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357

평범함을 받아들이는 것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간 내게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은 나보다 뛰어난 주변 친구들에 대해 느껴지던 열등감이었다. 내 곁에 있는 친구들은 운동을 하던 공부를 하던 나보다 더 쉽고 빠르게 잘했다. 반면 나는 이해와 적응이 느렸고, 무엇이든 그것의 의미를 되풀이해서 곱씹어보아야 했다. 나는 일반적인 교과서 수준의 내용을 이해하고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웠으나, 똑똑한 나의 친구들은 심화문제들을 쓱쓱 잘 풀었고 아주 잘하는 친구들은 대학 수준의 내용으로 진도를 넘어갔다. 고등학교 때 나는 깨달았다. 나는 평범함의 영역에서 좀 더 많은 내용들을 기억하고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속하는 곳이 월등함의 영역은 아니다. 나는 나의 평범함을 조금씩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다른 아이들보..

일상 이야기 2016.02.27

암중모색하는 사람처럼

정확하게 누가 말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과학자는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했다. “보어는 암중모색하는 사람처럼 말하기를 즐겨했다.” 보어는 자신의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 항상 대화 상대자를 필요로 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상대와 이렇게 이야기하고 저렇게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가능성들을 더듬어보며 생각을 조금씩 진행해 나갔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하이젠베르크가 쓴 [부분과 전체]에 다소 극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책에서 보어를 중심으로 한 물리학자들은 끊임없이 서로 대화하며 생각을 진행해나간다. 나는 무엇보다도 보어의 이러한 ‘암중모색하는 사람처럼’ 말하는 것으로부터 큰 인상을 받았다. 이러한 말하기의 목적은 내가 옳은지 네가 옳은지, 내가 더 많이 아는지 네가..

일상 이야기 2016.02.16

중력파 검출에 대한 단상

요 며칠 새 중력파가 검출되었다는 소식에 세상이 술렁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감탄하고 있다. 나는 중력파의 검출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이 검출이 앞으로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단순명료한 설명이 천체물리학 전문가에 의해 우리말로 제시되기를 기대한다. 솔직히 나는 중력파 검출 소식을 들었을 때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그 이유를 아래에서 이야기해보겠다. 아인슈타인에 의하면, 중력의 효과와 관성력의 효과는 구분되지 않는다. 관성력은 질량을 가진 한 물체가 운동 상태를 유지하려는 힘이다. 이 힘은 가속 운동이 있을 경우에 발생한다. 관성력 효과가 중력 효과와 동일하다 함은, 질량을 가진 물체가 다른 물체를 대상으로 가속 운동 효과를 유발함을 뜻한다. 이에 더해, 상대성원리..

일상 이야기 2016.02.12

2016년 음력 새해 연휴를 기억함

5일 동안의 길었던 음력 새해 연휴가 저물어가고 있다. 직장이 작년에 대구로 이전한 이후, 명절 지내기가 부쩍 편해졌다. 나와 아내는 아내의 직장 근무 때문에 2월 7일 밤에야 부모님이 계신 부산으로 내려갔다. 2월 8일 설날 아침에는 부모님께 세배를 올린 후 조상님께 차례를 올렸다. 아버지의 증조부모 및 조부모께 차례를 올렸으니, 나에게는 고조부모 및 증조부모가 되시는 분들인 셈이었다. 나는 그분들의 얼굴을 뵌 적이 없지만, 이렇게 차례를 기회로 인사드리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례를 끝낸 후 좀 쉬다가, 집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가족 전체가 영화를 보러 갔다. 부모님께서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검사외전]을 보러 가셨고, 며칠 전 이미 [검사외전]을 보았던 나와 아내는 [쿵푸팬더3] ..

일상 이야기 2016.02.10

위기를 대비하는 것

오늘 저녁에는 아내와 함께, 미국의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를 다룬 영화인 “빅 쇼트”를 보았다. 이 영화의 주제는 나에게 낯설지 않았다. 2011년 가을 즈음에 나는 한국장학재단 입사를 위한 필기시험과 논술시험을 치렀는데, 그때 논술시험 주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는 것”이었다. 나는 논술문에서 선량한 시민들을 기만하는 거품금융을 비판하고, 자본으로 자본을 생산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산업을 통해 자본을 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한국장학재단은 우리나라의 산업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젊고 유능한 인재들을 재정적으로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4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상황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은 것 같다. 대학생들에 대한 정부의 ..

일상 이야기 2016.02.03

작업장에서

올해로 내 나이 서른다섯이다. 서른다섯이 많은 나이는 아닐 것이다. 이 정도 나이라면,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이것저것 새로운 일들을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른다섯은 삶에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이것저것 생긴 나이이기도 하다. 다시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갈 수 없기에, 왜 내가 수학과나 물리학과가 아닌 철학과로 진학했는지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없다. 왜 나는 공군장교가 아닌 육군장교의 길을 택했을까? 왜 나는 곧장 취업하지 않고 대학원에 진학했을까? 대학원 시절, 대체 무엇을 바라고 나는 매일 필사적으로 책들에 매달렸을까? 지나간 나의 삶은 돌이킬 수 없게끔 흘러가버렸고, 그 과거의 삶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서른다섯이면 누구든 한창 일을 할 나이다. 이제 공부하거나 준비하거나 연습..

일상 이야기 2016.01.30

돈을 모으는 것에 대하여

대학 시절에 나는 생활을 위해 꾸준히 돈을 벌지는 않았다. 대신 나는 부모님에게 의지해서 대학 학비를 냈고 생활비를 충당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참 후회된다. 나는 너무 편안하게 대학 생활을 했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학비가 저렴한 국립대학교에 다녔다는 것, 그리고 졸업을 늦추지 않고 4년 만에 졸업했다는 것은 내게 하나의 위안이 된다. 나는 국립대학에서 인문학인 철학을 전공해 어중간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육군 장교가 되어 군 복무를 했다. 장교로 복무를 한 것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장교가 되면 매월 봉급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난 뒤에는 마땅히 자립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간부의 길을 택했다. 나는 군 생활을 하면서 돈을 거의 쓰지 않고 모았다. 휴일..

일상 이야기 2016.01.24

글 쓰는 사람 03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을 ‘잘’ 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글을 쓴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한 편에는 나라는 사람의 삶과 그 삶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이 있고, 다른 한 편에는 그 생각들을 글로 표현하는 작업이 있다. 수많은 생각들 속에서 어떤 생각들을 글로 표현하는 게 좋을까? 그러한 표현이 과연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 그런데 이런 고민들에 계속 빠져 있으면 쓰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질지 모른다. 그래서 글쓰기의 기본적인 원칙 중 하나는 ‘일단 무엇이든 써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글쓰기가 원활히 시작될 수 있다. 직장에서 행정업무를 하다 보면 글을 쓸 때가 많다. 행정업무용 글은 업무처리..

일상 이야기 2016.01.23

글 쓰는 사람 02

철학 역시 다른 학문들과 마찬가지로 전문화된 학문 분과이며, 철학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현대의 철학자들, 특히 20세기 이후 영미 분석철학자들이 내놓는 작업을 보면 아주 전문적인 특성을 띠고 있다. 그런데 이는 내가 학창시절 철학에서 바라던 바와는 사뭇 달랐다. 과학도였던 나는 수학과 과학을 좀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에 철학을 찾았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20세기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가 쓴 [부분과 전체]를 들 수 있다. 표준적인 양자역학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많은 인물들과 풍부한 대화들이 이 책에 등장한다. 이 책은 플라톤이 쓴 [대화편] 이래의 전통을 따라 등장인물들 사이에서의 대화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

일상 이야기 2016.01.19