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403

저 들풀처럼 하루하루 산다는 것

내가 유일하게 보는 드라마는 KBS 주말드라마인데, 최근 방영 중인 드라마는 “진짜가 나타났다”이다. 어제 저녁 가족들과 함께 드라마를 보다가 감명 깊은 대사가 나왔다. 극 중 여주인공은 헤어진 전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임신했지만, 아이를 지우지 않고 낳기를 결심했다. 그녀는 때마침 하기 싫은 결혼을 피하고 싶던 남주인공을 만나 그와 위장으로 결혼한 후(당연히 혼인 신고는 안 한다)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데, 결국 여주인공은 자신의 태중에 있는 아이가 남주인공의 아이가 아님을 남주인공의 가족들에게 밝힌다. 여주인공의 어머니는 남주인공의 집까지 찾아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사과한 후, 여주인공을 데리고 집으로 와 작은 화단에 심은 꽃들을 보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연두야, 괜찮다. 저 꽃들이 ..

일상 이야기 2023.07.16

명상 음악을 들으며

나는 2023년 7월 1일부로 1년 6개월간의 육아휴직을 끝내고 직장으로 복귀했다. 아내 또한 직장 생활을 하는 중이기에(우리는 같은 직장의 다른 부서에서 근무한다), 나는 정시 출근하며 쌍둥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킨 후 정시에 퇴근하고, 아내는 첫째의 등교 시간에 맞춰 정시보다 30분 일찍 출근한 뒤 정시보다 30분 일찍 퇴근하면서 어린이집에서 쌍둥이들을 하원시킨다. 나와 아내 모두 퇴근하면 집에 와서 본격적인 집안일 시작이다. 다행히 부모님, 장모님께서 수시로 집안일과 육아를 도와주셔서 겨우 버틸 수 있다. 우리 가족에게는 다른 그 무엇보다도 ‘무사히 살아내는 것’이 중요한 시기다. 지난 1주일 동안 긴장하며 바쁘게 지냈다. 특히 새로운 부서에 발령되어(교육연구실)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느라 바빴다. 그..

일상 이야기 2023.07.08

등산의 교훈

어제는 오래간만에 금정산 등산을 했다. 내가 자주 다니던 코스, 즉 부산 명륜동에서 출발해서 금강공원 입구를 거쳐 케이블카 종착지까지 간 후, 휴정암을 거쳐 동문과 북문을 지나치며 범어사까지 가는 코스를 밟았다. 이번에는 대략 6시간 정도 걸렸는데, 왜냐하면 중간에 길을 잘못 들었기 때문이다. 휴정암에 도착한 이후 동문으로 가는 길에서 길을 잃어 부산대학교 위쪽에 있는 보광암과 호국사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길에서 많이 긴장하면서도, 대략적인 방향을 염두에 두고 산행하며 계속 걷다 보면 길이 나올 것이라 믿었다. 휴대전화의 지도 앱은 사용하지 않았다. 결국 친숙한 길을 다시 찾게 되자 마음이 아주 편해졌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을 걷는 것은 아주 편한 일이다. 그러나..

일상 이야기 2023.07.02

후생가외(後生可畏)도 파이팅 있게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 중에 ‘연하남’이 있다. 실제로 ‘연하남’의 유튜브 영상들은 작년에 내가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 큰 도움이 되었고,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에도 나는 그의 영상들을 수시로 보고 들으면서 큰 자극을 받는다. ‘연하남’은 사회과학 중의 한 분야를 전공하고 있는 듯 보인다. 내가 인문학을 폄훼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사회과학 연구자들은 이른바 ‘파이팅’이 인문학 연구자들보다 전반적으로 좀 더 강하지 않나 싶다. SCI급 논문들을 팀을 이루어 협업해서 쓴다든지, 정성적인 분석보다는 정량적인 분석을 기본으로 하는 모습을 봐도 그러하다. 또한 ‘연하남’은 포기하지 않고 근성 있게 도전하고 늘 자신의 부족함을 메우려고 성실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참으로 배울 만하다. 내 추측에 ..

일상 이야기 2023.06.24

성실은 성공이 아닌 생존의 조건

지금까지 41년 가까운 세월을 살면서 비교적 분명하게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나는 천성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이다. 내가 머리가 좋은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내가 머리가 나쁘지 않다는 것은 비교적 분명해 보이지만, 다른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머리가 좋은지는 전혀 확실하지 않다. 돌아보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이룬 것은 대부분 뛰어난 지성보다는 부지런함과 성실함을 요구하는 일들이었지, 특출난 지적 능력을 요구하지는 않는 일들이었다. 어쩌면 성실함은 내게 일종의 ‘생존 전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학사와 과학철학에 대한 나의 과도한 애정은 제3자의 객관적 관점에서 보면 나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은 일종의 ‘일탈’이었다. 내게 물리학에 대한 일종의 ‘환상’이 없었다면 나는 과학고등학교로 진학하지 ..

일상 이야기 2023.06.20

겸손함, 기본에 충실하기,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사실 과학철학 연구자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도 않고 대단하지도 않다.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과학사 혹은 과학철학을 강의하고,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몇몇 주제들에 대해 연구하여 논문을 쓰고 투고하는 것이 연구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렇듯 내게는 좁은 전공 분야를 넘어서서 다른 사회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 나는 우리 사회의 숱하게 많은 구성원 중 하나일 뿐이며, 내가 할 수 있는 소소한 일들을 하는 것일 뿐이다. 연구자라고 해서 무엇인가 대단하고 거창한 것은 별로 없다. 물론 어떤 영역에서든 군계일학의 실력을 발휘하는 사람은 있다. 피겨 스케이팅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김연아는 아니며 축구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모두 손흥민은 아닌 것처럼, 과학철학 연구를..

일상 이야기 2023.06.16

기본으로 돌아가기

최근 제법 바쁘게 지냈다. 특히 강의 준비와 학술대회 발표 준비 때문에 바빴다. 그런데 나는 바쁘게 지내는 와중에서도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생각한다. ‘기본’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기본’은 과학사, 과학철학이다. 과학기술정책을 포함할 수는 있겠지만, 아직 내게는 약간의 심리적 거리감이 있다. 그러나 내게 과학기술정책은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과목이다. 좋은 입문서가 이미 집에 여러 권 있으므로 그저 나의 게으름 때문에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다. 나는 전체를 조망하게 할 수 있는 과학사와 과학철학 관련 책들을 주기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과학사, 과학철학 전공자의 ‘기본기’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와 더불어 나는 수학과 물리학, 수학사와 물리학사도..

일상 이야기 2023.06.13

도전의 즐거움

나는 너무도 부족한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나의 부족함을 느낄 때 고통스럽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고통을 느끼지 않고 싶다면, 아무런 도전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있으면 된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는 않다. 나는 계속 도전한다. 실패하고 깨져도 계속 도전한다. 왜냐하면 나는 실패하더라도 지금의 부족한 나로부터 조금 더 나아지고 싶기 때문이다. 고통이 없으면 변화도 없다. 너무나 상투적이기는 하지만 나는 꼭 이 말을 하고 싶다. 구체적으로 말해 과학철학 연구자로서 나에게는 너무나 부족함이 많다. 아직 강의도 미숙하고 논문도 더 잘 써야만 한다. 영어도 더 연습해야 한다. 나는 영어 글쓰기와 영어 말하기 모두 더 연습해야 한다. 영어를 듣기만 하거나 읽기만 해서는 안 된다. 영어를 직접 말하고 써야 ..

일상 이야기 2023.06.08

차동우 교수님을 존경함

나는 지금껏 여러 번 인하대학교 물리학과의 차동우 교수님(명예교수)에 대한 나의 존경심을 표현해 왔다. 나는 이러한 존경심을 다시 한번 표현할 필요성을 느낀다. 나는 과학사 및 과학철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로서 이러한 존경심을 표현함을 밝힌다. 나는 물리학자가 아니므로 물리학 연구자로서 이와 같은 존경심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 차동우 교수님을 책을 통해 알았다. 교수님은 [물리 이야기](로이드 모츠)와 [새로운 물리를 찾아서](바바라 러벳 클라인)라는 물리학 역사책을 번역하셨고, 학생이던 나는 이 책들을 흥미롭게 읽었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에는 교수님께서 물리학 강의록들을 책으로 출판하셨음을 알았다. 대학원에 다닐 때는 교수님께서는 물리 철학자로 유명한 데이비드 알버트의 ..

일상 이야기 2023.05.30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삶

내가 과학철학에서의 ‘발견의 맥락’과 ‘정당화의 맥락’ 구분을 배운 것이 대학 시절이니 벌써 2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이 맥락 구분의 근거가 되는 책이 라이헨바흐의 [경험과 예측]인데, 나는 어제 이 책의 초벌 번역을 끝냈다. 번역을 끝낸 후 나는 분명 ‘발견의 맥락’과 ‘정당화의 맥락’ 구분이 이 책에서 나오긴 하지만(아주 초반부에) 그것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좀 더 포괄적인 맥락에서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중요성을 오늘날의 과학철학계에서 얼마나 높이 평가할까? 라이헨바흐에 대한 논의는 우리나라 과학철학계에서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게 현실이다. 내가 열심히 라이헨바흐를 연구하고 그 성과를 발표한다고 해서 이러한..

일상 이야기 2023.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