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독립성의 추구

강형구 2024. 2. 10. 16:11

   내가 어린 학생이던 시절부터 나의 가장 큰 관심을 끈 주제는 부, 명예, 탁월함, 명성이 아니었다. 나는 그야말로 ‘독립성’에 가장 큰 관심을 가졌다. 그 무엇보다도 독립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과도한 사교육을 받지 않으려 했고, 도서관에서 스스로 공부하려 했다. 대학 시절부터 철저하게 독립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던 점이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 입대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는 실질적으로 독립적인 생활을 해 왔다. 어쩌면 유학을 가지 않은 것은 독립성을 유지하려는 나의 강한 의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법, 제도, 규칙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형식적이고 공식적인 규칙이자 제도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을 추종하고 어떤 사람에 의해 통제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은 그 본성상 오락가락하며 변덕이 심하고 취향도 매우 다양하다. 물론 법, 제도, 규칙 역시 사람이 만든 것이지만, 그것들은 여러 사람이 의견을 모으고 합의하고 타협하여 얻어낸 성과물이다. 특정한 개인의 취향이나 호불호가 강하게 반영되지 않는다. 내가 대학원을 휴학한 후 다른 것이 아니라 공무원 시험과 공공기관 입사를 준비한 것도, 명확한 목적을 가진 공공성을 띤 기관에서 공적인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을 하며 취득한 나의 박사학위는 전적으로 나의 의지에 따라 이룬 성과물이며 그것에서 어떤 학문적 탁월성을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의 박사학위 논문에는 최소한 독창성과 독립성이 담겨있다. 만약 내가 학계에서 교수로 임용되고 싶었다면 그런 논문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사로서 계속 강의하고 논문을 쓰는 것은 내가 우리나라에서 서식하고 있는 과학철학 연구자 중 한 명이라서 그런 것이지, 다른 의도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연구, 강의, 논문 집필이 나와 같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따라야만 하는 의무라고 생각한다.

 

   삶은 결코 공짜가 아니며, 하루하루 무사히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나는 나와 같이 부족한 사람이 특정 조직에 속해서 일하며 매월 일정한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한다. 나는 2012년에 나를 받아준 한국장학재단에 감사하며, 2017년 이래 지금까지 나에게 일할 기회를 주고 있는 국립대구과학관에 감사한다. 이와 동시에 나는 나의 박사학위가 너무 소중한데, 왜냐하면 이 학위는 나의 독립성을 더 강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박사학위는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보증하는 자격이다. 이러한 자격을 갖게 된 나는 나의 전공과 관련된 공식적 활동을 할 기회를 얻게 되었기 때문에 예전에 비해 더 강한 독립성을 갖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물론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 만약 내가 현재의 직장을 다니지 않게 되는 상황이 만에 하나 발생한다고 해도, 나는 나의 학위를 기반으로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대학생 혹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강의할 수 있고, 이에 관한 책들을 번역할 수 있으며, 관련한 연구과제를 수행할 수도 있다. 더구나 나는 나의 학위를 기반으로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도 더 공공연하게 나의 전공 분야와 관련된 활동을 할 수 있다. 내가 하는 일에 나의 전공을 접목하거나, 내 전공 분야와 관련이 있도록 공식 연구 과제를 설정하여 수행할 수 있다.

 

   나는 평소에 그 무엇보다도 나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데 신경을 쓴다. 돈을 많이 얻거나, 명예로운 위치에 오르거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내가 진심으로 이루고자 하는 일이 아니다. 나는 나의 존재를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우리 사회의 각종 제도와 적절하게 타협하면서 나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일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진다. 그렇게 독립성을 계속 유지하면서 내가 뜻한 바 일들을 무리 없이 해 나간다면, 나는 그저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세상에서 내가 해야 할 몫은 다 해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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