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변두리에서 음악을 들으며

강형구 2023. 12. 7. 20:37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면 나는 늘 음악에 취해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고정식 카세트 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었고, 중학생 시절에는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와 CD 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었다. 특히 공부할 때 늘 음악을 들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힘겨운 두뇌 노동을 반복했다. 음악이 없었다면 그렇게 반복적인 두뇌 노동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음악, 소설, 영화 등과 같은 예술에는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어떤 몽환적인 요소가 있는데, 나는 그런 예술의 몽환적인 힘을 빌려 공부를 해나갔다.

 

   음악은 내게 허락된 합법적인 마취제와도 같았다. 나는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어 실제 세계와 거의 같은 게임을 만드는 것을 상상하기도 했는데, 이런 상상은 주로 영화와 소설 속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지극히 평균적인 지능을 가졌던 내가 조금이나마 공부를 잘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음악을 비롯한 예술이 인간에게 주는 강렬한 쾌감 때문이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나는 반듯하고 모범적인 학생이 아니었으며, 나의 깊은 곳에는 어두운 변두리에 있는 듯한 예술가의 감성이 남아있다. 세상과 삶에 지칠 때 내가 찾는 것은 이성의 세계라기보다는 감성의 세계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나는 늘 달콤한 환상에 빠지며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어떤 힘을 느낀다.

 

   세상으로부터 주목받지 못하는 고독한 방랑자. 방랑자는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세계에 대한 낯선 꿈, 다른 사람들이 꾸는 것과는 다른 꿈을 꾼다. 이런 종류의 그림은 퍽 낭만적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 자신이 이런 낭만적인 그림 속에서 힘을 얻으면서 삶을 견뎌왔고 내 앞에 끊임없이 제시되는 싸움을 겪어왔다. 실제로 나는 나의 낭만을 배신하지 않았다. 만약 배신했다면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고시를 준비하며 우리 사회의 고급 계층에 편입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다만 나의 낭만은 마르크스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닌 과학철학을 향해 있었기에, 그저 바보처럼 매일 도서관에 틀어박혀 읽고 또 읽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뿐이다.

 

   인간은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다. 늘 현실 속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그러나 인간은 현실 속에서 살아가면서 늘 꿈을 꾼다. 어쩌면 그렇게 꿈을 꾸기 때문에 비로소 현실 속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모든 인간은 일종의 몽유병자가 아닐까? 대다수 사람이 비슷한 꿈을 꾸고 있을 때 이들과는 약간 색다른 꿈을 꾸는 사람들, 자신이 꿈을 꾸고 있지는 않은지 계속 의심하며 새로운 꿈을 꾸고자 하는 사람들이 낭만적인 방랑자 보헤미안 아닌가? 나는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고 큰 소리로 흥겹게 노래를 부른다. 이 순간 세상에서 귀하고 엄하다고 평가되는 많은 가치가 무너져 내린다. 이 순간 음악이 내게 주는 삶의 기쁨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 있는가?

 

   나는 매일 아침 6시 30분이 되면 눈을 뜬다. 면도, 세면, 머리를 감고, 옷을 차려입은 다음, 이불을 개고, 집 정리 및 청소를 하고, 아이들을 씻기고 옷을 입히고 어린이집에 데려다준다. 회사에서는 사람들과 일들에 부대낀다. 매일 예상하지 못했던 복잡한 문제들이 툭툭 튀어나오고 그것들을 해결하는 데 몸과 마음을 쓴다. 노동의 시간이 끝나면 다시 집으로 돌아와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돌본다. 그 모든 일들이 만드는 틈새에 나는 책과 논문을 읽고, 잠시 생각에 빠지며, 꿈꾸듯 글을 쓴다. 과연 나는 현실에 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꿈속에서 살면서 가끔 외면하지 않고 꼭 필요한 만큼만 현실을 들여다보는 걸까?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이 나의 꿈이기에, 내가 물리적으로 살아가는 이 세계는 오히려 꿈과 같고 나의 꿈이 나의 진정한 세계 아닌가? 어쩌면 나는 여전히 내 10대 시절과 마찬가지로 변두리에서 음악을 들으며 웃고 있는 몽상가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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