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새해라는 상징

강형구 2024. 1. 1. 22:16

   매년 1월 1일 새벽이 되면, 부산에 살고 있던 우리 가족은 동해안으로 이동하여 떠오르는 태양을 보곤 했다. 부모님과 누나와 나는 새벽 5시 전후로 일어나 약간의 먹을거리를 챙긴 후 승용차를 타고 동해안인 칠암방파제 근처로 이동해서 30분쯤 기다렸다가 바다 수면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렇게 우리 가족은 매년 새해를 기념했고, 이후 칠암 근처에 있는 절인 장안사를 찾아 부처님께 인사드린 후, 자주 찾아가는 칼국수 집에 들러 칼국수와 두부를 아침으로 먹곤 했다.

 

   누나와 내가 결혼을 한 후에는 우리 가족의 이런 전통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잦아졌다. 그러나 올해 나는 가족들을 데리고 부산으로 내려가 이 전통을 지켰다. 예전에는 아버지께서 운전하셨지만, 올해에는 내가 우리 가족의 승용차인 카니발에 부모님, 우리 가족, 누나네 큰아들 건호를 태우고 움직였다. 오전 7시 30분쯤 일출 예정이었고 우리는 7시 10분쯤 칠암방파제 근처에 도착했다. 일출을 보러 온 사람들이 너무 많아 차량이 복잡했지만 그게 핵심적인 문제는 아니었다. 비가 오지 않았지만 구름이 많이 끼어 있어 해수면에서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우리들은 7시 30분 전후까지 상황을 살핀 후, 제대로 일출을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대신 자주 가는 식당으로 빠르게 이동해서 푸짐한 식사를 했다. 식사 후에 늘 그랬던 것처럼 장안사에 들러 느긋하게 둘러보았다.

 

   사실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여겨지긴 하지만, 그래도 새해에는 중요한 상징적 의미가 있다. 이제 나는 옛날식으로 따져 마흔셋이 되었다. 오늘날을 기준으로 보면 직장 생활을 12년 했고 앞으로 20년 정도 더 하면 은퇴하게 된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날 정도를 앞으로 더 살게 되면 한 생명으로서의 내 삶도 마감될 것이다. 결혼한 지 10년이 되어 간다. 큰아이가 9살, 둘째와 셋째가 5살이 되었다. 큰아이는 이제 조금씩 또래 아이들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며, 그렇게 서서히 나와 아내에게서 멀어지지 않을까 싶다. 둘째와 셋째도 퍽 많이 컸다. 곧 그 아이들도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될 것이다.

 

   이제 내게는 그저 나답게 사는 일만 남았다. 회사에서 묵묵하게 열심히 일하고, 그중 틈을 내어 인근에 있는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과학의 역사와 철학을 가르친다. 내가 무엇인가 대단하고 혁신적인 학술논문을 쓸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다만 그런 논문을 쓰는 일이 실제로 나에게 절실하지는 않으며, 내게 그럴 능력이 있는 것 같지 않다. 분명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꾸준히 논문을 쓰고 책을 번역할 것이라는 점이다. 매년 학생들에게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가르치며, 매년 2편 이상의 학술논문을 게재하고, 매년 1권 이상의 과학철학 저서를 번역하는 일이 나의 목표이다. 그렇게 20년 이상 시간을 보내면, 그동안 학술연구 실적이 축적되어 나의 연구가 다른 연구자의 작은 디딤돌이 될 수 있으리라.

 

   한때 내게도 혈기 넘치던 시절이 있었다면, 이제 나는 매사에 조심하고 침착하며 그저 온전히 내가 뜻한 바를 계속 해 가는 것이 참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내 삶의 형태와 방향은 이미 어느 정도 결정되어 있으므로, 내게 주어진 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연말에 충분히 휴식을 취한 덕에 이제 대상포진도 거의 가라앉았고 기력도 상당히 회복되었다. 삶을 단순화시키려 노력한다. 쓸데없는 일들로 인해 주의를 분산시키지 않겠다는 뜻이다. 소박한 음식, 소박한 옷, 소박한 지위, 소박한 생활에 만족한다. 매일 명상 음악을 들으며 내가 그저 모래 한 알, 티끌 하나와 같은 존재임을 자각한다. 내 몸과 마음과 나의 언어마저도 잠시 빌려온 것이기에,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 선하게 살고 선을 베풀며 겸손하고 만족하는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