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다시 본연의 마음자세로

강형구 2024. 1. 22. 13:11

   박사학위를 받은 후 나도 모르게 욕심을 가졌던 것 같다. 내 능력을 초과하는 일들을 내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잠시나마 착각을 했다. 작년 2월 말에 박사학위를 받았으니 이제 거의 1년 지났다. 박사가 된 이후 내가 겪었던 여러 일들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이제 다시 내 본연의 마음자세로 돌아가려 한다. 한 사람, 특히 나와 같은 평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이것저것 많은 일들을 벌릴 수는 없는 법이다. 나는 내가 지금까지 해 왔고 내가 가장 잘 하는 일을 앞으로도 계속 하는 것이 나 자신에게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좀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우선, 라이헨바흐의 [시간의 방향] 번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이 작업을 과학관에서의 나의 연구와 연결시키려 한다. 우리 과학관에서 올해 “직원중점연구과제” 사업을 하는데, 나는 “시간의 본성에 대한 20세기 전반기의 과학사상 연구”를 연구 주제로 제출하여 선정되었다. 연구에서는 시간의 본성에 대한 아인슈타인, 에딩턴, 바일, 라이헨바흐의 철학적 관점을 살펴볼 예정이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라이헨바흐의 철학적 관점을 다루게 될 것이다. 라이헨바흐의 시간 철학을 주제로 한국과학철학회의 학술대회 발표 신청도 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확실치 않지만 내 개인적인 연구와 공적(업무적)인 연구를 가급적 일치시키려 노력 중이다.

 

   또한 올해 중에는 작년에 번역한 라이헨바흐의 [경험과 예측]이 출판되리라고 기대한다. 내 생각에 이 책은 20세기 전반기의 경험주의 과학철학을 잘 대표하는 책이다. 이 책이 우리나라 과학철학계에 작은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면 한다. 단지 책의 출판만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에 담겨져 있는 여러 흥미로운 주제들 중에서 나에게 맞는 주제를 골라 학술대회 발표 및 학술지 게재를 추진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작년에 출판되기를 바랐으나 아쉽게도 일이 성사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저 올해 안으로만 출판되어도 나는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나는 매달 2개의 공부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하나는 책 공부 모임이고, 다른 하나는 논문 공부 모임이다. 내가 읽을 책과 논문을 매번 선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발언권이 주어질 경우 가급적이면 논리경험주의와 라이헨바흐의 과학철학을 주제로 책과 논문을 추천하려고 한다. 어차피 나는 논리경험주의 및 라이헨바흐 연구자이며, 갑작스럽게 나를 인공지능 혹은 빅데이터 혹은 신유물론 연구자로서 꾸미고 싶지는 않다. 내가 지금까지 연구해왔고 앞으로도 연구할 내용을 공부 모임에서 공유하고 그에 관해서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에게도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약간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꾸준하게 운동하는 일도 다시 시작하려 한다. 산책하기, 자전거 운동하기, 턱걸이, 팔굽혀펴기, 역기 들기 등을 매일 꾸준하게 할 생각이다. 건강이 잘 유지되어야만 일과 연구 모두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운동에서의 승부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몸을 움직여서 땀을 흘리는 것을 좋아한다. 운동 또한 의지를 갖고 부지런히 해야만 잘 유지가 된다. 집에 운동용 자전거와 역기가 구비되어 있으니 게으름 부리지 말고 꾸준히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이제 다시 나는 공세(攻勢)에서 수세(守勢)로 돌아선다. 사실 나는 공격보다는 수비에 능하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크게 보아 긴 전쟁이라 생각한다면, 이제 나는 일정한 영역을 확보하고 그 영역을 수비할 수 있는 성과 성벽을 쌓은 후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평화를 지키려는 한 명의 장수라고 볼 수 있겠다. 내가 이 세상에서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살며 이루어 온 성과들을 앞으로도 무사히 잘 지켜나가는 것이 내게 남은 가장 큰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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