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사회적 생존을 위한 선택

강형구 2024. 1. 27. 17:55

   부모님에게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측면 모두에서 의존하지 않으려는 의지는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러한 의지를 ‘독립성’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이런 독립성을 추구한다면 그 사람은 ‘금수저’가 될 수는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되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이 물려받은 재산 대부분을 포기했다.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독립성이 강했다. 1997년 IMF 금융위기 이전에 우리 집의 재정 형편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교육에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을 싫어했다. IMF 금융위기는 나의 독립성을 더 심화시켰다. IMF를 통해 나는 직업에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안정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나의 아버지는 대구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의류도매업으로 잔뼈가 굵은 분이었고, 나는 그런 아버지 아래에서 ‘살아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부산과학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라는 학교가 갖는 어떤 ‘상징’이 있다. 그러나 그 상징이 갖는 의미를 곧이곧대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 부산과학고등학교에서 공부했던 10명 중 하위권의 한두 명은 자기보다 공부 잘하는 똑똑한 친구들 속에서 극심한 열등감을 느끼며 결국 좋은 대학으로 진학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서울대학교도 마찬가지다. 서울대를 졸업한 사람들 모두가 진정으로 성공하지는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하위권으로 서울대를 졸업한 사람에게는 평생 서울대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으며, 그는 “서울대 졸업생이 저 정도야?”라는 평가에 늘 스트레스를 받았다.

 

   나는 과학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별도의 준비 없이 거의 혼자서 수학 공부를 했었고, 과학고에 들어가서는 공부 측면에서 전혀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서울대학교에 들어가서도 비슷했다. 나는 ‘평범한 서울대생’ 중 하나일 뿐이었고 특히 졸업 시절에는 당시의 많은 인문대생과 같이 취업을 걱정했다. 육군 장교는 내게 40개월 동안 일할 수 있는 단기적인 직장이었다. 대학원에 들어간 것은 계속 과학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나의 열망 때문이었지만, 나 스스로 애초에 대학교수로서 성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공무원 혹은 공공기관 직원이 되어 안정적으로 생활을 영위하고 싶다는 생각을 나는 이미 학부 시절부터 가지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생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사회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다. 나 또한 마냥 현실감 없고 철없는 철학 전공자로 머물려 하지 않았다. 공무원 시험과 공공기관 입사 시험을 준비할 때는 전혀 알지 못했던 행정학, 경영학 및 경제학을 새로 공부했다. 결국 살아남아야 했다. 한국장학재단이 대구공고 앞으로 이전하고 아내가 육아휴직에서 복직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나는 우리 집이 있던 대구 테크노폴리스 인근의 기관으로 이직을 알아보던 중 운 좋게도 국립대구과학관으로 이직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직장이 집과 매우 가까워지기 때문에 나와 아내가 맞벌이하며 아이들을 돌볼 수 있었다. 외벌이로 가정을 제대로 유지하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는 현실을 고려한 것이다.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을 수 있는 재산이 거의 없고 지적 재능이 출중하게 뛰어나지 않은 나로서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방 네 칸이 있는 집에서 다섯 식구들이 살고 있고, 직장은 안정적이며 집으로부터 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어린이집과 초, 중, 고등학교가 동네 안에 모두 있다. 나와 아내가 맞벌이하며, 주택자금 대출이 있긴 하지만 향후 5년 이내에 전액 상환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가장 어린아이도 세 돌이 지나 제법 컸다. 바로 이런 점들 때문에 나는 내 삶이 안정세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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