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도서관에 익숙한 삶

강형구 2016. 5. 29. 19:04

 

   중학교 시절까지 나는 도서관보다는 서점과 친했다. 부산시 동래구청 앞에 있던 동광서적은 우리 동네에 있던 서점이었고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책을 좋아했던 나는 심심할 때마다 서점에 들어가서 이런 저런 책들을 구경하곤 했다. 좀 더 다양한 책들을 보고 싶을 때는 지하철을 타고 서면으로 나가서 부산의 대표 서점인 영광도서와 동보서적에 갔다. 큰 서점에서 이런 저런 책들을 둘러보고 있으면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동보서적, 동광서적은 이제는 문을 닫아서 더 이상 찾아갈 수 없게 되었다. 다만 영광도서는 아직까지 영업을 계속하고 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

  

   서점에서는 책을 구경할 수는 있지만 공부를 할 수는 없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자유롭게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을 찾았고 그래서 서점보다는 도서관에 자주 갔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값싸게 밥을 먹을 수 있으며, 주변에 큰 서점도 있던 서면의 부전도서관은 내게는 이상적인 공간이었다. 자료실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다가 좀 지루해진다 싶으면 서가에 있는 다른 책들을 구경했다. 도서관 정원에 가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나무와 꽃을 구경했고, 몸이 뻐근하면 간단히 체조도 했다. 나는 그렇게 도서관에서 내 생각을 키워갔다. 그곳은 학교나 학원이 아니었다. 도서관에서 내게는 책을 선택하고, 읽고, 생각할 자유가 있었다.

  

   대학 시절을 돌이켜보면 나는 특히 관악산과 중앙도서관을 좋아했던 것 같다. 나는 도서관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읽다가 좀 답답하다 싶으면 관악산 기슭을 걸었다. 도서관에서 마음껏 읽고 생각하고 쓰는 것은 대학생활 4년 동안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육군장교로 복무하던 시절, 휴일이 되면 나는 아침 일찍 홍천도서관에 가서 밤까지 책을 읽으며 글을 썼다. 대학원을 휴학하고 취직 준비를 한 곳도 취업준비 학원이 아닌 관악도서관이었다. 이렇듯 내 삶과 도서관 사이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도서관이라는 건물은 학교나 학원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기른다. 그리고 나는 도서관 지붕 아래에서 자란 사람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직접 만나서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글이나 책을 통해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나 역시 여러 저자들의 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것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 도서관에서 책들을 통해 전통이 이어진다면 나도 이 전통의 유지와 계승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나의 아이들 역시 이 전통에 동참할 수 있기를 내심 바란다. 서울에 있을 때는 아내와 함께 안국역 근처에 있는 정독도서관에 자주 가서 시간을 보냈다. 대구에 오니 동네에는 달성도서관이 있고, 시내에는 시립중앙도서관이 있다. 특히 시립중앙도서관은 다양한 책들과 훌륭한 정원을 갖고 있어서 마음 편하게 책을 읽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어린 학생, 젊은 청년이었던 내가 도서관 책상에 앉아 위대한 인물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소중한 특권이자 내밀한 비밀이었다. 내가 누릴 수 있었던 행운이 우리 시대의 학생들과 청년들에게도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또한 우리나라의 국공립도서관에서 일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새삼스레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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