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조용하고 복된 성탄

강형구 2023. 12. 25. 07:57

   며칠 전 누군가가 나에게 물었다.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뭐 하세요? 무슨 특별한 계획 있으세요? 아이들을 위한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셨나요? 이 물음들에 대해 나는 단순하게 대답했다. 다른 계획은 없습니다.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는 게 전부입니다. 사실 예배를 드리는 게 제일 중요하고요, 예배드리면서 느끼는 감사함의 감정이 가장 큰 선물입니다. 그에 비한다면 물질적인 선물은, 받으면 좋기는 하지만 안 받아도 그만인 그런 선물입니다. 성탄절 예배 끝나고 집 근처 장난감 가게에 가서 아이들에게 하나씩 소박하게 사 주려 합니다.

 

   나는 오래전부터 나를 종교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러한 생각에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나는 부모님을 따라 어린 시절부터 절에 자주 다녔다. 한국의 승려들에 관한 이야기책도 자주 읽었다. 평생을 소박하고 검소하게, 구도자의 마음으로 매일 살아가는 것을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께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가서 승려로서 살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말씀드린 적도 있다. 깨달음 그 자체에 대한 열망이 큰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 세상에 완벽하고 아름다운 진리라는 게 대체 어디 있겠는가. 그저 구도자의 삶, 소박하고 질박하며 성찰하고 반성하는 삶을 우러러보았다.

 

   유교와 불교문화에 익숙했던 내가 아내의 영향으로 교회를 다니게 되었는데, 교회를 다닐 때의 그 초기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주기도문을 외우는 것, 일어서서 한쪽 손을 들고 찬송을 부르며 주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는 일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인내심과 관용의 마음으로 아내와 함께 꾸준히 교회에 나갔다. 억지로 성경 공부를 하려 하지 않았다. 목사님은 성경의 전문가이며, 매주 예배하러 가면 목사님께서 성경 내용을 해설해 주신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매주 법회에서 법사님으로부터 설법을 듣는 것과 매주 예배에서 목사님으로부터 설교를 듣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게 여겨졌다.

 

   매년 부처님 오신 날과 성탄절이 온다. 나는 불교에서의 깨달음을 매우 심오하게 생각한다.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오면 부처님께서 인간의 고통, 집착, 번뇌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을 되새기려 한다. 이와 비슷하게, 성탄절이 다가오면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갖고 이 세상에 오셔서 거치셨던 일련의 희생 제식이 갖는 의미를 생각한다. 성탄절을 기념하는 가장 올바른 행위는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이다. 이는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는 가장 올바른 행위가 절에 가서 기도를 드리는 일인 것과 같다. 성탄절이 되면 나는 새삼스레 매일 짓고 있는 나의 죄에 대해, 내가 실로 죄인이며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그 죄를 씻을 가능성과 희망을 얻음을 생각한다.

 

   어찌 보면 인간은 괴물과도 같다. 아마 인간이 괴물 같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어른은 별로 없을 것이다. 지구 위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는 생물 종이 되게끔 인간은 진화해 왔다. 인간이 다른 생물을 가축화시켜 죽이는 모습, 다른 인간을 생물학적으로 죽이기 위해 발명해 낸 고도의 기술적 장치들, 다른 인간을 정신적이고 문화적으로 통제하고 착취하기 위해 고안한 정교한 제도적이고 문화적인 장치들을 생각하면, 실로 인간이라는 종은 이 지구 위에서 괴물과도 같은 존재임을 실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종에 속한 한 개체로서의 내가 존재하고 있다. 내가 괴물임을 실감할 때, 그러한 괴물 같은 특성은 내가 교과서나 동화책에서 배운 것과는 다르다는 것 또한 느낄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선한 종교가 이러한 괴물 같은 인간을 통제하고 제어하며 순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괴물의 본성을 자각하고 다스리고 승화시키려는 위대한 시도가 종교 아니겠는가. 나는 기독교 또한 그와 같은 위대한 시도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라는 감격적 사건에 숙연한 감정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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