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7일인 어제 저녁, 대통령 배우자 특검법에 대한 국회의 재의결이 부결되었다는 결과가 발표되었다. 그때 나는 속은 퍽 상했지만 그래도 이것은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이루어진 부결이기 때문에 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이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벌어진 사태는 나의 시민으로서의 자존감을 심각하게 훼손했으며 나에게 잊을 수 없는 배신감을 안겨 주었다. 여당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을 집단으로 퇴장하며 대통령 탄핵안에 대한 투표 자체를 거부했다. 그들은 왜 투표를 거부했을까? 대통령 배우자 특검법처럼 대통령 탄핵안도 투표를 해서 부결시키면 되는 일 아닌가?
나는 그들의 그런 집단적 행위가 대통령의 위헌적인 비상계엄 선포와 비슷한 종류의 위헌적인 행위라고 생각한다. 물론 당 차원에서 의원들이 모여 당의 중론을 형성할 수 있고 이를 공식적으로 발표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인 투표를 집단으로 거부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마저도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위반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나는 의견의 다양성을 충분히 존중한다. 이번 사안에 관해서 대통령이 굳이 탄핵까지 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최소한 그런 자신들의 견해를 투표로 드러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렇게 오랫동안 의원총회를 통해 당론을 정했다면, 그 당론을 투표로 표현하면 되지 않는가?
만약 어제 여당 의원들이 전원 투표에 참여하여 대통령 탄핵안이 부결되었다면, 시민들은 그 결과에 분노하면서도 최소한 절차적인 정의는 지켜졌기에 모멸감까지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제 시민들이 느꼈던 감정은 분노를 넘어선 모멸감이었다. 시민의 대리인이라는 국회의원들이, 오직 자신들의 안위만을 생각한 정치적 계산을 통해 집단으로 합법적인 투표를 거부했다. 나는 여당 의원들의 이런 행태 자체가 시민들의 마음속에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주었다고 본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공적 토론이 통하지 않는, 오직 자신들의 보존과 영달만을 추구하는 동물적인 무리가 보이는 행태와 다르지 않았다. 한 사회의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는 사람들을 시민이라 부른다면, 그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지 않고 불법으로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빼앗는 사람들은 도둑이라 불러야 한다. 어젯밤 여당 의원들은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이 아니라 민의를 배신하는 도둑의 행태를 보였다.
어제의 사태를 경험하며 자연스럽게 나는 114년 전 이 나라를 일본제국에 빼앗겼을 때 시민들이 느꼈을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대다수 시민이 전혀 일본제국에 나라를 넘겨줄 생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자신들의 안위만 생각했던 한 줌 소수의 통치자가 시민들의 바람을 배신하고 나라를 팔아넘겼을 때, 그때 시민들은 어떤 감정을 느꼈겠는가. 그 감정은 분노를 넘어선 모멸감과 절망이었을 것이다. 만약 민주주의 사회의 규칙을 바탕으로 정당하게 의견과 의견이 서로 부딪치고 토론과 논쟁의 단계로 넘어갔다면, 여당 의원들이 투표에 참여하고 그 결과와 관련된 적극적이고 격렬한 논의가 의원들 사이에서 이루어졌다면, 나를 포함한 시민들이 이토록 모멸감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오직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사회의 기본적인 정의와 원칙을 내팽개치고 파렴치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동료 시민들이 전부 다 보고 있다. 더 이상 숨을 곳은 없다. 의견의 다양성이 존중되는 공적인 광장에서 떳떳하게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토론하고 논쟁하라. 비겁하고 부당하게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원칙을 어기는 행태를 더 이상 보이지 마라. 투표를 통해 당당하게 탄핵안에 반대하고, 왜 탄핵안에 반대하는지를 분명하게 말하라. 그렇게 시민들과 이성적으로 대화하라. 시민들을 대화 상대로 여기지 않고 오직 수단으로 대하는 행태를 당장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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