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361

책은 살아 있다

나는 책을 노트북이나 핸드폰으로는 거의 읽지 않는다. 노트북이나 핸드폰 속 전자 파일로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종이로 된 견고한 책을 들고 다니며 읽는 것을 선호한다. 나는 책장을 폈을 때 내 손끝에 느껴지는 종이의 질감을 좋아하고, 종이 위에 연필이나 샤프 펜슬로 줄을 그을 때 들리는 사삭거리는 소리를 좋아한다. 내게 종이로 만든 책은 여전히 가장 선호하는 형태의 정보 매체이다. 나라는 소비자는 아직 실물 형태의 책을 선호하고 있는 셈이다. 오늘날은 영상이 유행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책을 읽어 감동하는 사람보다 영상을 보며 감동하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책이 줄 수 있는 감동의 고유함이 살아 있다고 믿는다. 책이라는 매체의 본질은 그것이 일정량..

일상 이야기 2022.06.20

과학철학 연구자의 삶 살기

나는 지금까지 총 6권의 과학 관련 책을 번역했는데, 그중 4권이 과학철학자 한스 라이헨바흐(Hans Reichenbach, 1891-1953)가 쓴 책이다. [양자역학의 철학적 기초](2014년), [상대성 이론과 선험적 지식](2015년), [원자와 우주](2017년), [상대성 이론의 공리화](2020년). 라이헨바흐가 쓴 [시간과 공간의 철학], [자연과학과 철학], [코페르니쿠스에서 아인슈타인까지]는 이미 다른 역자 선생님에 의해서 번역이 되어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번역이 될 필요가 있는 라이헨바흐의 책으로는 [경험과 예측], [시간의 방향], [기호논리학], [확률론] 등이 있다. 라이헨바흐의 모든 저서들을 “한스 라이헨바흐 선집”이라는 제목을 달아 한글로 번역하여 출판하면 좋을 것 같다. ..

일상 이야기 2022.06.13

성실한 독자이자 작가

내가 나를 어떤 종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는 퍽 중요하다. 나는 나를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철학자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나만의 독창적이고 화려한 사상을 펼치는 사람은 아니다. 그 점에서 나는 오히려 내가 역사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에는 잘 찾아볼 수 없지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사상을 역사적 문헌들 속에서 발굴해내는 게 나의 일이다. 내가 라이헨바흐의 과학철학을 부활시키려고 하는 것 역시 일종의 역사적 관심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내가 지극히 평범한 지성을 가진 사람이고 상식의 옹호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과학철학자’라는 명칭은 좀 부담스럽다. 나는 과학철학을 좋아해서 계속 공부하는 사람일 뿐이다. ‘아마추어 과학철학 연구자’, ‘과학철학 애호가’라는 명칭이 내게 더 잘 어..

일상 이야기 2022.06.07

정치인 김동연의 경기도지사 당선을 환영함

올해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정치인 김동연이 경기도지사로 당선되었다. 나의 판단으로 정치인 김동연은 결코 좌편향된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가 중도적이고 다소 보수적인 성향의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김동연이 정치에 진출하여 민주당에 입당한 후 경기도지사로 당선되었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치인 김동연을 정치인 노무현과 비교한다. 둘 다 상업고등학교 출신이다. 당시 상업고등학교는 머리가 아주 똑똑하지만 가정 형편으로 인해 대학에 진학하기 어려운 학생들이 가던 곳이다. 학생들은 상업고등학교 졸업 후 대개 은행으로 취업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김동연은 한국은행에 취직했는데, 이것은 그의 머리가 아주 좋았음을 뜻한다. 한국은행에서 일하던 김동연은 열심히 공부해서 고등고시(행정고시, 입..

일상 이야기 2022.06.02

박사학위 논문을 다듬으며

나는 올해 5월 말까지 박사학위 논문 초고를 어느 정도 정리했다. 6월부터는 본격적으로 논문 수정 보완 작업에 들어간다. 초기에 나의 문제의식은 이런 것이었다. 상대성 이론의 등장 이후 이 이론의 철학적 의의에 대한 논쟁이 활발했다. 현대 과학철학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논리경험주의 철학 역시 이러한 논쟁에 참여하면서 점차 형성되었다. 그런데 정작 상대성 이론에 대한 논리경험주의의 철학적 분석이 갖는 의의를 설명하는 문헌들을 찾기 힘들었다. 브리지먼(Bridgman)의 ‘조작주의’를 이러한 분석이라 할 수는 없었다. 브리지먼은 미국 출신의 물리학자였고 그를 논리경험주의 철학의 중심인물이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논리경험주의를 대표하는 세 학자인 모리츠 슐리크(Moritz Schlick), 한스 라이헨바흐..

일상 이야기 2022.06.01

대학 교수가 되는 것과 상관없이

나는 배우는 속도가 느린 편이다. 나는 내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를 파악하는데, 이 세상의 물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른 사람들보다 느리게 파악한 것이다. 과학철학의 경우 나는 마냥 이 분야를 공부하는 게 좋아서 계속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런데 계속 공부를 하면서 조금씩 연구의 논리를 이해하게 된다. 내 나이 41세(한국 나이), 늦어도 너무 늦긴 했다. 그래도 내가 이해한 것을 공유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쓴다. 이제 대한민국은 국제 사회에서도 잘 알려진 나라가 되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잘하면 세계에서도 인정을 받는다. 그만큼 국내에서 구성원들에게 요구하는 수준 또한 높아졌다. 우리나라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수준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으며, 수능 시험을 잘 치면 이 시험 성적을 가..

일상 이야기 2022.05.30

내 성향에 맞는 삶?

중학생 시절 내가 애지중지했던 물품은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와 CD 플레이어였다. 나는 공부를 하든 책을 읽든 글을 쓰든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었다. 등산이나 달리기 같은 운동은 좋아했지만, 격렬하게 서로 경쟁하고 승패를 가리는 운동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야구, 축구, 농구 등에 별로 흥미가 없었다. 또한 나는 손으로 직접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에도 큰 관심이 없었다. 나는 그저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책상 물림형 인간이었던 것 같다. 가끔 내가 좀 더 실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사실 나는 굳이 철학과로 진학하지 않아도 되었고, 좀 더 무난한 학과(서양사학과나 국사학과)에 진학했다가 적당히 괜찮은 직장을 잡아도 되었다. 하..

일상 이야기 2022.05.27

때때로 지인들을 생각함

가끔 나는 내가 과학고등학교로 진학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곤 한다. 내가 다녔던 동해중학교는 그다지 학업 수준이 높지 않은 학교였다. 나는 동해중학교에서 아주 뛰어난 성적을 거둘 수 있었지만, 그것은 그 학교가 그다지 수준이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학교 시절에 나는 기를 쓰고 공부하는 학생이 아니라 적당히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나는 서전학원이라는 부산에서 유명한 학원에 다니고 있었고 그 학원에서 나는 최상급에 속하는 학생은 아니었으므로, 어느 정도 내 실력의 수준을 알고 있었다. 만약 일반고등학교로 진학했다면 고등학교에서 나의 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했을 테지만 최상위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부산과학고등학교(현 한국과학영재학교)에 진학했다. 이 선택에는 장단점이 있었다. 중학생 시절에 ..

일상 이야기 2022.05.26

느림보 연구자

내가 처음으로 학술지에 과학철학 논문을 투고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2020년 여름이었다. 당시 아내가 쌍둥이를 출산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었는데, 그때 아내를 간호하고 있었던 나는 어떻게든 졸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학술지에 게재하기 위해 병원에서 틈틈이 한글로 논문 원고를 작성했다. 투고 결과는 ‘게재 불가’였다. 하지만 그해 나는 원고를 수정해서 다시 투고했고, 결국 2020년에 나의 첫 번째 학술지 논문이 출판되었다. 2021년에는 2편의 논문을 국내 학술지에 게재했다. 2021년은 내가 국내의 여러 철학 학회에 가입한 해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나는 총 6개의 철학 학회에 가입했다. 한국철학회, 한국과학철학회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국 단위의 철학 학회이다. 대한철학회, 대동철학회, 새한철..

일상 이야기 2022.05.22

나답게 살기

육아휴직을 해서 좋은 점들 중 하나는 조용히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남는 시간에 이런저런 생각들을 한다. 내 삶에 대해서 생각하면 할수록, 나는 그냥 나답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내 삶에는 운이 많이 따랐고, 부족함도 많았으며, 행복했던 순간들도 제법 있었다.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나는 지금까지 무난하고 괜찮은 삶을 살아온 것 같다.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학문적 업적이 중요할까? 직장에서 높은 지위까지 승진하는 것이 중요할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으로서는 가족들과 행복하게 하루하루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리고 매일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면서 사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외부적인 기준에서 볼 때 어떤 평가..

일상 이야기 2022.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