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강형구 2023. 12. 21. 22:08

   존경하되 추종하지는 말라. 언제든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아라.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다. 설혹 내가 아닌 남을 위해 혹은 어떤 이상이나 신념을 위해 나를 희생하거나 헌신하더라도, 그러한 희생 혹은 헌신은 철저히 자기 자신의 이해와 의지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일을 성실하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내가 축구선수라면 내가 유명하든 그렇지 않든 열심히 꾸준히 계속 축구하면 되고, 내가 과학철학 연구자라면 내가 유명하든 그렇지 않든 열심히 꾸준히 계속 나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과학철학 연구를 하면 된다.

 

   물론 이때 유의해야 하는 것은 편협하거나 권위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나에 대한 다른 사람의 건전하고 합리적인 조언과 충고는 기꺼이 받아들일 태도를 늘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계속 스스로 반성하고 변화시켜 나가야지만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고 더 강해질 수 있다. 편협하게 자신만의 생각과 방식만을 고집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미움 혹은 반감을 사게 되며 더 좋은 성장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중요한 것은 이러한 수용과 변화 과정에서도 자신이 주도적이고 주체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주체성을 잃어버리면 스스로 판단하고 성장해 나갈 수 없다.

 

   지금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서 나약하고 못나더라도 실망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나는 아무리 억울하고 분하더라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나일 뿐이고 그러므로 나의 삶이 가장 중요하다. 어떤 사람이 자존심과 자기애를 잃는다면, 아무리 그 사람이 재능에서 뛰어나고 외형적으로 아름답더라도 나의 큰 관심을 끌지는 못할 것이다. 정말로 나의 관심을 끄는 사람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면서도 자신을 더 멋지게 변화시키기 위해서 기꺼이 다른 사람의 현명한 제안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자기 자신의 성장을 위해 기꺼이 다른 사람이 가진 독특한 자원을 창조적으로 변환시켜서 자기의 것으로 수용한다.

 

   나는 나의 아이들이 뛰어난 사람이 되기를 바라기보다는 주체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자아를 사랑하고 늘 당당하면서도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기꺼이 변화를 받아들이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렇기에 나는 때때로 ‘수처작주, 입처개진’이라는 문구를 되새기며 내 삶의 지침으로 삼는다. 온갖 정보가 범람하고 인공지능이 나 대신 번역과 생각마저 해주는 이 시대에, 사람은 자신의 주체성을 상실하게 만드는 많은 유혹에 직면한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하며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늘 나에게는 주인공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조연이며 그 사람이 딛고 건너야 할 일종의 돌다리일 뿐이다. 나의 아이들에게조차 나는 믿고 건널 수 있는 돌다리에 지나지 않는다. 나의 아이들은 나를 딛고 건너서 그들이 원하는 곳으로 가야 하고, 나의 동료 혹은 제자들도 마찬가지로 나를 딛고 건너서 그들이 원하는 곳으로 가야 한다. 결국 나 역시 나 이외의 모든 다른 사람들을 돌다리로 딛고 건너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고자 할 것이다. 내 생각에 나 이외의 모든 타자들을 돌다리로 삼는 일은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려 하는 모든 사람이 겪어야 하는 운명 혹은 숙명이다.

 

   그런데 과연 이것 이외에 나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아끼는 더 진정한 방법이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늘 당당하게 너 자신의 삶을 살아라! 그러면서도 늘 열려 있어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기꺼이 스스로 변화하라! 말은 쉽지만, 이를 실천으로 잘 옮기는 일은 쉽지 않다. “수처작주, 입처개진”이라. 때때로 마음 깊이 되새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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