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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나날들

나는 대학교로 임용되기 이전에 2개의 공공기관에서 일을 했다. 대학에서 일을 해 보니, 대학교수의 삶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비해 만만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는다. 분명 교수에게 개인적인 시간이 많이 주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시간은 대부분 강의 준비와 전공과목 연구로 채워진다. 특히 나는 철학과가 아니라 교양학부 소속 전임교원이기 때문에, 나의 전공인 과학사 및 과학철학과 약간 거리가 있는 과목 역시 강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학교 1학년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향후 대학 생활을 잘할 수 있는지에 관해 강의하고, 학생들이 PPT 자료와 UCC 콘텐츠를 어떻게 잘 제작할 수 있는지에 관해 강의한다.    이와 더불어 학교를 위해 ‘학생들의 AI 활용 윤리’에 관한 영상을 촬영하고, 인문대학..

일상 이야기 2024.11.06

자유롭고 즐겁게

사람들은 나에게 가끔 묻곤 했다. 네가 어떻게? 대체 왜? 사람들이 나에게 이렇게 질문을 하면 나도 덩달아 좀 의아스러웠다. 왜 그렇게 반응하지?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아무런 숨은 의도 없이 한 일인데? 지금도 기억난다. 초등학교 2학년이던 시절,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점심시간이 끝날 때쯤 몇몇 친구들이 운동장에 모여 교실로 들어가려던 나를 위협한 적이 있었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을까? 아직도 모르겠다. 그날 이후 나는 태권도에 다니기 시작했고, 태권도를 수련하는 나를 건드리는 친구들은 없었다. 오히려 그때 나를 위협했던 친구들 중의 한 명은 나에게 찾아와서 친구가 되자고 했고, 나는 그러자고 했다.    나는 자유롭고 즐겁게 어떤 행동을 한다. 그런데 그 행동은 타인들로부터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일상 이야기 2024.11.03

철학을 권함

돌이켜 보면 나의 삶은 늘 주관이 뚜렷한 삶이었다. 부산과학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나는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와 같은 철학적인 글을 읽으며 철학에 눈을 떴다. 수학자 하워드 이브스가 쓴 책인 [수학의 기초와 기본 개념]은 기본적으로 수리철학에 관한 책이었다. 국어 시간에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에게 러셀이 쓴 [철학의 문제들]을 읽고 요약하라고 하셨고, 이를 계기로 러셀의 책을 읽은 나는 철학에 관해 가졌던 관심을 심화시켰다. 그런데 한국의 제도에서는 철학을 하기 위해서는 이과(理科)가 아닌 문과(文科)로 옮겨야 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이 되자 수학과 과학(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의 기본적인 학습이 끝났다. 그때가 되니 과학고등학교가 아닌 다른 인문계 고등학교로 굳이 전학을 간다고 해..

조인래 교수님을 다시 생각함

현재 나는 과학철학 연구자로서 살아가고 있는데, 가끔 나는 지금의 나를 가능하게 만들어 주셨던 조인래 교수님을 생각한다. 조인래 교수님은 1953년에 태어나셨고 나의 아버지와 동갑이시다. 어디서 자라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산에 있는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다. 경상도 사투리를 약간 쓰시고, 나와 마찬가지로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조인래 교수님에 대해 더 친숙함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인래 교수님은 1971년 3월에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셔서 1975년 2월에 학부를 졸업하셨다. 19세에 대학에 입학하셨으니, 생일이 좀 빠르신 것인지도 모른다. 학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신 것으로 안다. 1975년 3월에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셨고, ..

일상 이야기 2024.10.27

얽매이지 않는 삶

나는 나 자신을 자유롭고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가족이고, 나의 정체성이다. 나의 아내와 세 아이는 내가 목숨을 걸고 이 세상에서 지켜야 하는 존재다. 나의 정체성은 과학철학 연구자로서, 나는 과학철학 연구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나는 과학철학 연구자라는 정체성을 근거로 사회적인 인정을 받으며 활동하고 있으며, 이런 사회적 활동이 사회 속에서 내 가족을 지킬 수 있게 해 준다. 본질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나에게는 내 가족과 내 정체성 이외에 버리지 못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 없다. 그것은 곧 그것 말고 다른 것들은 그냥 쉽게 웃어넘길 수 있다는 얘기다.    비록 정년 트랙 교수이긴 하지만 정년 보장을 받지는 않은 상황이므로, 나는 스스로 6년 계..

일상 이야기 2024.10.23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

그제와 어제는 아내가 대전 국립중앙과학관 출장이라, 부산에 계신 어머니께서 대구로 올라오셔서 아이들을 같이 봐주셨다. 어제 오전에는 큰딸 지윤이와 함께 평소 자주 가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제 어느덧 지윤이는 카페에서 시간을 잘 보낸다. 눈높이 국어, 한자, 수학, 윤선생 영어교실을 한 다음, 자기가 보고 싶은 영상을 보면서 3시간 넘는 시간을 아무렇지 않게 버틴다. 얘가 벌써 이렇게 크다니. 그새 나는 헐레벌떡 학술대회 발표 준비를 했다. 괜히 의욕만 앞서서 대동철학회 가을 학술대회에서 덜컥 발표하겠다고 신청했는데, 아직 발표문 작성이 덜 된 것이다. 에구 어떡하나. 이게 다 내가 자초한 일이다.    점심때 집에 와서 식사한 다음에, 아이들에게 동네 근처에 있는 롯데시네마에서 “와일드 로봇”이라..

일상 이야기 2024.10.20

차분한 가을

나는 가을을 좋아한다. 덥지도, 춥지도 않고, 자연 풍경을 보며 약간의 쓸쓸함을 느낄 수도 있다. 차분하고 애틋한 음악을 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계절이다. 오늘 문득 학교에 출근하면서 가을은 참 좋은 계절이라 생각했다. 출근하는 길에 싱어송라이터 최유리, 백예린의 잔잔한 음악을 들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 자신을 고독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가족 이외에는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어쩌면 사람들과 친하게 지낼 필요성을 심각하게 느끼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가끔 친구들에게서 연락이 오고, 나는 아주 반가운 마음으로 이에 응한다. 큰딸의 친구가 주말에 우리 집에 놀러 오기도 하고, 둘째와 셋째의 어린이집 친구와 그 부모님이 주말에 우리 집에 놀러 오기도 한다...

일상 이야기 2024.10.17

관용적 태도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는 늘 있다. 내 생각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같을 필요는 없으므로, 생각의 차이가 있을 때 그 차이가 무엇인지, 왜 그러한 차이가 생겼는지를 서로 소통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소통이 늘 의견의 일치로 유도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의견이 서로 달라, 한 시간 동안 대화를 한 뒤에도 여전히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러면 그 대화는 가치가 없는 것이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서로의 관점 차이를 다시금 자세히 확인했다는 데 의의가 있을 것이다.    내가 몇몇 논리경험주의 과학철학자에게 깊은 인상을 받는 것은 그 관용적 태도 때문이다. 실제로 카르납은 ‘관용의 원리(principle of tolerance)’를 철학의 주요 원리로서 공식화한 바도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화를 ..

일상 이야기 2024.10.13

평범함과 행운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넌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왔냐. 갑툭튀. 나는 나를 갑툭튀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더 멋지게 나 자신을 포장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에 호기심이 많았고, 모범생으로서 공부를 잘했으며, 진지했고, 이러쿵저러쿵.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대신 나는 나 자신을 우연, 아이러니, 역설의 복합체로서 본다.    다만 나는 유약한 사람만은 되고 싶지 않다. 이 세상에 태어나 여러 산전수전을 겪으며 살아남은 강인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어떤 사람에게 덧붙어 있는 여러 이름은 유의미하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허상이라고 본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살아 있느냐, 얼마나 건강하게 살아 있느냐이다. 어쩌면 인간 사회 속에서 언어를 사용하며 체계적인 노동 분업의 ..

일상 이야기 2024.10.09

왜 철학은 계속 철학이 무엇인지를 물을까

과학사가이자 과학철학자인 토머스 쿤은 과학의 특징을 ‘정상과학’이라 했다. ‘정상과학’이 되면 표준적인 모형, 문제 풀이 방식이 안정적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철학적인 논쟁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 생각에 과학의 이와 같은 ‘안정적인’ 측면은 과학 하는 인간 정신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마치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자아와 초자아가 정신 구조 전체에서 아주 작은 일부를 차지할 뿐인 것처럼 말이다. 표면적으로는 억제되어 있지만 무의식에서는 늘 철학적 경이로움과 질문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이미 쿤은 과학의 ‘진화로서의 진보’를 말할 때 철학의 강인한 생명력을 감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패러다임의 가장 강력한 적은 패러다임 자신’이라는 쿤의 주장도 아주 깊은 통찰을 주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