하워드 이브스가 쓴 책인 [수학의 기초와 기본 개념]은 기본적으로 수리철학에 관한 책이었다. 국어 시간에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에게 러셀이 쓴 [철학의 문제들]을 읽고 요약하라고 하셨고, 이를 계기로 러셀의 책을 읽은 나는 철학에 관해 가졌던 관심을 심화시켰다. 그런데 한국의 제도에서는 철학을 하기 위해서는 이과(理科)가 아닌 문과(文科)로 옮겨야 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이 되자 수학과 과학(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의 기본적인 학습이 끝났다. 그때가 되니 과학고등학교가 아닌 다른 인문계 고등학교로 굳이 전학을 간다고 해..

조인래 교수님을 다시 생각함

현재 나는 과학철학 연구자로서 살아가고 있는데, 가끔 나는 지금의 나를 가능하게 만들어 주셨던 조인래 교수님을 생각한다. 조인래 교수님은 1953년에 태어나셨고 나의 아버지와 동갑이시다. 어디서 자라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산에 있는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다. 경상도 사투리를 약간 쓰시고, 나와 마찬가지로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조인래 교수님에 대해 더 친숙함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인래 교수님은 1971년 3월에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셔서 1975년 2월에 학부를 졸업하셨다. 19세에 대학에 입학하셨으니, 생일이 좀 빠르신 것인지도 모른다. 학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신 것으로 안다. 1975년 3월에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셨고, ..

일상 이야기 2024.10.27

얽매이지 않는 삶

나는 나 자신을 자유롭고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가족이고, 나의 정체성이다. 나의 아내와 세 아이는 내가 목숨을 걸고 이 세상에서 지켜야 하는 존재다. 나의 정체성은 과학철학 연구자로서, 나는 과학철학 연구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나는 과학철학 연구자라는 정체성을 근거로 사회적인 인정을 받으며 활동하고 있으며, 이런 사회적 활동이 사회 속에서 내 가족을 지킬 수 있게 해 준다. 본질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나에게는 내 가족과 내 정체성 이외에 버리지 못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 없다. 그것은 곧 그것 말고 다른 것들은 그냥 쉽게 웃어넘길 수 있다는 얘기다.    비록 정년 트랙 교수이긴 하지만 정년 보장을 받지는 않은 상황이므로, 나는 스스로 6년 계..

일상 이야기 2024.10.23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

그제와 어제는 아내가 대전 국립중앙과학관 출장이라, 부산에 계신 어머니께서 대구로 올라오셔서 아이들을 같이 봐주셨다. 어제 오전에는 큰딸 지윤이와 함께 평소 자주 가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제 어느덧 지윤이는 카페에서 시간을 잘 보낸다. 눈높이 국어, 한자, 수학, 윤선생 영어교실을 한 다음, 자기가 보고 싶은 영상을 보면서 3시간 넘는 시간을 아무렇지 않게 버틴다. 얘가 벌써 이렇게 크다니. 그새 나는 헐레벌떡 학술대회 발표 준비를 했다. 괜히 의욕만 앞서서 대동철학회 가을 학술대회에서 덜컥 발표하겠다고 신청했는데, 아직 발표문 작성이 덜 된 것이다. 에구 어떡하나. 이게 다 내가 자초한 일이다.    점심때 집에 와서 식사한 다음에, 아이들에게 동네 근처에 있는 롯데시네마에서 “와일드 로봇”이라..

일상 이야기 2024.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