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두 지도교수님과의 신년 하례식

강형구 2024. 1. 10. 16:30

 

   어제는 바쁜 하루를 보냈다. 첫째 아이를 차에 태워 등교(겨울방학 중 돌봄교실)시킨 후, 김천구미역으로 가서 KTX 열차를 탔다. 서울역에 도착해서 강남역으로 이동, 과학철학 전공 대학원생 3명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대략 5시간 동안 수다를 떨었다. 이 시간에 나는 대학원생들에게 최대한 졸업에 필요한 실질적인 요령을 전달하려고 했다. 솔직히 말해 나는 바람직한 경로를 따라 성공한 선배는 아니다. 그래도 무사히 졸업을 했고 현재 조금이나마 전공을 살려서 직장에서 업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최소한 평균 정도의 성과를 얻은 선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철학 전공 박사과정 대학원생들과의 즐거운 시간 이후, 역시 강남역 근처에 있는 한 우동 가게로 향했다. 가게에 들어가니 이미 전 지도교수이신 조인래 교수님, 현 지도교수이신 천현득 교수님이 와 계셨다. 조인래 교수님과 천현득 교수님은 사제 관계이다. 나는 천현득 교수님을 학부 시절부터 알았는데 그때부터 천교수님은 뭐든 잘 하셨다. 뛰어난 스승에 뛰어난 제자라. 그에 비해 나는 학부 시절부터 뭔가 좀 모자랐던 것 같다. 나는 겨우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졸업했지만, 그래도 이제부터 우리나라 과학철학을 위해서 조금이나마 일을 좀 하려고 하고 있다.

 

   두 분 지도교수님 외에 나보다 두 살 많은 형님(허박사님)과 두 살 어린 동생(임작가)이 신년 하례식에 참석했다. 하례식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훈훈했다. 대학원생들과의 대화에서도 어렴풋이 알 수 있었지만, 비교적 젊은 교수인 천현득 교수님은 이런저런 일들로 퍽 바쁘신 것 같았다. 서울대학교에서 과학철학을 담당하는 교수라는 중요한 직책이 만만하지 않아 보였다. 물론 그만큼 역량이 있으신 분이기 때문에 비록 약간 힘들더라도 잘 감당하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에 비해 조인래 교수님은 비교적 여유로워 보였고, 건강도 괜찮으신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역시나. 조인래 교수님은 늘 그렇듯 아주 조심스럽고 부드러운 말투로 제자들에게 꼭 필요한 말씀을 다 하셨다. 학술대회에서 부지런히 발표해야 한다. 과학철학회 뿐만 아니라 분석철학회도 열심히 참여하여 여러 철학자들과의 접촉을 유지해야 한다. 영어로 된 논문을 국제적으로 저명한 학술지에 투고하여 실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계속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좋은 기회가 왔을 때 잡기 위해서는 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시류의 변화에 잘 적응하면서도 자신의 과학철학 핵심 연구 주제는 계속 유지해야 한다. 하나같이 옳은 말이었고 가슴에 찔리는 말이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조인래 교수님께서는 본인이 하고 싶었고 해야만 하는 말들을 다 전하셨다.

 

   아마 나는 조인래 교수님처럼 될 수는 없을 것이다. 30대 초반까지는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은 조인래 교수님처럼 할 수 없지만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나중에도 나는 교수님처럼 되기는 힘들 것이다. 사실 나는 진실로 조인래 교수님과 같은 훌륭한 철학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렇게 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나는 나름 계속 노력할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조인래 교수님과 같은 훌륭한 철학자로 기억되기는 힘들 것이다.

 

   모임은 저녁 8시 반쯤 끝났고, 나는 허박사님과 커피를 마시며 좀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울역에서는 밤 10시가 조금 넘어 열차를 탔고 김천구미역에 도착해서 집에 운전을 해 돌아오니 새벽 1시 가까운 시간이었다. 아주 바쁜 하루였다. 조인래 교수님, 천현득 교수님이라는 두 거인과 함께 보낸 시간이 인상 깊었다. 아마도 나에게는 내가 할 수 있는 몫의 일이 있을 것이고, 그 일을 충실히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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