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실용주의적 관점

강형구 2023. 12. 18. 11:06

   나는 평소 여러 가지 상황을 대할 때 미시적이고 국소적인 관점을 취한다. 예를 들면, 나는 나라는 사람을 나의 가족이란 특수하고 국소적인 환경에서 등장한 산물이라고 본다. 나는 1982년에 태어난 이후로 나의 가족이란 환경에서 적응하고 투쟁하면서 지금까지 내 인생의 각 단계를 거쳐 왔다. 내가 다녔던 청운 유아원, 명륜 유치원, 명륜 초등학교, 동해 중학교는 내 삶의 형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부산과학고등학교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철저히 한국적인 교육제도 아래에서 특정한 집단에 속해왔고, 그 집단에서의 경험을 통해 내 삶을 형성해 왔다.

 

   매 단계에서 나는 내가 속한 집단 안에서 다른 구성원들과 협력하고 경쟁하며 나의 삶을 운영했다. 부산과학고등학교에서 자퇴했다는 것은 한국적 교육제도 아래에서의 내 개인적인 투쟁의 일면을 보여준다. 자연을 탐구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나를 부산에 설립되어 있던 과학고등학교로 이끌었지만, 과학고에서의 주입식 교육에 나는 만족하지 못했다. 자퇴 이후 독학의 경험은 나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었다. 독학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경험이었지만, 오직 독학만으로는 기존에 수립된 교육제도 내에서 뛰어난 평가를 받기 힘들었다. 대입 재수학원에서의 입시 준비는 내가 우리나라 교육제도와 타협한 결과였다. 이는 오로지 나의 길만을 고집하지는 않은 결과였다.

 

   대학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일종의 자연철학이었다. 자연의 원리에 대해서 성찰하고 싶었다. 인간이 어떻게 자연을 이해할 수 있는지, 인간의 자연 지식에 대체 어떤 의의가 있는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나의 욕구를 정확하게 충족하는 교육 과정을 찾기 어려웠다. 자연대학에서의 수학과 물리학 수업은 기술적인 영역에 치우쳐 있었고, 인문대학의 과학철학 수업 역시 역사에 치우쳐 있거나 너무 일반적인 논의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도서관에서 책들을 찾아보며 스스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모든 일을 두루 잘할 수 없기에, 상대적으로 나의 공식적인 학점은 뛰어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형편없는 학점은 아니었고, 겨우 하위권은 면할 수 있었다. 이 또한 나는 일종의 타협 결과라고 생각한다. 현실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나의 이력을 보면, 내가 과학철학 공부에 대한 끈을 늘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001년 3월에 대학에 입학해서 2005년 2월에 졸업했다. 2005년 3월에 석사과정에 입학해서 2011년 2월에 졸업했고, 2011년 3월에 박사과정에 입학해서 2023년 2월에 졸업했다. 석사과정 동안에 군 복무 문제를 해결했고, 박사과정 동안에 공공기관에 취직해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대학부터 대학원 최종 졸업까지 22년이 걸렸다. 나는 길게 보고 오래 달렸다. 그동안 나는 우리 사회에서 평범한 남자에게 요구하는 기본적인 일들을 최대한 소화해 내려 했다. 나는 내가 학문에만 조예를 갖고 있는 편협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나름 노력을 기울였다. 물론 이는 특출나지 않은 나의 학문적 재능을 고려한 적절한 타협이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나는 내가 매우 실용주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과학철학 연구를 나의 천직으로 삼으면서도, 현실에 맞게 적절하게 타협하며 나의 연구를 이어가자는 것이다. 필요하면 계속 지금의 나의 생업을 유지하면서 과학철학 연구를 이어갈 수 있으며, 내가 좀 더 과학철학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적절한 자리가 나타난다면 기꺼이 그 자리로 옮겨 계속 과학철학 연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과학철학을 계속 추구한다는 점’에서 나는 이상적이고 고집스러울 수도 있겠으나, 이 목표를 추구하기 위한 방법론을 선택하는 측면에서 유연하고 열려 있기에 나는 실용주의적이다. 세상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삶 속에서는 늘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난다. 따라서 유연한 실용주의적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현명하고 실천적인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