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등산의 교훈

강형구 2023. 7. 2. 07:12

   어제는 오래간만에 금정산 등산을 했다. 내가 자주 다니던 코스, 즉 부산 명륜동에서 출발해서 금강공원 입구를 거쳐 케이블카 종착지까지 간 후, 휴정암을 거쳐 동문과 북문을 지나치며 범어사까지 가는 코스를 밟았다. 이번에는 대략 6시간 정도 걸렸는데, 왜냐하면 중간에 길을 잘못 들었기 때문이다. 휴정암에 도착한 이후 동문으로 가는 길에서 길을 잃어 부산대학교 위쪽에 있는 보광암과 호국사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길에서 많이 긴장하면서도, 대략적인 방향을 염두에 두고 산행하며 계속 걷다 보면 길이 나올 것이라 믿었다. 휴대전화의 지도 앱은 사용하지 않았다.

 

   결국 친숙한 길을 다시 찾게 되자 마음이 아주 편해졌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을 걷는 것은 아주 편한 일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길을 잃었을 때 헤맨 경험도 소중했다. 본능과 직감에 따라서 난국을 헤쳐가는 것도 중요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여름철인 데다가 비가 온 뒤라 그런지 산속은 생명의 내음으로 가득했고, 산의 생명체들은 나라는 낯선 이방인을 경계했다. 새들은 큰 소리로 울며 머리 위를 날아갔고, 모기를 비롯한 날벌레들이 내 주변을 귀찮게 했다. 곳곳에서 쓰러진 나무 기둥들이 길을 막았고 거미줄이 드리워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은 생명의 흔적이 별로 없는 하얀 색이었고, 녹음의 거친 영역에서 하얀 영역으로 재진입하자 인간으로서 나는 큰 안도감을 느꼈다.

 

   나의 체력이 여전히 쓸만하다는 사실은 위로가 되었다. 잘 아는 등산로를 걸을 때 예전에 비해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길을 잃지 않았다면 4시간 정도로 등산 코스를 주파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다른 깨달음으로는 ‘너무 생각이 많아졌다’라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휴대전화를 잘 켜지 않고 산행했는데, 내 생각이 너무 많아 산속 자연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어릴 때는 내 생각보다는 자연의 강렬한 생명력을 더 생생하게 느꼈는데, 이제 나도 어쩔 수 없이 너무나 생각이 많은 인간이 되어버린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건빵 한 봉지, 물 한 병, 복숭아 하나를 갖고 6시간을 산행하니 그야말로 ‘몸을 두드리며 수행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몸에서 땀이 빠져나가며 쓸데없는 생각들도 빠져나가는 듯했다. 생각해보라. 이 세상은 이토록 많은 우연이 결합해서 굴러가고 있다. 나라는 한 명의 개체는 아무런 의도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 온갖 고통과 기쁨을 경험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내 삶에는 과도하게 부여할 수 있는 의미도 없고, 그렇다고 내 삶이 아예 무의미한 것 또한 아닐 것이다. 고통스러워하되 그 고통에 너무 오래 머무를 필요도 없고, 기뻐하되 그 기쁨에 너무 오래 머무를 필요도 없다. 나의 성공은 온전히 나의 성공이 아니며, 나의 실패 또한 온전히 나의 실패가 아니기 때문이다.

 

   산행의 마지막 경로가 범어사인 까닭에 이런 생각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범어사에는 무슨 행사를 했는지 사람들이 많았고, 내가 도착했을 때는 행사가 끝나 정리하고 있었다. 부처님의 침착하고 평온하면서도 날카로운 표정과 눈빛을 보며 위안을 얻었다. 기쁜 마음으로 산행을 시작해, 가파른 경사의 길을 오르며 아직 체력이 괜찮다며 위안을 얻었다가, 한순간의 착오로 두 시간 가까이 길을 잃고 헤매며 나의 어리석음을 자책했고, 다시 많은 사람이 다니고 나 역시 친숙한 길을 찾은 후 큰 안도감을 느꼈던 산행이었다. 오늘도 운이 좋았다. 행운에 감사하라. 사실 내가 이룬 일의 대부분이 행운 덕분이라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오래간만의 등산은 소중한 교훈을 주었다. 살아 있는 것,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온갖 인간적인 것들은, 비록 인간들이 자신들 스스로 짓는다고 생각해도, 온전히 자신이 뜻한 바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다. 그 막강한 우연 앞에서 평등해지고 겸손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