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꼭 필요한 만큼만

강형구 2024. 1. 31. 08:26

   내 삶의 가능성이 청년 시절에 비해 부쩍 줄어든 만큼 내게는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이 많이 줄어들었다. 예를 들어 식사의 경우 나는 밥 한 공기에 김치와 간단한 반찬만 있으면 맛있게 먹는다. 옷은 이미 사둔 옷들을 대충 깔끔하게 차려입는다. 신발도 마찬가지다. 이미 사둔 신발들이 제법 있어서, 새 신발에 대한 욕심을 내지 않고 그냥 신던 신발을 신는다. 책도 비슷하다. 내가 관심을 둔 분야의 책들은 이미 대부분 구비하고 있어 굳이 새로 책을 살 필요가 없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나의 삶을 영위하는 데는 비누, 치약 등과 같은 최소한의 생필품이 필요할 뿐이다.

 

   내 삶에 꼭 필요한 것들 중 하나가 음악인데, 요즘은 인터넷에만 접속할 수 있으면 거의 모든 음악을 즐길 수 있다. 그러므로 학창 시절에는 음반을 사는 것에 꽤 많은 돈을 썼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유튜브에서 필요한 음악을 듣고 필요하면 파일을 다운로드(download)해서 음원 파일로 변환한다. 영화 또한 나의 중요한 취미 중 하나인데, 오늘날에는 영화도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시청할 수 있다. 최신 영화는 극장에 가서 봐야겠지만 약간 시기가 지난 영화인 경우 간단하게 인터넷 혹은 온라인 어플리케이션으로 시청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한 달 동안 내게 필요한 문화생활(음악, 영화)을 하는 데 3만원도 안 드는 셈이다.

 

   내가 회사에 가면 쓰는 돈은 매일 5천원(점심식사비)이다. 커피, 간단한 다과류 등은 이미 회사에 준비되어 있다. 출퇴근하는 데 사용되는 유류비는 매일 5천원 미만이므로 매일 1만원도 쓰지 않는 셈이다. 그러면 나는 월급을 대체 어디에 쓰는 걸까? 가계 공통 생활비, 주택자금 대출상환비, 부모님과 장모님께 드리는 비용 등을 제외하면, 매월 나에게는 내게 꼭 필요한 생활비만 남는다. 가끔 차량 정비비 및 각종 세금을 납부하면 내게 남는 돈은 거의 없다. 물론 나는 부족함 없이 생활하는데, 왜냐하면 나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 자체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삶의 즐거움을 충분히 많이 누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는 될 수 있으면 나의 아이들을 위해서 재정을 사용하려 한다. 아직 나의 아이들은 이 세상에서 보지 못하고 맛보지 못한 것이 많다. 이렇게 근검하게 사는 것이 나 자신에게도 상당한 도움이 되는데, 왜냐하면 이렇게 줄이고 줄여야지 정신이 편안해지고 단순해지며 꼭 필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이런 나의 모습이 나의 아이들에게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바란다.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님을 아이들도 알 수 있으면 좋겠다.

 

   이는 좀 역설적인데, 물질적으로 풍족해지고 사회적 지위가 안정될수록 필요한 것은 적어지고 나 자신 안으로 침잠하게 된다. 나는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근력 운동에 중독된 것도 아니며 주식 투자를 하지 않고 골프를 치지 않는다. 정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며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려고 하는 욕망도 별로 없다. 나는 오직 시간 날 때마다 과학철학에 관한 책을 번역하고 논문을 쓰며 가족들을 돌보고 이 세계의 사소한 것들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낄 뿐이다. 일요일에 가족들과 함께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는 것 또한 나의 중요한 행복 중 하나이다.

 

   이제 나는 내 남은 삶 동안에 이 세상에 불필요한 것을 될 수 있는 한 남기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꼭 필요한 것들만 남기려 한다. 예를 들어 이 글도 그렇다. 이 글은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너무나 소소하고 사소한 글이지만, 그래도 내가 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몇몇 가치 있는 것 중 하나라고 믿는다. 나중에 읽을 나의 아이들을 위해서 나는 지금 이렇게 글을 쓴다. 이 글은 미래의 내 아이들에게 부치는 소소한 나의 일상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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