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고민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일단 해라. 이것이 내가 지금까지 길지 않은 삶을 살아오면서 내린 결론이다. 일단 그 일을 해봐야 내가 상상했던 것과 실제가 얼마나 비슷하고 다른지를 알 수 있다. 어떤 일을 해보지 않으면 계속 그 일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을 가지고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일을 해보지 않으면 그 일을 내가 잘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그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가 없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일단 그 일을 해봐야 한다. 너무 고민하다 보면 시기를 놓치기 십상이다.
그 일에 대한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일을 해보면, 사람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과학철학이라면 실질적으로 과학철학 하나만 해도 시간이 모자란다. 수학, 물리학, 컴퓨터공학 등 어느 정도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에 대해 깊이 파고들기가 매우 어렵다. 과학철학 안에서도 세부 주제들이 많이 나뉘고 읽어야 할 책과 논문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특정한 전문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영역을 넘나드는 방식으로 연구하는 것은 힘겹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좀 거창하게 들릴지 몰라도, 인생을 건 선택과 실행이 필요하게 된다. 어떤 한 사람이 다양한 일들을 제대로 해내기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자신이 좋아하면서 어느 정도 재능이 있고 그것을 통해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찾은 다음, 시간과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그 일을 통해 인생의 승부를 걸어야 하는 셈이다. 물론 위험은 늘 존재한다. 내가 그 일을 생각했던 것보다 잘하지 못할 수 있고, 그 일을 하다가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를 겪을 수도 있으며, 그 일이 나의 생계를 유지해주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정도의 위험을 감수하지 못한다면 주체적인 삶을 살 자격이 없다.
또한 나 스스로에게 너무 높은 기대를 할 필요도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아마 사람들마다 의견이 갈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부산과학고등학교(현 한국과학영재학교), 서울대학교를 거치며 주변에서 나보다 여러모로 뛰어난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봐왔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나의 지적 재능이 그다지 탁월하지 않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뛰어난 사람들 사이에서의 경쟁에서 살아남아 더 뛰어나게 성장한 사람들이 있는 반면, 나의 경우 내가 가진 재능의 평범함을 받아들이고 나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를 너무 높게 잡지 않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더라도, 나는 나 스스로에게 제시하는 성공의 기준을 과도하게 높게 잡지는 않는다. 그러면 몸과 마음이 편해진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일단 해보자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박사가 되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의 지적 재능에 대한 확신이 없더라도, 내가 속한 제도적 환경 속에서 어떻게든 박사학위 논문을 써서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직접 논문을 써가는 과정에서 더욱더 스스로의 한계를 잘 체감할 수 있다. 강의나 발표도 마찬가지다. 내가 얼마나 강의와 발표를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직접 해봐야 알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직접 해보면서 실력이 는다는 것이다. 잘하기 위해서 사전에 철저히 준비한 다음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해보면서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서 실력이 늘고 잘하게 된다.
이렇게 ‘하면서 늘기’ 위해서는 지구력, 뻔뻔함, 낙천성 등과 같은 자질이 요구된다. 당연히 하면서 배우는 과정에서는 여러 난관에 부딪치고 다수의 실패를 겪는다. 이런 상황에서 포기하면 그냥 그 지점에서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므로, 무안해도 웃어넘기고 고통스러워도 참고 견디며 그것을 다시 하고 또 하는 과정에서 점점 더 강하고 단단해진다. 결론적으로 늘면 하는 게 아니라 하면서 느는 것이므로, 내 마음을 잘 살펴서 신중하게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면, 용감하게 그 일을 계속 해 나가면서 성장해나가는 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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