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787

상상력과 변화

2025년 4월 4일 11시 22분에 헌법재판소 판결 선고에 따라 윤석열은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다. 사실 검찰 출신이었던 윤석열이 보수 정당의 대권 후보가 될 때부터 나로서는 좀 이상하고 황당했다. 대체 저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대통령을 할 수 있는가? 법조인 출신 정치인이라면 실제로 많이 있으니 이해하겠지만, 정치 경력이 너무나 짧고 실질적으로 오직 검사로서의 경력만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 저런 사람이 어떻게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도 내에서 대통령이 될 수 있나?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로 손꼽히는 것이 정치인데, 그런 정치 중에서 가장 정점에 있는 대통령직을 정치 초보가 수행한다? 이상하다. 그런데 실제로 대한민국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억지 결정을 했다.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것이다.    윤석..

일상 이야기 2025.04.06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

오래전 나는 과학철학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말렸다. 그게 뭐야? 왜 해? 하지 마. 어쩌면 그때 나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들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하고 싶다는 나의 마음이 하지 말라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보다 더 강했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나는 과학철학을 하면 안 되는 건가? 이걸 하면 죄를 짓는 건가? 그런데 그건 아니었다. 결국 나는 내가 과학철학을 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냥 하기로 했다.    과학철학을 하면서는 내적인 회의감이 자주 들었다. 특히 과학철학을 하기에는 내가 너무 멍청하다는 생각을 수시로 했다. 과연 내가 계속 과학철학을 해도 되는 걸까? 철학도, 수학도, 물리학도 잘 못하는 내가? 그래서 나는 물었다. 과학철학을 잘 못하는 내가 과학철학을 ..

일상 이야기 2025.04.02

운명의 한 주

나는 현재 한국이 정치적인 대립을 넘어선 일종의 내전 상황에 돌입했다고 판단한다. 그 가장 뚜렷한 징후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 선고 지연이다. 정상적으로 사법 시스템이 작동되었다면 인용이든 기각이든 벌써 판결 선고해야 했다. 이는 명백한 이상 징후이며, 헌법재판소 내에서 격렬한 정치적 대립과 긴장이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다음으로 살펴볼 수 있는 징후는 철면피를 한 여당의 뻔뻔한 거짓 공격이다. 이때 여당 스스로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명백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참과 거짓, 정의와 불의를 가장 근본적인 기준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힘의 싸움 속에서 지지 않으려는 의지만을 발현하고 있다. 이제 진실 혹은 정의를 판가름하는 여당과 야당의 공통 기준은 사라졌..

일상 이야기 2025.03.30

상식이 파괴되는 고통

요즘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이 느끼고 있는 감정은 아마도 ‘상식이 파괴되는 고통’이 아닐까 한다. 사실 ‘상식’이 파괴 불가능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상식’ 역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식’은 우리나라가 만든 교육기관에서 시작하여 사람들의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구성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상식’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러한 괴리를 ‘교육’에서 처음으로 목격했다. ‘교육’이란 상식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국민 모두에게 고른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오히려 ‘교육’에서 우리나라의 온갖 부조리한 불평등을 고스란히 찾아볼 수 있다.    12월 3일,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 비상계엄의 포고령에는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 ..

일상 이야기 2025.03.26

Perfect Days

내겐 두 종류의 일상이 있다. 학교에 수업이 없는 날, 아침에 일어나 둘째와 셋째를 씻겨 옷을 입혀 어린이집에 데려다준다. 이제 첫째는 스스로 학교에 잘 다닌다. 그런 다음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수업 준비를 비롯한 내 공식적인 일들을 하나씩 처리한다. 그러다 보면 금방 점심시간이다. 간단한 점심 식사가 끝난 다음에는 집안일의 시간이 온다. 밀린 빨래를 집안 곳곳에서 찾아 세탁기를 돌리고, 집안 전체를 정리한 다음 진공청소기로 청소한다. 대걸레로 집안 곳곳을 닦고, 설거지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비롯한 쓰레기를 버린다. 그러면 어느새 학교를 마친 첫째가 집에 돌아오고, 나는 다시 어린이집에 가서 둘째와 셋째를 하원시켜 집으로 돌아온다. 다시 첫째는 학원에 가고, 둘째와 셋째는 간식을 먹으며 장난감을 갖고..

일상 이야기 2025.03.23

마음 편히 진보

요즘 나는 이제야 비로소 나의 자리를 찾았다는 느낌을 자주 갖는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삶의 특정한 몇몇 부분에서 매우 민감하고 불편했는데, 그 민감함과 불편함 정도는 이제는 훨씬 덜하게 되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는 대체 왜 그렇게 민감하고 불편하게 느꼈냐? 이렇게 내게 물을 수 있겠지만, 사실 그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나는 학생 시절부터 책 읽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다. 글 쓰는 일도 좋아했다. 그러나 나의 이런 성향으로 인해 내가 어떤 종류의 특권 혹은 권위를 갖게 되기는 싫었다. 나는 아주 명석하지는 않았으나 공부를 좋아했기에 그것을 곧잘 했는데, 막상 수학능력시험을 치르고 나니 서울대학교에 입학할 성적이 되었다. 입학할 성적이 되는데도 나 스스로 입학하지 않을..

일상 이야기 2025.03.19

기본에 충실하기

대학교수가 된 지금도 나는 나 스스로 매우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계속 공부하려 애쓴다. 과학사와 과학철학 전공자이기에 해야 할 공부는 더욱 많다. 과학철학 연구자는 철학뿐만 아니라 과학도 계속 공부해야 한다. 게다가, 과학의 역사적 전개 과정에 대해서도 늘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과학사 및 과학철학’이라는 전공의 이름이 가지는 무게가 이토록 무겁다. 만약 ‘과학학’ 전공이라면 그 안에서 세부 전공을 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사실 일반적인 관점에서 ‘과학학(Science Studies)’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과학사 및 과학철학’과 비교할 때 과연 ‘과학학’이 무엇을 탐구하는 학문인지 잘 파악되지 않을 수 있다.    어제는 한참동안 우리 학교에서 개설된 수업들의 강의계획서를 찾아보았다. 내..

일상 이야기 2025.03.16

가족, 연구, 교육

요즘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관련하여 시국이 혼란하지만, 나는 탄핵 인용이 기정 사실이라 본다.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 법원의 이 결정에 대한 검찰의 즉시 및 일반 항고 포기가 얼마나 비상식적이고 비관례적이며 불법적인 것이었는지는 만천하에 다 드러나고 있다. 탄핵 인용은 이번 주 금요일 혹은 다음 주 월요일에 이루어질 것이고, 이 일과 관련하여 주말에 전국적으로 소모되어야 하는 에너지를 생각하면, 금요일까지 탄핵 인용 선고가 이루어지는 게 여러모로 바람직할 것이다. 결코 한 줌의 기득권 엘리트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나에게는 가족이 제일 중요하다. 나보다 내 가족이 더 중요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이미 이 세상에서 충분히 살았기 때문이다. 비록 앞으로도 내 삶이 제법 많이 남았겠지만, 나..

일상 이야기 2025.03.12

혼란한 시국에서 미래를 예측함

어제(2025. 3. 8.)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이 취소되어 윤대통령은 구치소에서 석방되었다. 아마도 3월 14일 전까지 헌법재판소에서는 그의 탄핵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2024년 12월 3일 윤대통령이 시행했다 실패한 비상계엄은 우리나라의 헌법 및 법률을 위반한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확률이 1인 경우는 없으며, 탄핵 기각의 가능성이 0인 것은 아니나,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대부분 탄핵 인용을 예상할 것이다. 탄핵이 기각되면 우리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 것이며, 보수적 집단조차 그러한 혼란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위헌 위법적 비상계엄은 헌법 위반의 차원을 넘어 그 자체가 심각한 범죄다. 따라서 탄핵 후 윤대통령은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정치는 법 집행 절차와..

일상 이야기 2025.03.09

2025년의 연구 주제

나는 기준을 높게 잡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말해, 나보다 훨씬 더 잘하는 사람들을 비교 대상으로 삼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세상은 전쟁터이고, 인생은 끊임없는 싸움의 연속이다. 일시적인 평화와 잠정적인 동료는 일련의 싸움이 이루어지는 하나의 양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싸워서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만났을 경우, 고집을 피우며 끝까지 저항하다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상처를 입어서는 안 된다. 화해하려고 시도하거나, 그게 안 되면 도망을 쳐서 살길을 찾고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    나는 기준을 높게 잡지 않기 때문에 나의 능력으로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연구도 그러하다. 내가 세계적인 수준의 뛰어난 철학자가 아닌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철학 연구에는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건 당연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