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361

무엇이 확실한가?

매일 오후 어린이집에 가서 아이들을 데려오는 나는 때때로 어린이집에서 나오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난데없는 놀라움을 느끼곤 한다. 저기 나와 아내에게서 태어나서 부쩍 자란 아이들이 보인다. 과연 내가 무슨 일을 한 것일까? 이 험한 세상에서 아이들이 살아가게 만든 것은 어쩌면 너무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행동 아니었을까? 나는 오후에 아이들을 보면 오전에 봤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반가워 꼭 끌어안는다. 아빠는 늘 너희 삶의 조연이란다. 너희가 숨 쉬고 빛나는 눈으로 이 세상을 보는 것이 나에게는 희망이고 기적이란다. 가족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함께 보내는 저녁 시간의 행복은 나에게는 너무나 확실하게 여겨져서, 대체 확실한 것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다시 스스로 묻게 된다. ‘1+1=2’가 확실한가? ‘지..

일상 이야기 2022.12.13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요즘 나는 바쁘면서도 한가롭다. 바쁜 이유는 계속 학위논문 원고를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도서관에 논문을 최종적으로 제출하기 전까지는 매일 보고 다듬고 다듬어야 할 것 같다. 한번 제출하면 길이 남는 나의 논문이기에 애정을 갖고 계속 수정하고 있다. 높은 수준의 정말 훌륭한 논문을 쓴다는 생각보다는, 지금껏 내가 연구한 내용의 핵심을 담아낸다는 생각으로 논문을 쓴다. 내 논문에는 지난 20년 동안의 연구 결과가 담겨 있고, 만약 어떤 사람이 내 논문을 일주일 만에 읽는다면 그만큼 확실하게 시간을 절약하는 셈이 된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내 논문은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다른 사람이 내가 했던 시행착오들을 겪지 않아도 되게 해주기 때문이다. 바쁘면서도 한가로운 이유는 최근 다른 사람이..

일상 이야기 2022.12.07

예측 가능한 사람

나는 내가 아주 높은 정도로 예측 가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어떤 사람이 예측 가능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훌륭한 실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예측 가능하면 그 사람에 대한 신뢰도는 커진다.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일들 중 뛰어남이나 탁월함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 없지는 않지만, 많은 경우 평균 이상의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 할 수 있는 일들이며 그저 필요한 것은 수고와 노력일 뿐이다. 나는 어떤 사람에게 주어진 일을 매일 규칙적으로 착실하게 해 나가는 것에 아주 큰 가치를 둔다. 심지어 그런 착실함과 성실함이 탁월함보다도 더 중요한 가치라고까지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가치 판단의 문제라 옳지도 그르지도 않다. 나의 관심은 기본적으로 철학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일상 이야기 2022.12.02

연구의 재미

오늘은 하루 내내 학술지에 투고했던 논문을 수정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오전에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난 후 하원 전까지 계속 수정했고, 아내가 퇴근한 뒤 시간을 내서 계속 수정했다. 방금 막 수정한 원고를 다시 투고하고 나니 기분이 후련하다. 그러면서도 상당한 재미가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올해 2권의 번역서를 출간했고 2편의 학술논문을 게재했다. 방금 막 1편의 학술논문을 수정했고 또 한 편의 학술논문이 심사를 기다리고 있으니, 운이 좋으면 올해 4편의 학술논문이 게재될 수 있는 셈이다. 다른 연구자 선생님의 학술논문 심사도 3번 정도 했다. 나는 이렇게 나 스스로 과학철학 연구자로서 훈련하고 있다. 나한테 딱 맞고 재미가 있다. 아직 영문 학술논문의 벽을 넘지는 못했고 이것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우리말로..

일상 이야기 2022.11.25

누가 뭐라고 해도 매일 꾸준히

나는 과거지향적이지도, 미래지향적이지도 않고, 그저 현재에 집중하면서 살아간다. 나는 무엇인가를 하고 싶으면 별로 고민하지 않고 그냥 하려고 시도한다. 그렇기에 내가 신중하고 사려 깊은 사람인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나는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편이지만, 내가 하는 대부분의 일들에 대해서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 오늘 학생들이 수학능력시험을 치른다고 한다. 나는 22년 전에 시험을 치렀다. 그때 나는 그냥 일하듯 하루하루 열심히 공부했고, 가끔 모의고사 성적이 나오면 성적에 맞춰서 내가 입학할 수 있는 대학과 학과를 확인했다. 나는 철학과에 가고 싶었으므로 모의고사를 보면서 나 정도 실력이면 고려대학교 철학과 정도를 갈 수 있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이후 모의고사 성적이 계속 오르면서 목표 대학의 수준이 올라..

일상 이야기 2022.11.17

연구하는 아빠

나는 강의를 즐긴다. 올해 가을부터 진행하고 있는 경상국립대학교에서의 과학철학 강의는 재미있다. 특히 나는 [비판적 사고] 수업을 즐긴다. 정언 논리, 명제 논리가 재미있고, 논리적인 문제를 푸는 것이 재미있다. (물론 잘하는 것은 아님) 이와 더불어 나는 수학 문제나 물리학 문제를 푸는 것에서도 재미를 느낀다. 만약 내가 과학철학이나 과학사 강의가 아니라 다른 강의를 할 수 있다면 내가 정말 해보고 싶은 강의는 일반 물리학이나 일반 수학 강의다. 물리학사, 수학사 강의도 해보고 싶다. 구체적으로 말해 이런 강의를 준비하면서 쏠쏠하게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이건 그냥 내 개인의 적성 문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적성은 연구인 것 같다. 구체적으로는 과학철학 연구다. 그래서 나는 내가 대학원에 ..

일상 이야기 2022.11.08

박사학위 논문 예비 심사를 치르다

어제 저녁 박사학위 논문 예비 심사를 치렀다. 만약 최종 심사를 하게 되면 그 시점은 12월 말이 될 것 같다. 그러나 최종 심사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열심히 수정해야 한다. 그저께 저녁부터 긴장이 되어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어제 아침에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난 후, 심사 초반부에 해야 하는 발표 연습을 심사 직전까지 했다. 심사에 들어가기 한 시간 전에는 진통제까지 먹었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까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심사가 시작되니 힘이 났고 자신감도 생겼다. 말도 당당하게 잘했다. 하지만 여전히 논문 원고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왜냐하면 글은 써도 써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도서관에 논문을 제출할 때까지는 계속 고치고 고쳐야 한다. 그렇게 계속 고치..

일상 이야기 2022.10.29

현상론적 태도

해석과 의미 부여 활동에 지칠 때면 나는 나의 태도를 현상론적인 것으로 바꾼다. 나를 일종의 기계로 간주하여, 나의 감각 기관에 주어지는 다채로운 현상들에 집중하고 의식적으로 이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을 억제하는 것이다. 이렇게 현상론적인 태도를 취하면 나 자신의 존재가 좀 더 경이롭게 느껴진다. 목 위에 두뇌를 달고 있는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상들을 파악하고, 분류하고, 정리하고, 무시하고, 계속 하나의 생각에서 다른 생각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현상론적인 태도를 취하면 나는 나라는 경이롭고 기괴한 하나의 자연을 만난다. 사람이 파충류의 감정 없는 눈과 복잡한 문양의 피부 표면을 보며 이질감을 느끼듯, 내가 나 속에서 만나는 자연은 내가 생각하던 나와는 이질적이며 내게 두려움을 준다. 그..

일상 이야기 2022.10.20

10월의 시작

어제는 처남의 결혼식(2022. 10. 1.)이라 가족들을 데리고 인천에 다녀왔다. 그래서 오늘은 다소 피곤하지만, 그래도 나는 10월 5일까지 지도교수님께 논문 수정본을 다시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만약 논문을 심사하게 되면 10월 말쯤 심사를 진행하게 될 것 같다. 논문 상태가 불량하면 심사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특히 유의해야 한다. 나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는 ‘논리경험주의 시공간 철학의 역사적 재조명’이다. 논리경험주의의 대표적인 철학자 한스 라이헨바흐의 [시간과 공간의 철학]이 1928년에 출판되었다. 그러니까 대략 100년 만에 그의 철학을 재조명하는 셈이다. 내가 알기로 국내에서는 이 주제로 논문을 써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없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논리경험주의 철학자 한스 라이헨바..

일상 이야기 2022.10.02

그렇게 연구자가 된다

박사학위를 갖고 계시는 분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항일 것이라 짐작한다. 실로 진정한 연구자는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그 사람이 훌륭한 연구자인지 그저 그런 연구자인지는 사실 별로 상관이 없다. 애호가를 넘어서서 연구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연구 주제에 대한 자신만의 독자적인 입장을 수립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독자적인 입장을 수립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우며 두려운 일이다. 뛰어난 연구자들이 이미 내어놓은 업적들 가운데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입장을 갖추어 내세운다는 것은 절대로 쉽지 않다. 자신만의 입장은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우선 내 생각을 일정한 분량을 갖춘 글로 써야 한다. 그다음 그 글을 통해 표현된 내 생각을 검토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

일상 이야기 2022.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