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고량주를 마시며

강형구 2024. 1. 16. 00:12

   작년 10월에 과학관에서 무한상상 경진대회를 운영했을 때 중국 팀을 이끌었던 분(조선족 출신)께서 한국에 방문하신 후 내게 대회 준비하느라 고생한다고 고량주를 한 병 선물해 주셨는데, 오늘은 기분이 좋아 아껴 두었던 이 고량주를 마신다. 53도 가까이 되는 독한 술이다. 나는 오늘 밤 고량주를 마신 후 흥겨운 마음에 이 글을 쓴다.

 

   우선 나는 2012년 1월 이후로 나를 공인으로 살게 해 준 나의 운명에 감사한다. 나는 교육부 산하의 공공기관인 한국장학재단에서 일할 때부터 우리나라 국민의 세금을 바탕으로 나의 사회적 생존을 유지해 왔다. 나는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공공기관 직원으로서 일하며 살아온 나의 삶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물론 민간 기업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그 액수가 적은 연봉이지만, 나는 지금껏 나름 국민을 위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면서 살아왔다. 오늘 나는 지금껏 한국장학재단과 국립대구과학관에서 내가 해왔던 일들을 떠올린다. 정말 충분히 열심히 살아왔다. 그것만으로도 됐다.

 

   다음으로는 참 보잘것없는 학문적 역량을 가진 내가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게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고 싶다. 실제로 나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나의 학문적 역량이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그래도 나는 과학철학에 대한 나의 애정을 숨길 수는 없었다. 마치 기침과 가난과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숨길 수 없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비록 민폐인 줄 알면서도 계속 과학철학 연구를 했고, 결국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사실 나의 박사학위는 우리 가문의 자랑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졸업할 수 있게 배려해 주신 조인래 교수님과 천현득 교수님께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나는 사랑하는 내 가족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지금도 내 아이들의 잠든 얼굴을 보며 때때로 경이로움을 느낀다. 나는 한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오만한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나 스스로가 얼마나 초라하고 미약한 존재인지를 절실하게 느끼며 그저 나와 같은 부족한 사람에게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릴 따름이다. 사실 나는 아직 부족한 신자다. 하지만 나는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내가 얼마나 큰 빚을 하나님께 지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나의 아내, 나의 아이들이 없다면 대체 나의 삶에 어떤 가치가 있을 수 있겠는가.

 

   이번 생의 삶은 어쩌면 하나의 긴 꿈과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나름 우리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사는 삶을 살고자 애썼다. 사실 나는 성실하지만 결국 실패한 과학철학 연구자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 내 생각에 나는 지금껏 과학철학 연구자로서도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이다. 다른 뛰어난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려 하면 끝이 없다. 오히려 그렇게 나를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과 비교하며 시간 낭비를 하는 것보다는, 평범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묵묵히 행하는 길이 최선의 길이라 믿는다.

 

   아주 오래전 나를 잘 아는 누군가가 나는 “근엄한 저항군”과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실로 그 말은 맞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 주지 않더라도 과학철학을 위한 나의 저항을 내가 죽는 날까지 계속 이어 나갈 것이다. 나는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사는 것이 나의 운명이다. 나는 이 문제에 있어 결코 그 어떤 타협도 할 생각이 없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이해해 주지 않을 때부터 나는 이런 방식으로 과학철학을 연구하는 데 익숙해졌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이 세상 그 누구도 나에게 맞설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근엄한 저항군은 쓰러지지 않고, 굴복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나는 이 삶에서 그저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을 무사히 잘 해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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