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358

재야 학자로서 사는 것 02

내가 중학교 3학년 무렵이던 1997년 말에 금융위기가 우리나라를 덮쳤고, 의류도매상인이셨던 아버지의 주 거래 회사도 1998년 즈음에 부도가 났다. 이후 아버지의 사업은 계속 적자가 나기 시작했고 당시 고등학교에 다니던 나는 아버지의 사업이 조금씩 무너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그 때부터 나는 어떻게든 세상에서 먹고 살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학능력시험을 치르기 몇 달 전에 나는 가족 앞에서 성적이 어떻게 나오든 철학과로 진학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청년이었던 나에게는 과학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작 수학능력시험 결과가 나오자 나는 서울대학교를 제외한 나머지 대학들에는 법학과로 지원했다. 법을 공부하면 어떻게든 우리 사회에서 먹고 살 길을 찾을 수 있을..

일상 이야기 2016.06.05

재야 학자로서 사는 것 01

세상이 어수선하다. 대한민국은 부유한 나라이지만 이 나라에서 살기 어렵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다. 가장 쉬운 예로 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물건을 보면 알 수 있다. 작은 가게에서든 큰 가게에서든 하나의 물건을 집으면 그 물건이 순수하게 우리나라의 것으로 만들어져 있는 경우가 지극히 드물다. 미국, 중국, 필리핀 등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 온 재료로 만든 물건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요 몇 년 사이에 외국인 노동자들을 우리나라 전역에서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재료들을 외국에서 수입하고, 수입한 재료들을 갖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해서 공장에서 제품들을 만든다. 완제품을 외국에서 수입해서 오는 경우도 많고, 소비자들이 외국으로부터 직접 제품을 구입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일상 이야기 2016.06.05

지인들과의 만남

어제(6월 3일) 서울 행정자치부에 출장을 갈 일이 생겨서, 그 전날(6월 2일) 퇴근한 후 서울로 올라갔다. 6월 2일에는 알고 지내는 선생님 댁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어제 아침에는 대학원 주임교수님에게 찾아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교수님께서는 가급적 빨리 논문자격시험을 통과하고 학위를 받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충고를 해 주셨다. 맞는 말이었다. 교수님을 뵙고 난 뒤에는 광화문으로 가서 출판사에서 일하는 친구를 만나 점심 식사를 했다. 식사가 끝나고 행정자치부 회의에 참석한 후, 이화여자대학교에 교수로 재직 중이신 선배님을 만나 안부를 물었다. 선배님과 헤어진 후, 저녁 7시에 서울에서 출발해 동대구로 내려오는 KTX에 몸을 실으니 피로감이 몰려왔다. 하루 동안 아침에는 주임교수님, 점심에..

일상 이야기 2016.06.04

도서관에 익숙한 삶

중학교 시절까지 나는 도서관보다는 서점과 친했다. 부산시 동래구청 앞에 있던 동광서적은 우리 동네에 있던 서점이었고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책을 좋아했던 나는 심심할 때마다 서점에 들어가서 이런 저런 책들을 구경하곤 했다. 좀 더 다양한 책들을 보고 싶을 때는 지하철을 타고 서면으로 나가서 부산의 대표 서점인 영광도서와 동보서적에 갔다. 큰 서점에서 이런 저런 책들을 둘러보고 있으면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동보서적, 동광서적은 이제는 문을 닫아서 더 이상 찾아갈 수 없게 되었다. 다만 영광도서는 아직까지 영업을 계속하고 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 서점에서는 책을 구경할 수는 있지만 공부를 할 수는 없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자유롭게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을 찾았고 그래서 서점보다는 도서..

일상 이야기 2016.05.29

단순하고 만족하는 삶

라이헨바흐의 [원자와 우주] 번역을 끝내고 잠시 쉬면서 이런저런 책들을 읽었다. 어느 정도 쉬었으니 다시 라이헨바흐의 책을 번역할 때가 왔다. 나에게 번역이란 공부를 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나의 경우 번역을 하면서 번역을 하는 논문이나 책이 더 정확하게 이해가 되는 것을 직접 경험해보았다. 나보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에게는 번역이라는 공부 방식보다 더 좋은 공부 방식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저 나는 내게 맞는 공부 방식을 선택하여 작업을 할 따름이며,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고 싶지는 않다. 이제 번역해야 할 책은 라이헨바흐의 [상대성이론의 공리화(Axiomatization of the theory of relativity)]다. [공리화]는 내가 석사학위 논문을 쓸 때 주된 분석 대상이 되었던 책..

일상 이야기 2016.05.28

양식의 차이

토머스 쿤의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읽은 이후, 신칸트학파에 속했던 하인리히 리케르트의 [문화과학과 자연과학]을 읽었다. 독서 초반에는 책을 읽어내기가 다소 힘이 들었다. 번역의 문제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책의 문장들은 정확하고 읽기 쉽게 번역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양식과 문체였다. 한동안 잘 접하지 못했던 긴 문장과 긴 문단이 이어졌고, 구체적인 사례 분석보다는 정교한 개념 분석에 방점을 둔 서술이 이어졌다. 이렇듯 낯선 것에 적응하는 것에는 늘 그랬듯 시간이 좀 걸렸다. 편한 마음으로 인내심을 갖고 읽다보니 조금씩 양식과 문체에 적응이 되었다. 나는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몇 번 했다. 수학과 과학에 대한 교과서적인 설명만을 읽던 내게 아인슈타인의 글과 하이젠베르크의 글은 일종의 신선한 ..

일상 이야기 2016.05.27

역사적 관점의 장점과 위험

토머스 쿤의 [코페르니쿠스 혁명](정동욱 역)을 흥미롭게 읽고 있다.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개념들을 [코페르니쿠스 혁명]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두 저서 사이의 관계는 더욱 각별하게 여겨진다.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 체계는 헬레니즘 시대에 등장한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의 전통을 상당 부분 유지하면서도 그에 비견될 정도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천문학 체계였다. 비록 천문학 외적인 요소들이 상당 부분 개입하고 그런 외적 요소들이 천문학 체계 자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상당부분 기여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천문학 체계가 존재했고 그 체계가 세계에 대한 관측 자료들과 잘 들어맞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천문학은 고도로 정교화 된 개념 체계였고, 하나의 장대한 전통을 이루고 있었다..

일상 이야기 2016.05.22

독서하는 시간

요즘에는 라이헨바흐의 [원자와 우주] 번역을 끝내고 난 후 잠시 쉬어간다는 생각으로 여유 시간에 번역 대신 독서를 한다. 피터 고드프리스미스가 지은 [이론과 실재]를 읽었고, 신광복·천현득 선배가 지은 [과학이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지금은 토머스 쿤이 지은 [코페르니쿠스 혁명](정동욱 선배 번역)을 읽고 있다. [이론과 실재]는 실재론적 경험주의(혹은 경험주의적 실재론)를 옹호하는 저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지만, 번역된 문장들이 깔끔하지 못한 경우가 더러 있어 다소 아쉬웠다. [과학이란 무엇인가]는 과학방법론과 과학적 설명에 대한 기존의 과학철학적 논의를 아주 간결하고 명료하게 정리해 놓은 책이어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읽으면서 이 책이 아주 좋은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일상 이야기 2016.05.20

영남일보 하프마라톤 참가 후기

오늘 아침 8시부터 대구 스타디움에서 영남일보 하프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나는 오전 6시쯤 집에서 출발해 7시 반쯤 대구 스타디움에 도착했다. 직장 동료들은 이미 도착해서 몸을 풀고 있었다. 우리는 대회가 시작하기 전에 단체 사진을 찍었다. 8시가 되자 21킬로미터의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나는 대회 시작 전 제대로 연습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록에 대한 욕심은 처음부터 갖지 않았다. 임신을 한 아내를 돌보며 틈틈이 번역을 하느라 마라톤 연습이 많이 부족했고, 최대로 많이 달린 거리가 11km였다. 과연 완주를 할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도전하기로 결심한 이상, 포기할 수는 없었다. 천천히, 무리하지 않으면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여기저기서 직장 동료들을 볼 수 있었지만 시간이 ..

일상 이야기 2016.05.08

아버지, 조카 건호, 아버지가 되는 일

얼마 전 아버지께서 내시경으로 위암을 절제하는 수술을 하셨다. 올해 3월쯤 아버지께서 위암에 걸리셨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매우 놀랐다. 평소에 너무나 건강하게 생활하셨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처음에 외과 의사로부터 진료를 받았을 때 우리는 위의 3분의 1 가량을 절제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으나, 아주 초기인 위암이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내과 의사에게도 진료를 의뢰해보았다. 다행히 위암이 위벽 안쪽까지 전이되지는 않아 위 점막만 절제해도 되는 상황이었고, 이는 내시경으로도 충분히 수술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끝났고, 수술 후 시간이 꽤 지난 지금은 식사도 문제없이 잘 하고 계신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5월 6일이 임시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아내와 나는 부모님이 ..

일상 이야기 2016.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